[스물네번째 산책②] 정겨운 수로의 도시, 도나우강가의 울름(ULM)

내가 울름을 떠올릴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건 물론 하늘높이 솟은 대성당이지만

마음속 시선은 곧바로 아래를 향해 수로를 따라 흐르는 물소리를 머릿속에 그려낸다.

실개천 Blau에 바로 면해 지어진 집들

 

애시당초에 일러(Iller) 강이 도나우(Donau)에 합류되는 지점에 만들어진 울름이라서 

도나우 만으로도 도시에 새겨진 '물'의 존재감이 뚜렷했을텐데

울름 구시가지 한켠을 조용히 흐르는 실개천 'Blau(파란색이라는 뜻)'가 주는 아름다움과 정감이

여기 울름의 이미지에 화룡정점을 찍는 느낌이다. 

 

그리고 나는 이 수로를 따라 늘어선 옛 어부들의 마을(Fischerviertel) 을 옛날부터 정말 좋아했었다.

이 공간 때문에 계속 울름을 찾고있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

 

그래서 대성당을 둘러보고 나올때 발걸음에 즐거움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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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네번째 산책①] 보기만해도 가슴이 울름울름, 쾰른보다 키가 큰 울름

울름 시가지 축소모형

 

성당 입구 오른편으로는 울름 시가지의 축소모형이 있다.

잔뜩 신난 독일 꼬맹이들 한무리가 여길 둘러싸고 부모들에게 이곳저곳이 어디인지를 물어본다고

몸만 큰 어른인 나는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서 구경하고싶은걸 꾹 참고 기다렸다 즐겨야만 했다.

 

축소모형 앞에선 시간가는줄을 모르겠다.

땅에 발붙이고 사는 우리 인간이 새의 몸을 빌린것처럼 내려다볼 수 있는 흔치않은 기회다.

구태여 그렇게까지 거창한 이유가 아니더라도, 내가 평소에 지도보는걸 워낙 좋아하다보니

도시 축소모형은 2D가 아니라 내 눈 앞에 살아있는 3D 지도가 되어준다.

 

어떤 길을 따라서 어떻게 마을을 산책할지 대략적으로 그려보고서 발걸음을 옮겨본다 :D

Neue Str, 시청이 살짝 보인다

 

대성당 바로 아래쪽으로는 동서로 길게 뻗은 자동차도로 노이에슈트라세(Neutstraße)가 있다.

말 그대로 새로(neu)만든 길인데 원래는 이렇게 넓은(?) 길이 있을 곳이 아니긴 하다.

대성당이 지척이기도 하고, 또 위 사진 오른편을 자세히 보면 노란 빛깔의 울름 시청사가 있기 때문이다.

(유서깊은 유럽 도시의 시청이 자동차도로에 면해있다는게 좀처럼 잘 그려지지 않는다)

 

시청 앞이면 으레 광장이 있어야할 곳에 나있는 이 길에는 원래 광장들과 오랜 건물들이 자리했다고 한다.

이 공간을 일거에 비워준 사건은 뻔하지만 역시 2차대전이었고,

전후 재건방식을 두고 시민들이 '원형 그대로의 복원' vs '현대적 재건' 사이에 격렬한 토론을 벌이게 된다.

 

현대재건파가 우위를 점한 끝에 약간의 신식 건물이 들어서기도 하고 가장 중요하게는 이 도로가 놓였는데

놀랍게도 이 길을 내기 위해서 전쟁을 견뎌낸 건물까지도 헐렸다고 한다.

(내가 아는 독일인답지 않아...!)

 

뭐... 덕분에 지금 울름사람들의 교통복지가 상당히 좋아진게 사실이다.

이 도로가 없었다면 동쪽에서 서쪽을 오가는데 상당한 거리를 돌아가야했을거고

돌아가는것만 문제가 아니라 교통량이 나머지 도로에 몰리기때문에 체증도 어마무시했을거다.

 

덤으로 구시가지에 접근하는 버스 노선도 거진 다 이 길을 지나가니만큼 관광객이나 주민 모두 편하다.

신식 건물들 사이로 옛 건물(16세기 건물)이 보인다

 

이걸 염두에 두고 걷다보면 새로지은 건물들이 몇 개 눈에 들어오는데 사실 그리 많지는 않다.

시청 뒤에 있는 시립도서관, 대성당 앞의 시민회관, 노이슈트라세 한가운데 섬같은 건물 등 몇개 없다.

물론, 오래된 건물처럼 보이는 것들 중에서도 재건한 것들이 상당수긴 할거다.

연합군이 독일군에 대한 증오를 한껏 담아 퍼부은 폭격은 무시무시했으니깐... 

유대회당, 아주 입지좋은곳에 만들었다

 

마찬가지로 새로 지은 유대회당 시나고그와 사진은 없지만 그 옆의 Schwörhaus(슈뵈어하우스)를 지나면

이번 산책의 목적지인 실개천 Blau와 Fischerviertel(어부의마을)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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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scherviertel은 영어로 옮기면 Fisher Quarter, 어부들이 살던 지구라는 뜻인데,

말 그대로 오랜 옛날부터 어부들이 모여살던 마을이다.

 

울름에서의 삶은 옛날부터 물과 끈끈한 관계를 맺은채로 펼쳐졌다.

아주 오랜 옛날부터 어부들은 이곳 개울가에 집을 짓고 모여살면서 도나우에서 물고기를 잡았고,

중세에 들어서는 무두장이들과 물레방앗간 하는 사람들도 물가를 찾아와 살았다고 한다.  

Fischerviertel

 

어부들은 이 물길을 통해서 바로 도나우로 배를 띄우고는 돌아와서 물고기도 손질했을거고

무두장이들도 개울가에서 가죽을 손질하고는 자기집 발코니에 널어서 바람을 쳤을거다.

 

마을을 거닐다보면 아직까지도 돌아가고있는 물레방아들도 몇 개 보이는데 지금은 장식용일것같다.

개울가 집들에는 대개 물로 이어지는 출입구가 나있다

 

햇볕이 촥 드는 그런 날은 아니었어서 사진들이 조금 차갑긴 하지만

그래도 내가 정말 좋아하는 피셔피어텔을 걸으며 찍은 사진들을 조금 소개해본다 :D

Auf der Insel, Blau 사이에 섬처럼 있는 거리다

Auf der Insel 골목의 모습

바로옆 수로 건넛집 주인이 수국을 좋아하나보다

물을 좋아하는데는 어른이건 아이건 큰 차이가 없는것같다

섬세한 누군가가 숨겨놓은 아주 조그만 이스터에그

군데군데 산책하기 좋게 길이 잘 나있다

정면의 집은 울름의 명물, 기울어진 집이다

역시 중간중간 대성당의 첨탑도 수시로 보인다

옛 모습이 그려지는 풍경

 

어부마을은 설설 걸으면서 정겨운 그 분위기만 느껴도 충분히 좋은 곳이지만

여기에도 대단하지는 않지만 소소하게 사랑받는 랜드마크들이 몇 있다.

 

개울을 따라가다 도나우에 도착하기 살짝 전에 오른쪽으로 잠깐 빠지면 작은 광장이 하나 있는데

이름이 Saumarkt, 우리말로 돼지시장이다.

엄연히 공식 명칭인 Schweinmarkt이 따로 있긴 한데(도로명 주소도 Schweinmarkt를 쓴다), 

동네 주민들은 예로부터 표준독일어로 젠체하는게 싫었는지 Saumarkt라고 불러왔다고 한다.

 

Sau 역시 돼지(암퇘지)라는 뜻이긴 한데 거의 구어체로만 쓰이는것같고, 멸칭의 성격도 강하다.

예를들면 돼지목에 진주목걸이라는 표현이 정확히 Sau를 써서 'Perlen vor die Säue' 가 된다.

 

모쪼록, 여기에서는 1900년대까지도 돼지를 사고파는 시장이 열렸다.

물론 더이상 이곳 광장에서 돼지를 사고파는 모습은 볼 수 없지만,

광장 한켠에 당시 모습을 담은 동상이 제법 정겨운 모습으로 남아있다. 

정육점주인과 농부, 그리고 귀여운 돼지들

코가 빤질빤질하다

악수로 거래가 체결되었음을 확인하는 농부와 도축업자... 돼지들이 괜히 좀 귀여워서 짠한 마음이 든다.

두 돼지중에 새끼돼지의 코는 사람들이 하도 만져서 빤질빤질한데, 

이 녀석 코를 만지면 어떤 행운이 찾아올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나도 한 번 문지르고 떠난다.

독일에 단 하나뿐인 Vaterunsergasse

 

다시 도나우 강변으로 향하려고 모퉁이를 돌자마자 재미난 이름의 골목길을 마주쳤다.

'Vaterunsergasse', 이 이름이 재미있는 이유는 바로 주기도문의 첫 문장에서 따왔기 때문이다.

 

Vater unser im Himmel, geheiligt ....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

 

그러니깐 이 골목길은 '하늘이계신우리아버지로' 라는건데 ㅎㅎ 유래가 너무 궁금했다. 

하늘에계신우리아버지로의 모습

 

일단 사진부터 먼저 띄워두고!

100미터를 가지 못해 울름 성벽에 가로막히는 이 골목은 이름값에 걸맞지 않게 아주 짧다랗다.

하지만 어렵사리 찾아낸 이 이름의 유래는 좀 섬뜩했다. 

 

울름에 페스트가 퍼졌던 시기, 사람들이 죽어나가자 산 사람들은 시체를 도나우에 흘려보냈고

그때 바로 이 골목끝 성벽에 난 구멍으로 시신을 던졌다는거다...

그리고 이 송장들을 운구하면서 죽은 자와 또 언제 죽을지 모를 자신을 위해 주기도문을 외웠다는것.

 

주민들 사이에 이런 유래가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었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페스트 시기에는 성벽에 이런 구멍이 없었다고 하니 사실은 아니라고 한다.

추정컨대 이 골목이 딱 주기도문을 한 번 암송할 정도의 길이여서 이런 이름이 붙었을거라는데,

옛날에는 주기도문이 대충 짧은 시간을 재는 단위로 곧잘 쓰였다고 한다.

 

결론적으로는 정확한 유래는 아무도 모른다는거지 그럼... ㅎㅎ

Das Schöne Haus

 

하늘에계신우리아버지로를 살짝 지나치면 Fischerplätzle 라는 역시 작은 광장이 나오고,

그 귀퉁이에 있는 가장 큰 건물에는 Das Schöne Haus(아름다운 집) 이라는 명판이 붙어있다.

 

빨간 창문과 독일 전통가옥의 목조 뼈대가 아름다운 집이지만 외형 자체보다는 벽화가 더 유명하다.

1717년에 그려진 이 그림은 당시 길드마스터 하던 양반 의뢰로 그려진건데,

오스만제국과의 전쟁중 울름에서부터 도나우강을 따라서

지금의 세르비아 수도 베오그라드까지 병력을 수송한걸 기념하는 그림이다. 

 

그림 밑에는 배도 한 척 엎어져있는데 Ulmer Schachtel 이라는 울름지역 전통 배다.

이 조그만 배를 타고 세르비아까지 그 멀고먼 길을 떠났다고 생각하니 측은하다...

그나마 다른 자료들을 보면 실제로 병사들이 타던건 조금은 더 큰것같고 저건 고깃배 아니었을까 싶다.

(사실 큰 차이는 없어보이지만)

die Ulmer Schachtel(출처: 위키)

 

도나우, 즉 (대체 독일에서부터 동쪽으로만 흘러가는 강을 왜 영어로 부르는지는 모르겠지만) 다뉴브는

동유럽사에서 아주아주 중요한 강이다. 

독일 서남부에서 샘솟은 물이 흘러흘러 우크라이나까지 가서야 흑해에 합쳐지니

이 강을 공유하는 나라만 해도 거진 열개에, 지나가는 수도만 세 개(빈, 부다페스트, 베오그라드)나 된다.

 

울름은 이 강이 발원하고 처음 맞는 대도시이자 교역도시다.

옛날에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이 강을 따라 동유럽으로 뻗어나갔고(용어도 있다: Donauschwaben),

아직도 도나우강에는 상당히 많은 화물선들이 부단히 강을 오르내린다.

 

비교적 최근까지는 배 뿐만 아니라 알고이 지방에서 벌목한 통나무들도 잔뜩 떠다녔다는데

울름 바로 코앞에서 도나우에 합류되는 일러강의 상류가 알프스의 한 동네 알고이(Allgäu) 지방이다.

Iller(출처: 위키)

 

이 집을 지나서 성 바깥으로 나가기 전에 아주 잠깐 들를곳이 있다.

울름 어부의 지구에서 가장 사랑받는 건물인 기울어진 집이다.

Schiefes Haus

 

위에서도 한 번 사진에 출몰한적 있는 이 집은 가까이서 보면 정말 상당히 기울어져있다.

집 후미부분이 개울을 먹고있는데 지반이 약하다보니 점점 기울어지고 있던거다.

지금은 보강공사를 해서 더는 기울어지지는 않고 있지만,

울름인들의 최고를 향한 열망을 충족시키기엔 이미 충분히 기울어졌다.

 

1997년부터 세계에서 가장 기울어진 호텔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어있다... :D

그러고보니 언급을 안했는데 이 건물에는 지금은 호텔이 들어서있고 숙박비는 상당히 비싸다 ㅠ

바로 그 호텔, 마침 체크인 손님이 있었다(부자인가봐)

 

이제 어부마을도 충분히 즐겼지 싶어서 도나우강변으로 나가기로 했다.

도나우강을 따라 울름 성벽이 남아있고 그 위로 제법 많은 사람들이 노을아래 산책을 즐기고 있었다.

 

나도 짤막하게 산책을 즐겼다.

성벽을 따라

강건너 노이울름에는 새로지은 건물들이 거의 다다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나는 분명히 정말 짧게만 걸었을 뿐인데(주기도문 한 열번정도?) 그새 노을이 진해졌다.

이제 슬슬 기차시간을 확인하고 돌아갈 궁리를 해야겠지 싶은 생각이 든다.

 

오늘 산책의 명분이 분명 '밤 미사 전까지 시간보낼 곳을 찾는다' 였음을 잊지 않은 나다.

나들이가 끝을 향해간다는 마음에 아쉬움이 가득 묻어나는 발걸음으로 시내로 다시 들어갔다.

다시 만난 노이슈트라세, 시청이 다시 한 번 보인다

대성당을 다시 스쳐서

 

중앙역으로 가기 전에 들른 곳은 바로 케밥집, 

오늘아침 울름으로 놀러가기로 마음먹은 순간부터 이 가게가 주 목적지에 포함되어있었다.

 

Münster Kebap, 이 가게는 내가 교환학생시절 처음 울름에 왔을때 처음 먹어보고

아주 뿅 반해버린 케밥집인데 이번에 가니 장사가 더 잘되었는지 깔끔하게 리모델링도 했다!

여전히 맛도리 되너를 파는 정말 울름 최고의 맛집이다 ㅠㅠ

울름 최고의 가성비 맛짐

 

물론 나도 돈이 넘쳐흐른다면 가성비가 극악일지언정 슈바벤 음식을 먹고싶지만...

아껴살지 않으면 한국으로 돌아갈 날이 조금 더 빨리 찾아오게된다 ㅠㅠ 가뜩이나 환율도...

(내게 후원자가 생기거나 로또가 된들 짠내나게 살아가는 버릇이 쉽게 빠질것같지는 않지만)

밤이 찾아올 무렵, 울름 중앙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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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했던 돌아가는 기차 안에서는 역시나 시원하게 잠을 잤다.

그러고보니 울름으로 올때는 슈바벤의 들판을 바라본다고 모처럼 기차를 타고도 잠을 참았었다.

슈바벤의 들판은 참 넓고 고요하게 뻗어있다.

미사시간보다 먼저 잘 도착!

 

그렇게 뮌헨에 도착했을때는 아직 미사가 시작하기 전이라서 당당한 발걸음으로 들어갔다 :D

평소에 집에서 갈때는 S-Bahn 시간이 애매해서 항상 5분씩 늦게 스리슬쩍 미끄러져들어가는 나다.

역시 고딕양식의 뮌헨 신시청사

 

미사가 끝나고 나서 평소와 같이 마리엔플라츠로 에스반을 타러 가다가

저 날은 모처럼 멈춰서서 시청사 사진을 남겨뒀다.

 

아무래도 같은 고딕이라고 울름 대성당이 겹쳐보였던게 아닐까 싶다.

 

울름 나들이편,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