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여덟 번째 마시다] Schneiderweisse-Aventinus Doppelbock(8.2%)

지난번 오후산책을 다녀오고 나서 갈증이 났던 나는 냉장고 안의 두 맥주 사이에서 고민했는데,

간택받은 그 맥주는 이미 지난 포스팅으로 다시 태어났고

이번에는 나머지 한 녀석에 대해 리뷰를 해보려고 한다.

[열일곱 번째 마시다] Giesinger-Erhellung (기징어 에어헬룽, 5.3%)

 

당시 선택의 기준이 선호도순이 아니라 단순히 용량(특히 알콜함량)에 있었던 만큼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오늘의 주인공은 바로 'Schneiderweisse Aventinus',

 

슈나이더바이쎄 양조장의 대표적인 걸작이다(2023년 맥주상 수상작).

상당수의 도펠복 병들이 상당히 장식적이다

 

블로그 완전 초창기에 이미 이 양조그룹의 변신 시도에 대해 리뷰한 적이 있었는데

밀맥주를 전문으로 하던 슈나이더가에서 헬 맥주(Helles)를 출시하기 위한 트릭의 결과물,

Schneider's Helles 였었다.

 

Weisse(밀맥)라는 이름을 떼어버리고 Schneider's 라고 퉁친 아예 새로운 로고를 브랜딩했던 이들이다.

[여섯 번째 마시다] Schneider's Helles

 

리브랜딩 라인업을 먼저 소개해버렸으니 순서상 썩 바람직하지는 않은것같지만

그렇다고 슈나이더바이세 본산을 언제까지고 리뷰하지 않을 수는 없다.

비록 짧은 역사탓에(Seit 1872...) 옥토버페스트 6대 텐트 주관사에는 들어가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밀맥주에 관한 한 메이저들에 결코 뒤지지 않는(개인적으로는 능가한다) 맥주를 만드는 곳인걸...

 

슈나이더바이세 로고

 

이번에 리뷰를 위해 이 작자들의 홈페이지를 들어가봤다가

맥주맛과는 전혀 무관한 또 하나의 마음에드는 지점을 발견했다.

 

슈나이더 바이세는 독일 회사라는걸 감안했을때 브랜드 자체가 상당히 힙한 편이다.

일단 병 라벨 디자인이 여느 바이에른 맥주들처럼 그렇게 올드하지 않은것도 있지만,

내 마음에 든 포인트는 바로 이들이 온라인상에서 자기네들 맥주 라인업을 소개하는 방식이었다.

 

사소하지만 상당히 꿈결같은 센스를 발휘해둔게,

맥주를 그냥 나열하기보다는 넘버링을 하고있는데 촌스럽지 않고 아주 세련되다.

 

어느 맥주펍을 가든 바 자리에 앉았을때 나를 가장 설레게하는 그림은

생맥주 뽑는 태퍼들이 나란히 줄지어 앉아있는(많을수록 좋고 핸들이 예쁠수록 물론 더 설레지),

'누가되었든 제발 얼른 나좀 뽑아줘!!' 라고 외치는듯한 맥주의 아우성이 느껴지는 그 모습이다. 

비어 탭이 줄지어있는걸 보고 안설레면 그게 어떻게 맥주 애호가라고 할 수 있겠어

 

그리고 슈나이더바이세는 자기네 맥주들마다 비어탭 번호를 붙여놨다.

예를들면 이번에 마신 도펠복 아벤티누스는 6번을 달고있는것.

덕분에 마치 슈나이더바이세의 맥주들이 가득한 바 자리에 앉아있는 기분이 들게한다.

 

오리지널 클래식 밀맥주는 1번일것같지만 7번을 달고있다.

 

Aventinus의 탭 넘버 : 6

 

모처럼 독일스럽지 않은 마케팅에 감탄한나머지 맥주 자체에 대한걸 너무 소홀히했다.

Weizen-Doppelbock으로 바로 넘어가고싶지만

도펠복을 알려면 먼저 Bockbier(복 비어)를 살펴봐야 도리에 맞다.

 

복 맥주는 바이에른에서 생산되는 높은 도수의 맥주를 말한다.

하지만 이렇게 이야기하면 사실을 호도하는 못되먹은 바이애(愛)른 성애자로 오해받을지도 모른다.

 

이 유형의 맥주는 원래 한자도시(Hansa, 한자동맹) Einbeck(아인베크)의 특산품이다.

생소한 이름의 소도시 아인벡은 어디즈음 있다고 설명하기가 참 애매한데

여하튼 한자동맹 가맹도시답게 적어도 남부독일은 아니고... 대충 하노버와 괴팅엔 가운데쯤 있다.

(크게 와닿지는 않겠죠...?)

 

여기 마을 맥주가 중세시대부터 제법 유명했던모양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지금도 애지간한 규모가 아니고선 어려운 맥주 역외판매에 발들일리가...

물론 자체적으로 다 해결한건 아니고 한자동맹에 가입하면서부터 위대한 한자교역로로 맥주를 운송했다.

 

다만, 이를 위해 선결조건이 하나 있었는데 결국은 곡물 발효주스인 맥주가 상하지 않게 해야했던것.

아인벡 양조업자들이 선택한 방법은 알콜 함량을 쭈욱 올려버리는거였다.

 

예쁘게 잘 발효시킨 이 맥주들은 중세와 그 이후까지도 제법 사치품으로 분류되었다는데

아인베커(Einbecker)는 귀족가문들의 인기를 등에업고 저 멀리 이탈리아까지 팔려나갔다.

Einbeck는 중세 모습을 잘 간직한 작은 마을이다

 

중북부 독일에서 이탈리아를 가는길에 꼭 거쳐가게되는 대도시가 하나 있다.

내가 지금 살고있는 바로 그 도시의 이름은 '뮌헨'이다... ㅎㅎ

 

바이에른의 수도 뮌헨에 사시던 비텔스바흐 공작가 사람들도 이 사치품을 상당히 즐겼나보다.

배달맥주를 사서 즐기다 못해 1573년에는 란츠후트의 트라우슈니츠 성에다가

아예 복 양조장을 만들어버리더니(바이에른 공작가의 첫 번째 호프브로이하우스가 그래서 란츠후트에 생겼다)

급기야 1589년에는 그 양조장을 아예 통째로 뮌헨으로 들고와버렸다.

[열세 번째 산책] 바이에른의 방패, 물의 도시 란츠후트

원래대로라면 부드럽게 Einbecker(아인베커) 라고 팔렸어야할 이 맥주는

처음에는 바이에른의 강한 사투리를 조금 섞어 Einpöckisch(아인푀크 스따일 맥주) 라고 불리더니,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앞에서 ein이 떨어져나가고 그냥 Bock Bier가 되어버렸다.

아무래도 Bock이라는 단어가 친숙하다보니 점점 더 그쪽으로 쏠려버린것같다.

 

독일어로 Bock haben auf는 '~ 할 의향, ~ 하고싶은 마음이 있다' 는 뜻의 아주 자주쓰이는 표현이다.

그래서 마치 마시고싶은 맥주인것처럼 포장도 가능한데가가

Bock이라는 단어의 1차적인 의미가 원래는 숫염소라는 뜻이어서

목축에 일가견이 있는 알프스자락 바이에른 시골뜨기들 마음에 쏙 드는 이름의 맥주가 되어버린것. 

 

그렇게 아인베크의 고품질 수출맥주가 바이에른에 와서 새로운 이름으로 둔갑해버렸다.

숫염소가 그려진 Hacker pschorr의 라벨

 

단어가 단어다보니 심지어 몇몇 복 라벨에는 사실은 전혀 상관도 없는 숫염소들이 그려져있곤 하다.

아인베크 사람들이 뒷목잡아도 할말없는 마케팅...

 

모쪼록 복 비어는 그렇게 탄생했다.

그럼 도펠복은 Doppel(영어로 double)이니깐 도수가 더 강하다는 뜻일까?

맞다! 근데 이 도펠복이라는것도 그냥 심심해서 도수를 계속 올려본건 아니고 다 사연이 있다.

 

이번에도 물론 배경은 뮌헨, 유명한 P모 양조장이 주인공이다.

때는 바야흐로 종교개혁으로 온 독일이 난장판이 되던 1500년대,

카톨릭의 수호자를 자처했던 바이에른 공작가는 이탈리아에서 예수회 등등 여러 수도회를 모셔온다.

그중 한 곳이 Paulaner, 한국에도 많이 수입되는 파울라너를 만든 그 수도원이다.

 

일단 극진하게 모시겠다해서 오긴 왔는데, 하... 날씨도 좋고 먹을거도 많던 이탈리아랑 다르게 

이 독일땅은 날도 칙칙하고 식생활에서 즐거움이라는걸 찾을 수가 없다.

'그냥 돌아갈까...' 라고 한 주에도 몇 번은 생각하지 않았을까?(내 마음의소리같군)

 

그런데 사순절 금식기간에 한정해서는 독일이 이탈리아보다 완벽한 에너지원을 들고있었다.

 

파울라너 수도회 규율에 따라 부활절을 앞둔 사순기간에는 액체로된 음식만 섭취할 수 있었는데

와, 천만다행으로 당시 호프브로이하우스에서 만들던 아인푀커는 허용된다는거다!

당시의 아인푀커는 높은 도수와 더불어 지금과는 약간 다른 발표법으로 인해 칼로리도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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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뮌헨의 파울라너 수도사들은 복 비어의 도움으로 사순기간을 버텨나가게 되었다.

어찌나 의존도가 높았던지 이들은 자신들이 직접 이 맥주를 양조하게 해달라고 공작가에 청원을 넣는데

막시밀리안(몇세인지는 모르겠다)이 진짜 허가를 해줬고,

그렇게 1629년에 처음으로 자체 양조한 복 맥주는 원래의 아인푀커보다도 도수가 더 높았다.

 

이게 도펠복의 효시가 되는 파울라너 살바토르의 탄생일화.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면,

이들은 수도회 창립자 Franz von Paola를 기리며 Sankt Vater Bier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 이름조차도 바이에른에서 온전할수는 없었는데 결국 후자가 나중에 더 편한 단어로 옮겨가면서

최종적으로는 'Salvator' 라는 이름으로 공식 브랜딩을 마쳐버린다.

Paulaner Salvator, doppel-bock

 

시간이 흘러 파울라너 수도회도 이미 세속화되고 바이에른도 왕국이 된 19세기 중반

살바토르 맥주는 뮌헨사람들이 너무나도 좋아하는 맥주가 되어있었다.

이 특수를 함께 누리고싶던 여러 양조장들은 자기네들의 살바로트를 직접 양조해서 팔기 시작했다.

 

이미 사유재산이 되어있던 파울라너 양조장은 당연히도 소송을 걸었다.

그리고 바이에른 왕국 법원이 살바토르의 상표권을 인정하면서 살바토르는 파울라너 독자상표가 되었고

다른 양조장들은 살바토르라는 이름을 더이상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당시 다른 양조장들은 살바토르가 상표명이 아니라 '밀맥', '흑맥' 같은 맥주 종류라고 주장했다)

 

위 숫염소 라벨이 붙은 하커프쇼어 맥주 라벨을 잘 보면 'Animator(아니마토어)' 이름이 보이는데

살바토어를 팔 수 없게되자 비슷한 느낌이라도 주겠다고 'or'로 끝나는 이름을 붙인 결과물이다. 

슈나이더바이세는 자존심을 지켰다

 

오늘의 주인공 슈나이더바이세는 이 와중에서도 자존심을 지켰다.

이들의 도펠복은 Aventinus, or로 끝나지 않는다.

 

맛은... 말할것도 없다.

도펠복 특유의 카라멜향이 훌륭하게 입안에 번져나가는 이 아벤티누스는

도수가 8.2%나 되는데 생각보다 쓴 맛조차 별로 안느껴진다.

 

하지만 조심하자.

부드럽게 삭 넘어간다고 너무 꼴깍꼴깍 마신다면... 

내가 마신 알콜이 혈관을 타고 지금 어디를 지나며 내 몸을 데우는지 금방 느낄 수 있을거다 :D

 

조만간 여름이 오면 도펠복의 또 하나의 변종, 아이스복을 먹어볼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