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여덟번째 산책③] 2회차 부르크하우젠, 다시 한 번 무단 월경하기 :D

[스물여덟번째 산책②] 부르크하우젠 A to Z, 시립박물관

 

시립박물관 직원들이 딱 초조함을 느끼기 시작할무렵 박물관을 나섰다.

한 사람 그래도 나오는구나 하는 기쁨이라도 미리 만끽하시라고 부러 발소리도 크게 냈다.

 

사람과 회사마다야 다르겠지만, 독일에서 영업시간이 네 시까지라고 할때

그들이 느끼는 이상적인 퇴근은 네 시에 집을 향해 출발하는 그런 그림인것같다. 

 

피차 뒤에 한둘 관람객이 더 있기야 했지만 눈총받고싶지는 않아서 55분에는 건물을 나왔다.

11월의 오후 4시는 솔찬히 어둡다

 

건물을 나와 가장먼저 향한 곳은 지난번 방문때 가보고싶었지만 그러지 못한 골목길이다.

'안뜰부터 보고와서 걸어봐야겠다' 하고 다녀온사이 거짓말처럼 철문이 닫혀있던 이쪽 골목에서는

그때도 오늘처럼 오솔길 끄트머리에만 때이른 초저녁 그림자를 가까스로 피해있었다.

성벽의 남쪽 끝이었다

 

신비로워보이던 골목 끝 모퉁이를 돌아내자 이 골목이 어디로 이어지는지 확실히 알게되었다.

바로 세계에서 가장 길다는 그 부르크하우젠 성의 남쪽 끝, 세상이 내려다보이는 곳이었다. 

외성 뒤로 구시가지와 신시가지가 모두 보인다

 

펄쩍 한 단 위로 뛰어오르니 옛 부르크하우젠의 남쪽 시가지 풍경이 한 눈에 들어왔다.

외성 너머로 구시가지와 신시가지가 뒤섞여있고, 그 너머로는 조용히 흘러가는 Salzach가

또 그 너 머로는 오스트리아가 되어버린 옛 부르크하우젠의 농토가

더 뒤로는 이제 산과 구름들이 배경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하나 의아했던건 유난히 어둑하고 신비로운 분위기의 골목길을 지나온탓에

뭔가 해가 거의 넘었다고 생각했었다마는 아직까지는 태양이 하늘 높은곳에 걸려있었다는거다. 

저 둥근 친구의 퇴근까지 한 시간여 남짓은 남아보였지만, 나도 아직 가보고싶은 곳이 남아있어서

그냥 여기 높은 곳에서 초겨울 일몰이나 지켜보면서 감상에 젖어보고싶은 마음을 다스렸다. 

이제 슬슬 내려갈 길을 찾아본다

 

지난번 1회차 방문때 서쪽 샛길에서 성 바깥으로 빠져나가는 길을 찾았었던게 생각이 났다.

성벽 위쪽에서 내려다보니 바로 그 길이 보여 그리로 향한다.

생각보다 높은 성벽

 

위에서 볼때는 몰랐는데 공작부인께서 계시던 곳이라 그런지 이쪽 성벽이 유난스레 높았다.

여기쪽에 자라는 풀들은 이제 한 두어달은 햇빛구경도 제대로 못하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겨울을 앞두고는 온갖것에 측은한 마음이 가버린달까...

쪽문을 나서자마자 '생각보다' 무난한 내리막계단이!

 

이쪽에도 열려있는 간이성문이 하나 있었고 거길 통과하니 또 하나 나무문이 나왔다.

나무문에는 희한하게 흰 칠이 되어있었는데 그 이유는 곧 내려가서 밝혀진다 :D

 

그 나무문도 지나치자 곧바로 뭐 '생각보다는' 무난한 내리막 계단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 그래도 아직은 가을이다

 

보다시피 왼쪽으론 높다란 성벽에 가로막혀 보이는게 없지만 사실 시선이 왼쪽으로 향할 겨를이 없다.

오른편으로 아직 가을의 향기가 가득 남은 풍경이 펼쳐져있기 때문이다.

성에서 관리할는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비탈을 따라 있는 자그마한 포도밭도

호숫가와 그 너머의 노랗게 물든 나무들 모두 저녁놀을 밭아 황금빛을 발하고있었다.

앗, 왼쪽을 보긴 봤구나

 

앗, 위의 발언을 바로 번복해야겠다. 왼쪽을 보긴 봤었네...

반대편 언덕에 세워진 또 하나의 방어탑과 이곳 사이를 따라 성벽이 빨랫줄처럼 늘어져있는데

호수의 남쪽 경계이기도 하다.

 

모쪼록 다 내려왔다

 

모쪼록 눈 깜짝할 사이에 다 내려왔다.

호숫가에는 잔디밭과 탈의실이 있었고, 호수 위 한쪽으로는 수영장에서 볼법한 레인도 쳐져있었다.

단풍과 낙엽 사이에서도 여름의 모습이 쉽게 슥슥 그려졌다.

 

뒤를 돌아봤을때 눈에 들어오는 성의 모습도 상당히 멋있었다마는

여기도 내가 가고싶던 포인트는 아니었고, 그곳으로 가려면 본격적으로 성을 나가야했다.

위에 출입구에 흰 표시가 보이면, 문이 닫힌겁니다!!

 

성 밖으로 나가려는데 눈높이보다 살짝 위에 붙은 표지판 하나가 눈에 쏙 들어왔다.

아, 그래서 문에 흰 칠갑이 그렇게 되어있었구만!

 

밑에서 봤을때 출입문에 흰 칠갑이 보이면 출입구가 닫혀있는거란다.

나름 귀엽고 친절한 부르크하우젠 성의 배려였달까 :D

성문을 통과해서

 

그럼 다시 성문을 통과해서 바깥으로 가볼까!

 

이쪽에서는 사진은 한 장도 남기지 않았고 구체적인 그림도 그려지지 않는데,

이 짧은 골목길이 상당히 정감가는 모습이었다는 어렴풋한 느낌이 남아있다.

전형적인 독일풍 칙칙-파스텔톤

 

모쪼록 호숫가에 개구멍처럼 나있는 작은 성문을 통과해 그 골목을 따라 앞으로 조금 더 나아가면

부르크하우젠의 남쪽 구시가지와 만나게 되는데,

시청이나 다른 중요한(?) 건물들이 모여있는 동쪽 구시가지보다 단촐하고 정갈한 느낌이다.

 

건물 외벽은 역시 너무나 전형적인 독일풍 '칙칙-파스텔' 톤이다. 

어떻게 이 사람들은 매번  이렇게 파스텔톤을 회색빛 낭낭하게 가져가쓸 수가 있는걸까... 

독일에 마음의 병을 가진 사람들이 많은데 건물 외벽 색만 조금 손봐도 효험이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옛 국경검문소

 

내가 뮌헨으로 돌아가기 전에 가보려는 곳은 국경 너머에 있는 자그마한 성당 한 곳이다.

성당 자체에 관심이 있다기보다는 그곳에서 성의 남쪽 얼굴을 가장 잘 볼 수 있는것같기 때문이었다.

커다란 무언가를 보기 위해서는 항상 멀리 떨어져야하는 법이다.

 

마을 남쪽에 새로운 잘자흐 다리 한중간부터는 오스트리아 영토다.

지금에야 EU와 쉥겐조약 덕분에 자유롭게 통행이 가능하지만 옛날엔 엄연히 국경이었기때문에

다리 바로 앞쪽으로 국경검문소로 쓰이던 건물이 길을 가로막고있다.

 

오늘날엔 부르크하우젠에 모여든 예술가들이 결성한 공동체 'Die Burg'가 공방으로 사용중이다.

한때 국경검문소라고 쓰여있었을 자리에 그려넣은 눈알 그림이 상당히 인상적이다.

경찰이 서있긴 하다

 

그래도 자동차가 통행하는 국경이다보니 경찰차 한 대가 서있기는 했다.

어쩌면 저 날로부터 반 년이 흐른 지금 이 순간에는 제법 많은 경찰이 서있을지도 모르겠다.

독일도 총선 이후 들어선 새 정권에서 불법 이주민 차단을 위한 국경검문 강화를 주문했다.

그 뒤로 부쩍 잘츠부르크를 오가는 기차에서 경찰 검문에 걸려 내려지는 사람도 자주 보이는듯 하고,

무심해보이겠지만 더 나에게 직접적인 변화는 길어진 검문으로 인해 연착이 더 심해졌다...

적어도 저 날엔 나를 붙잡은 사람은 없었다

 

적어도 저 날엔 나를 붙잡은 사람은 없었다.

사실 나를 붙잡아세운다면 다시 독일로 들어오는게 상당히 피곤했을텐데 말이다.

뮌헨에서 비자를 받는다는게 얼마나 끔찍한 일이냐면 저 시점까지도 아직 비자인터뷰조차 하지 못했다.

 

내가 기어이 이렇게 걸어서 출국을 감행하는데에 반항적인 의미도 약간 서려있다 :D

 

"막을테면 막아보던가!(진짜 그러진 말아주세요)"

그림자가 길어졌다

 

여유있게 강 양쪽 구경도 하고 사진도 찍고 하면서 태평하게 건너가는 본인,

그나저나 가을이 끝나갈무렵의 강을 낀 풍경이 고요하니 아름답긴 했다.

강의 정확히 한 중간부터, 오스트리아 영토

 

강의 정확히 한중간부터는 오스트리아의 영토다.

그걸 알리는 표지판 말고는 지금 여기가 서로다른 두 나라를 가르는 지점임을 알 방법은 딱히 없다.

 

유럽이란... 

이런 자유로운 국가연합의 개념을 만들어서 현실에 가져온 사람들은 정말 낭만적이었던것같다.

부디 오래오래 잘 작동해주길...

오버외스터라이히 현에 들어왔음을 알리는 석판

 

다리의 끝에는 오스트리아의 오버외스터라이히(Oberösterreich) 현에 들어왔음을 알리는 석판이 있다.

독일제국의 망령이란게 있다면 아마 상당히 분통터져할게 분명하다.

원래 너무나 당연한 부르크하우젠의 조세구역이었으니깐.

목적지에 도착했다

 

강가를 따라 잠시동안 살살 걸으니 목적지에 곰방 도착했다.

"Wallfahrtskirche Maria Ach, 아흐(마을이름이다)의 마리아 순례성당"

이곳 제단도 부르크하우젠 건축공방 사람들이 작업했다는걸 조금전 시립박물관에서 봤었다.

 

소박한 규모의 마을성당에 그러고보니 상당히 감각적이고 화려한 제단이 있었다.

이 모습을 보고싶었달까

 

성당에 앉아 짧게 기도하고 나와 성당앞 잔디밭으로 나와섰다.

건너편 높다랗게 솟은 언덕에는 부르크하우젠 성의 가장 핵심부가 버티고 서있다.

 

그냥 딱 이 모습이 보고싶었달까.

조금 더 가까이

 

시간이 많으면 강 이편을 따라서 옛 잘자흐 다리까지 느긋하게 산책하고 싶었다.

저물어가는 해를 보면서까지 그럴 용기는 없어서 아주 살짝만 앞으로 나서보고 발길을 돌리기로한다.

 

그래도 조금은 더 가보길 잘한게 헛간 하나가 프레임에 예쁘게 들어오는 마음에드는 곳을 찾았다.

해가 저물어가는 도로

 

다시 독일로 돌아가려고 뒤를 돌아서는데 도로에 스며든 햇빛이 너무 아름다웠다.

'이 순간을 눈에 담은것 만으로도 오늘의 산책이 가치있다는 생각이 든다' 라고 메모를 해뒀다.

사진을 다시 보니 그 생각에 다시 한 번 공감이 된다.

귀국했습니다

 

짧은 오스트리아 여행을 마무리하고 귀국을 했다.

모처럼 돌아온 독일땅은 다행이 아직 초저녁이었다 :D

역으로 돌아가는 길을 올때와 조금 다르게 잡아봐도 괜찮을것 같았다.

 

길잡는데 천부적 재능을 가졌다고 자부하는 나도 해진뒤의 초행길은 조금 꺼리는 편이다.

애시당초에 새로운 길을 걸어본다는게 그 길이 가진 다양한 표정을 보고싶은거라서

어둠속에 잠긴 뒤에는 구태여 그곳을 걸을 이유가 희박해지는것도 사실이다.

호수 서쪽 언덕을 오르기로 했다

 

그래서 감사한 마음으로 호수 서쪽 언덕길을 타고 올라봤다.

동네 사람들도 하루의 마지막을 즐기러 많이들 나와있었다.

반대편에 부르크하우젠 성이 다시 보인다

 

올라가자마자 아까 성벽위에 올라서서 봤던 반대편 방어탑이 있었다. 

건너편에서 봤을때보다는 제법 컸다.

그 옆을 산책하는 노부부가 유난히 작아보인다.

2차대전 유대인 묘지

 

언덕 한켠 양지바른곳에는 묘지가 하나 있다. 

동네 공동묘지같지 않게 드문드문 세워진 묘비에 그 흔한 꽃 하나도 심어져있지 않다.

땅속에 누운 사람 이름조차 알 수 없는 이곳은 근처 수용소에서 죽어간 2차대전 희생자 묘지다.

물론 대부분이 유대인이었을거다.

 

전황이 불리하게 돌아가자 나치당국은 뮐도르프 근처에 대형 벙커를 만들기로 결정하고 

다하우의 수형자들을 데려다가 강제노동을 시켰다.

이를 위해 생긴 수용소 분소들에서 가혹한 작업조건을 견디지 못하고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는데,

전쟁이 끝나고 수용소들을 해방한 미군은 뮐도르프 근처 메텐하임 숲에서 집단매장지를 발견했다.

 

그때 발견된 총 2,249구의 이름모를 시신중 253구가 여기 부르크하우젠 묘지에 할당되었다.

그리고 부르크하우젠 모든 시민들은 이 매장의식에 참석해서 지켜봐야했다고 기록이 남아있다. 

 

독일에서의 산책에서는 잊을만 하면 접하게되는 이런 이야기.

이 전쟁에서 가장 큰 피해자임을 자처하는 이스라엘도

지금 이 순간 벌써 두 개의 전쟁을 수행중에 있다는게 참 씁쓸한 현실인것같다.

그리고 바로 묘지 앞에서는 성이 건너다보인다

 

묘지가 참 양지바른곳에 있긴 하다.

나무가 열린 사이로 바로 부르크하우젠의 본성이 곧바로 건너다보인다.

산책하는 사람들을 조금 담아본다

 

모쪼록 무거운 마음은 뒤로 하고 계속 발걸음을 옮겨보기로 한다.

고맙게도 이제 갓 걷기 시작한것같은 귀여운 친구가 아장아장 걷는 모습에 기분이 많이 밝아졌다.

 

서쪽 언덕에는 반대편과 달리 구조물도 별로 없이 들판이 탁 트여있다.

슬슬 짙어져가는 저녁놀을 감상하면서 나도 천천히 저녁을 맞이할 준비를 했다.

들판과 서쪽 하늘

 

역이 있는 신시가지로 돌아가는 길에 호수가를 한 번 살짝 더 들렀다.

아무래도 벌써 두 번이나 온 이 작은 도시에 다시 오게되긴 할까 하는 합리적인 생각에

부르크하우젠의 매력이 담긴 구석구석을 잘 눈에 담아서 오고싶었다.

어두워진 호수에 비치는 세계에서 가장 긴 성

 

어두워진 호수위로 하나둘씩 조명이 켜지는 부르크하우젠 성이 반사되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한 번씩 뒤돌아보면서 다시 역을 향해 출발했다.

---

독일의 겨울 낮은 어찌나 짧은지 모른다.

지는 해를 손가락으로 집어 붙잡아둘 수도 없으니 아침에 내가 서두르는게 방법임을 잘 알아서

그 날도 아침부터 나름 부산스럽게 준비해봤는데도 충분치는 않아버렸다.

 

역시 아무래도 왕복 네 시간부터의 마을들은 겨울산책이 쉽지 않긴 하다.

그럼에도 지금 지난 겨울을 되돌아보건대 맑은 날을 잘 찾아 참 부지런히도 돌아다녔다.

대단한녀석...

 

요즘은 의외로 안가본 곳들보다 이미 한두번씩 내 발길이 닿았던 곳들을 

다른 계절의 모습으로 다시 찾아보고싶은 마음이 자주 들어서 벌써 몇 곳을 다녀왔다.

 

저 날에는 부르크하우젠은 이제 다시 안찾겠지 하는 마음이었는데

여름의 문턱도 넘었겠다 다음주에 모처럼 다시 찾아볼까 하는 생각이 또 고개를 들고있다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