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지고보면 첫눈은 아니긴 했다.
3일즈음 전인가 아침에 일어났더니 세상에 살짝 눈같은게 덮여있기는 했으니까 말이다.
뭐, 내 기준으로는 첫 눈의 조건을 충족시키지는 못하는 녀석이었어서 못본체했지만 :D
다들 무조건 처음 오는 눈을 첫 눈으로 인정한단말야 설마?
모쪼록 중요한건 내 기분과 낭만인만큼 나는 저 날의 눈을 첫 눈으로 하기로 했었다.

그 중요한 첫 눈을 하마터면 놓칠뻔했다.
그날따라 왜그렇게 졸렸는지 한 서너시즈음 몰려오는 잠기운에 잠깐 몸을 뉘였는데
막 울리는 핸드폰 진동소리에 깨어난게 저녁이라기도 어려운 밤 아홉시였다.
점심에 맥주라도 마셨던가...? 아니면 이유없이 졸린 겨울을 유달리 세게 탄 날이었을까.
진동의 주인공은 어학당에 함께 다니는 소중한 새 한국인 친구의 카톡소리였다.
'형님 바깥에 눈이 정말 예쁘게 옵니다, 미쳤다는 말밖에 안나오네요...'
황급히 침실 롤라덴을 걷어올려보니 눈이란게 정말 아름답게도 오고있었다.

행여나 그사이에 눈이 멎을까봐 주섬주섬 아무 옷이나 주워입고는 바깥으로 나섰다.
히야... 온 세상 내려앉을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하양으로 가득했다.
이렇게나 깨끗하고 포근한 눈이라니, 뮌헨 시골짝엔 눈도 이렇게 예쁘게 내려앉는구나...

나가자마자 집 바로 뒷 골목에서 아주 예쁜 그림을 마주쳤다.
새빨간 앵두(앵두 맞나...?) 위에도 흰 눈이 쌓여서 서로가 서로를 도드라지게 하고 있었다.
사진도 찍고 가만서서 구경도 하고 간간이 바람에 떨어지는 눈뭉치도 피해가면서 놀다가
마을 곳곳을 다시 누비기 시작했다.



아직까지도 눈도 계속 내리고있어서 산책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세상은 흰 이불을 덮고 마치 잠들어있는 것처럼 고요한 가운데 나홀로 갓 쌓인 깨끗한 눈을 밟는다는것.
발아래 뽀득거리는 그 눈뭉치 위로 내 발자국을 찍는 특권을 충분히 즐긴 후에 집으로 들어왔고,
그제서야 저녁을 차려먹었다.
그리고 아마도 그렇게 힘들이지 않고 다시 잠들었을거다 :D
그건 내가 가진 최고의 능력이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과 함께 세상에 빛이 다시금 찾아왔을때
간밤에 눈이 만들어놓은 작품이 온전하게 두 눈 가득 들어왔다 :D
충분히 만족스럽게 흩뿌리고 간건지 하늘도 맑게 개어서 더없이 예쁜 모습이었다.
게다가 흰 눈밭은 세상이 그 위에 드리우는 빛을 그대로 머금는터라
마을앞 들판은 찬란한 아침햇살을 다시 세상으로 되돌려주고있었다.
겨울이 제아무리 회백색에 침울하다지만
또 이런 모습을 한 번씩 선물해준다면야 그렇게까지 미워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닐까.
그렇게 맞은 첫 눈으로 이제는 겨울의 한 가운데 들어왔음을 실감했다.
첫눈오는날의 산책일기 끝!

번외편 1 :
밤사이에 사람의 온기가 거의 없던 기차역에는 동네보다 눈이 더 많이 쌓여있었다.
역시나 눈때문인지 원래 그런건지 S-Bahn이 연착되어있는 동안
레기오날 열차가 양쪽 방향에서 한 대씩 지나갔는데,
그때마다 어마어마한 눈폭풍이 일어나서 주변에 어떤것도 볼 수 없었다.

번외편 2 :
눈처럼 하얀 아이란은 정말 맛있다.
혹시라도 독일에 거주중인데 아직까지도 이 위대한 터키 요거트를 안먹어본 사람이라면
오늘 바로 아무 마트나 가서 한 팩 사마셔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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