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 산책] 님펜부르크 궁전 그리고 영국정원

뮌헨에서 집을 구한다는건 악몽과도 같은 일이다.

특히, 노란 피부색을 가진 외국인에게는 지옥 중에서도

가장 깊은 9층 코기토에 와있는것 같은 기분을 선사해주는 이곳 뮌헨이다.

 

코기토는 배반자들의 지옥이다(세입자 대표 : 유다).

내가 한국을 괜히 배반하고 와서 여기에 갇혀있나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다.

 

특히, 거의 계약 해줄것처럼 면접본 집주인들에게서 

'다른 임차인을 찾았습니다. 당신의 구'집'활동에 성과가 있길 기원합니다' 라는

메시지를 계속 받다 보면,

(그나마 보내주는 사람이 고마운건가...

통보없이 채팅창을 비활성화해버리는 경우도 부지기수라)

 

9층에 빠질 사람들은 내가 아니라 저 작자들인데

루시퍼가 같은 서양친구들이라고 편파판정이 좀 심한게 아닌가 하는 울분도 솟는다.

 

들여다봐도 달라지지 않는 immo 어플과 내 구글 메일만 지키고 앉아있는들

하염없이 아름다운 이 독일의 여름날이 아까워

그 날도 오후 세 시 경에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집과 씨름하다 보면 항상 가장 더울 시간에 나가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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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지근거리에 있는 님펜부르크로 걸어가보기로 했다.

엄연히 따지면 님펜부르크가 지근거리에 있다기보다는 

궁전에서부터 뻗어나오는 작은 운하가 끝나는 그 지점이 가까운 거지만.

요렇게 걸어가서 저 길다란 운하를 따라 님펜부르크까지 가겠다는 뜨거운 계획

 

 

지도의 화살표가 끝나는 곳에는 제법 큰 연못이 하나 있고

구글맵의 제보에 따르면 그 앞에는 한 건물 안에 후버트 분수라는게 있다고 했지만

나보다 먼저 세상을 누빈 다른 인류들의 후기에 따르면 

문도 다 잠겨있고 관리도 안되는 실망스러운 공간이라고 했다.

 

어디 가볼까!

후버트분수를 가둬놓고 있는 문제의 그 건물

 

정말 튼튼하게 닫혀있었고,

어둠속의 분수는 어떻게 생겼을지 궁금은 해서 철창 가까이 갔을때는

보기와는 달리 중앙역 근처에서 나는 그런 불행의 냄새가 나서

그냥 패스.

 

역시 집단지성은 정확해!

 

저 멀리 보이는 님펜부르크 별궁

 

고개를 오른쪽으로 훽 돌려버리니

저 멀리 목적지가 보인다.

 

유럽 공통으로 별궁 건축에는 쭉 뻗어나가는 수로가 포함되어있는데,

항상 저기에 소실점을 맞춰놓고 바라보고있을 때마다

안경맞추러 가서 턱을 괴면 들여다보이는 들판 저 끝의 빨간 지붕 집 한 채가 생각나는 산책자.

(가끔은 단 한 순간도 또렷하게 보이지 않아도 내 안경에는 문제가 없던데

안경인생 32년차, 나는 아직 원리가 궁금하다)

 

걷고, 걷고 또 걷는다

 

 

해가 머리위에 떠있을 시간임에도 

걷는 길에는 나무그늘이 드리워졌음에 감사했다.

7.17에 도착했으니 이제서야 일주일이 갓 지났건만 

벌써 피부가 갈변하기 시작함을 애써 부정하고 있었다.

 

드디어 가깝게 보이기 시작하는 님펜부르크

 

님펜부르크에 도달하기 전 마지막 다리에 올라서면

이제 궁전 외관도 눈에 조금씩 들어오기 시작한다.

궁전 안에서 본 설명에는 분명히 로코코라고 써있었다.

 

사실 그런건 잘 모른다.

 

오히려 내게 흥미롭게 다가오는건

이 거대한(정원까지 포함하면 뮌헨 구도심보다 훨씬 크다) 궁전이

근처 동네들을 어떻게 가르고 있는지와 같은 사실들.

 

님펜부르크는 오버멘징(Obermenzing)과

노이하우젠-님펜부르크(Neuhausen-Nymphenburg) 지역을

가르는 거대한 경계선 역할을 한다.

 

그리고 정원의 서쪽 외곽을 따라서 뮌헨으로 들어오는 철도 노선이 두 갈래나 놓여있어서

이 여름궁전은 뮌헨 서편의 생활권을 자연스럽게 한 번 갈라놓는다.

 

물론 비텔스바흐 아저씨들은 그럴 의도야 없었던건 확실하다.

여름별궁은 절대 도시와 붙여 건설하는 법이 없어서 심증만으로 충분한데,

궁전 안 한 회랑에 물증들까지 꼼꼼하게 남겨뒀다.

이런 그림들로 가득한 방에 선 왕은 얼마나 뿌듯했을까

 

자신들이 가진 궁전, 성채와 영지들을 그린 그림으로 가득한 방 한쪽에는

바로 그 액자가 걸린 공간을 그린 풍경화도 남아있다.

님펜부르크 서편에서 뮌헨 시내가 있는 동쪽을 내려다보는 이 그림을 보면

(오른쪽 배경 저 멀리 프라우엔키르셰의 양파 첨탑이 보인다)

궁전과 도심지 사이에는 들판 뿐이다.

 

그러니 철도를 이렇게 정원 뒤로 깔아도 그 당시의 시민들은

아무런 불편함이 없었을 거고

그러니 또한 이 님펜부르크로 오는 동네 이름이 노이하우젠(신축 주택들)인 것이다.

 

여하튼 다시 아까 그 마지막 다리로 돌아가보면(멀리도 돌아왔네)

이 다리도 중요한 다리다. 

님펜부르크라는 거대한 장애물을 지나기 직전

마지막으로 차 혹은 트램을 타고 남북을 횡단할 수 있는 교통의 요지이기 때문.

 

다시 가볼까!

 

그늘이 끝나고야 말았다

 

님펜부르크 파사드가 온전히 눈에 들어오고 나서 얼마지 않아

티켓을 사고있는 산책자.

 

내부공간에 가면 급격하게 사진이 줄어드는데, 

원래도 그런 편이지만, 저땐 블로그에 기록해보겠다는 결심조차 안 선 시점이라

더욱이 없긴 하다.

(뭐 내부 잘 찍어둔 다른 블로그 널렸으니깐 ㅋㅋㅋㅋ 내 일기는 내 스타일로!)

 

 

역시 나는 바깥이 좋아

 

정말 안에서 남긴 사진이 저 위의 님펜부르크 전경과

내 시그니처 창문프레임 컷 뿐이라니 좀 충격적이긴 하네...

 

그렇다고 님펜부르크가 인상적이지 않은 궁전은 절대 아니다!

특히 뚜렷한 인상을 남기는 방이 하나 있긴 한데,

 

바이에른 왕국 2대왕 되시는 루트비히 1세(재위 : 1825~1848)의 역작

'아름다움의 방(Schönheitgalerie)' 이다.

 

비텔스바흐 바이에른 왕들은 다들 뭔가에 하나씩 미쳐있던 경향이 있는데,

루트비히 1세의 경우는 아름다움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름다운 '여성'.

 

그가 생각하는 미의 기준을 충족하는 바이에른 전역의 수십명 여성들을

귀천을 따지지 않고 그려 모아둔 그의 소중한 컬렉션.

다 완성했을때는 뮌헨 시내에서 전시회도 열었을 정도로 공들였다고 한다.

 

사실 루트비히 1세는 대신들에 의해 강제퇴위 당했는데,

그 사유는 여배우 롤라 몬테즈와의 불륜 때문이었다.

(불륜이라기엔 대놓고 국고를 엄청 퍼다날랐다고는 한다)

 

그리고 그분 초상화도 있긴 한데, 

내 개인적 기준에서는 썩 미인은 아니셨던거로... 

 

그러고보니 님펜부르크 궁전의 이름 자체가 님프들의 성이라는 뜻이다.

베 선생님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참고로 컬렉션을 지시받은 화가는 유명한 베토벤 초상화를 그린

요셉 칼 슈틸러(Joseph Karl Stieler) 선생. 

 

아, 저 방이 내게 조금 더 충격적이었던거는

위치가... 왕비님 방 바로 옆이었던 것... 

(얼마나 속에 천불이 났을까...)

 

 

호로록 궁전을 나와서 여기 정원을 산책할까 하다가

모처럼 뮌헨에 왔는데 영국정원을 가보는게 낫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전차를 타려면 아까 그 마지막 다리가 있던 거리까지는 나가야한다.

온 길을 그대로 되돌아가면 심심하니 이번엔 

궁전 부속건물들을 지나가보기로 한다.

뭔가 사유지라 가면 안될것같이 생겼지만, 나는 간다

이런 공간이 나왔다

 

왕정시대에 궁전을 관리하던 노동계급이 숙소로 썼을것 같은 건물도 지났다.

지금은 일반 가정집으로 쓰이는것도 같았는데,

여기는 빨래너는 줄이 있다. 저거 상당히 탐난다(유럽에 빨래 건조대가 좀 부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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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방을 끌어안고 트램에 앉아 꾸벅꾸벅 30여분을 졸고 나니

영국정원이 슬슬 보인다.

 

오랜만에 재회하는 뮌헨 사람들의 소중한 휴식처다.

옛날에 여기 왔을때는 친구들이랑 프리즈비를 했었는데...

(언제쯤 친구가 생길까 이번엔)

 

어디에서나 보이는 저 양파돔

 

영국정원의 상징적인 건축물, Monopteros

뮌헨사람들의 좋은 물놀이장이기도 한 영국정원

 

영국정원의 하이라이트는 인공 서핑장에 있다고 생각한다.

뮌헨시에서 이자르 지류 하나의 강바닥을 조금 손을봐서 항상 급류가 일게 해둔 곳이 있다.

추워지기 전까지 주구장창 서핑하는 사람들로 붐비는 곳이라 

나도 즐겨 (하지는 않고) 구경하던 곳인데,

 

피차 다음에도 많이 올 영국정원이기 때문에

오늘은 가로로만 가로질러 숙소로 돌아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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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황급히 글을 마무리하는 느낌이 들었다면 

예리한 사람이다.

 

방이 더워서 숙소 발코니 문을 활짝 열어둘 수밖에 없는데,

영국정원으로 가기로 했다는 내용을 쓰는 시점에 해가 완전히 넘었다

(벌써 아홉시구나, 쌀 불려야겠다)

 

계속 노트북으로 글을 쓰다간

이 동네 날벌레들은 다 내 눈앞에 모여서 앵앵댈게 자명하기 때문에 

모처럼 각설하고 끊어버릴 예정이다.

 

산책을 마친 자의 건강한 저녁식사

 

하나만 더 쓰고.

그 날의 저녁은

전날 저녁 텅 빈 지하철역에서 본 모습을 오마주해봤다.

 

당근... 

저 당근으로 말할것같으면 고작 1.5유로 주고 샀는데

열 뿌리가 와서 먹어도 먹어도 줄지 않아 나를 무섭게 했던 친구다.

 

슬슬 뮌헨의 상징들은 조금씩 다 스쳐가고 있는

일주일차의 산책자.

 

25.07.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