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번째 산책] 다하우 성 그리고 암퍼 강 산책

이전 글에서 언급했다시피, 

란츠베르크 다음 산책지로 다하우를 결정한건 의도된건 아니었다.

게다가 이 마을을 유명하게 만드는 그 곳은 한참 뒤에야 가게 되고,

나는 그쪽 테마를 그렇게 좋아하지는 또 않는다.

(예쁜것만 보자 주의)

 

이번에 나를 이곳으로 이끈건 다하우 성(Schloss Dachau) 

그리고 거기에서부터 이어지는 암퍼(Amper) 강변 산책로다.

안녕하세요, 암퍼입니다!

 

2차대전 수용소의 명성에 항상 가려지지만

사실 다하우는 작고 아기자기한 매력을 가진 마을이다고 한다.

 

뮌헨 방향으로 한없이 넓게 펼쳐진 습지대 끝에 

갑작스럽게 솟아오른 구릉지대가 만나는 곳에 생긴 다하우는

과거에도 대도시였던 뮌헨과 아우구스부르크를 이어주는 도로상에 있는데다가 

안정적인 지형과 많은 수로를 가진 덕분에 

13세기부터 이미 장이 서는 마을로서 번성했다.

 

1800년대에는 자연을 사랑하는 예술가들이 대거 정착해 살 정도로

평화롭고 정겨운 마을이었다고 하는데

단지, 악마같은 그 무리가 뮌헨과 가까운 이곳 폐공장지대에 수용소를 세웠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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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하우에는 두 개의 역이 있다.

하나는 다하우 기차역, 그리고 다하우 Stadt(도시).

Stadt 역은 구시가지와 조금 더 가깝긴 한데 어차피 버스를 타긴 해야해서

결국 그냥 기차역에 내려서 수시로 오는 버스들중 하나를 골라타는게 더 빠르고 편하다.

S2 를 타면 금방 다하우에 닿는다, 제법 오래된 모델이 왔다

 

다하우 문장은 세 개의 부분으로 구성되어있다.

하단 좌측은 다하우 백작가문의 문장, 우측은 뭐 보다시피 파란 뱀인데

옛날에 백작중 하나가 밀라노 지방의 Visconti 가문에 장가가면서

결혼선물로 다하우를 가져다 바쳐서 그때부터 문장에 포함되었다고 한다.

 

마지막 상단부에 새총같은게 제일 어이없는 킬포인데,

대체 저게 정확이 어디서 나온건지 모르겠다고 한다(시청 홈페이지 오피셜임).

다하우 문장

 

위에 언급했듯 다하우는 땅이 갑작스럽게 솟은 지역에 있다.

특히 근래에 들어 확장된 다하우가 아니라 

다하우 백작과 시민들이 살던 다하우는 구릉지대에 한정된다.

 

이걸 몰랐을때 사실 잠깐 내려서 동네구경도 할 겸

구시가지까지 걸어들어갈까 하는 계획도 품었었는데,

버스타고 올라가면서 안그러길 잘했다는 생각을 좀 했다.

(그렇게 가파르진 않지만 괜히 미리감치 땀을 빼고싶지는 않을 뿐이다)

오늘도 하염없이 푸르른 독일

 

시청 앞 광장에 내렸다.

시청이라고 해봐야 단촐한 건물 한 채가 전부인 작은 마을이지만,

엄연히 시로 승격된 다하우다.

볼거리가 제법 되는것 마냥 이정표가 많지만, 사실 그렇게 뭐가 많은 동네는 아니다

 

시선을 살짝 돌리면 옛 독일 가옥들이 눈에 들어온다.

역시 투박하고 예쁜게 내스타일...

(왜 저런 집은 매물로 안나올까)

 

어쩌다보니 성당 들르는걸 눈앞에 두고도 깜빡했다.

다음에 들를 일이 있겠거니 싶지만 내심 아쉽다.

성으로 올라가는 길, 오르막길에서는 자주 뒤돌아보는 습관이 있다

 

뙤약볕이 좀 따가워서 발걸음을 조금 재촉해보았다.

성으로 가려면 아주 조금의 오르막길만 거치면 된다. 

버스가 제법 올려다준 덕분이다.

오르막 끝에 다하우 성이 보인다

 

머지않아 바로 다하우 성 한귀퉁이가 시야에 들어오는데,

사실 그 때 보이는 건물이 다하우 성의 전부.

독채 건물이고, 그마저도 지금은 성으로서의 기능은 전혀 하지 않고

카페 겸 레스토랑으로 쓰이고 있다.

(저 날은 닫혀있었는데, 다음에 다시 찾았을때는 커피 한 잔을 즐기게 해줬다)

다 올라가서 보이는 모습은 성의 뒷면이다

 

성은 다하우에서 가장 높은 지대에 위치해있다.

그러다보니 여기에서 내려다보이는 다하우 전경이 정말 시원하다.

당시 대기상태가 좀 불안정해서 시야가 그렇게까지 좋은 날은 아니었음에도

알프스에 가로막히는 곳 까지 전망이 닿았다.

더위를 잊게 해주는 풍경이다.

사진으로는 흐릿하지만, 육안으로는 저 배경 끝에 늘어선 알프스가 제법 선명히 보였다

 

가만히 한 5분여를 멍때리고 있었을까

누가 부르는 소리가 들려 쳐다보니 아저씨와 할아버지 그 사이 어드매에 있는듯한

독일 분이 담배를 손에 물고 나를 보고있었다.

 

간단한 스몰톡(유럽 공통 필수과정이라) 이후에 

아저씨는 내게 허락을 구하고 여기서 보이는 것들을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자기가 정말 좋아하는 공간이자 자랑같은 곳이라고 했다.

나도 같은 생각이었다.

사람 머리에서 생각이란걸 잠깐이나마 지울 수 있는 곳은 훌륭한 곳이다.

줌을 땡겨보니 프라우엔키르셰가 어김없이 보인다. 역시 쌍양파는 대단해

 

아저씨와 함께 저 멀리 뮌헨의 알리안츠 아레나, 올림피아 타워, 

몇 없는 고층빌딩인 O2 타워, 프라우엔키르셰, 추크슈피체(Zugspitze)를 둘러봤다.

자기는 다시 일하러 가봐야한다며 쿨하게 떠나가는 아저씨

 

그래도 자기는 가까이 보이는 다하우의 푸르름이 사랑스럽다면서

좋은 오후를 보내라는 말과 함께 떠나가는 독일 아저씨.

사실 독일 사람들이 말하는건 무뚝뚝해도 마음은 따뜻한 편이다.

이런 소소한 친절이 그 날의 모든 산책길을 행복하게 만들어준다.

아저씨와 함께했던 바로 그 공간, 한낮에도 시원한 그늘이다

문은 항상 어느정도의 설렘을 안고있다

 

시내로 내려가는 방향에 정원으로 통하는 노란 쪽문이 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올법하게 생겼는데, 

여기를 통과하면 아까의 전망 만큼이나 감탄을 자아내는 정원이 기다리고있다.

여름은 정말이지 식물들의 생기로 가득한 계절인것같다

곳곳에 사과가 탐스럽게 달린 사과나무가 심어져있다

 

예쁘게도 가꿔진 이 정원은 대체 누가 관리하는지

8월까지도 아직 꽃이 활짝 피어있는데다가

탐스럽게 익어가는 사과가 주렁주렁 달린 사과나무들이 줄지어 서있는데,

그 한켠을 산책하고, 그늘에 앉아 책을 읽는 다하우 사람들이 또 부러워졌다.

(어디 가면 꼭 한 번씩은 부러움에 가득 사로잡히는듯)

정확히 정원 한가운데서 바라본 다하우 성

정원 한쪽의 테라스, 다하우에 살게되면 여기에 좀 자주 와볼 생각이다

알프스 병풍도 친절하게 설명해놓은 다하우 성

 

나무터널에 벤치가 있길래 가방에서 물도 꺼내 마실겸

잠깐 책 한 챕터만 읽고 가기로 했다.

산책나와서 책읽는건 교환학생 시절부터 계속해온 내 (허세 가득한)사랑하는 여가생활

 

세상이 고요한 가운데 살랑이는 바람을 느끼면서 읽는 책만큼

잘되는 독서가 없다.

오늘의 독서스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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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 반대편 문을 나서면 암퍼로 내려가는 샛길이 있다.

Amper는 뮌헨 남서쪽 Ammersee(아머 호수)에서 흘러나오는 강이다.

알프스 Ammer 산맥에서 솟아난 실개천이 Ober&Unterammergau를 지나

Ammersee에 잠깐 모였다가 다시 북쪽으로 흘러내려갈때는

Amper라고 이름을 바꿔달고 출발한다.

 

다음 산책지인 Fürstenfeldbruck, 옛날에 내 친구가 살던 Olching

그리고 이곳 다하우를 거쳐 Moosburg까지 흐르고 나면 

뮌헨의 주 강인 Isar에 안겨 마찬가지로 도나우로 흘러간다.

 

이러나저러나 강물은 언덕을 만난다고 나처럼 넘어다니지는 않으니

암퍼를 만나려면 내가 내려가야한다.

다하우 성 - 암퍼를 이어주는 샛길

물고기를 위한 계단이 수력발전소 만큼이나 인상적이다

 

계단을 다 내려가면 여기에도 자그마한 수력발전소가 보인다.

파란 건물이 하늘과 제법 잘 어울린다.

 

여기 발전소 한귀퉁이에 재미난 시설이 있다.

바이에른 사람들은 물고기들에게도 발전소를 넘나들 수 있게끔 수로를 만들어줬다.

 

모양이 물고기 머리로 이게 올라가지나 싶게 생겼다.

그런데 오히려 물고기가 상류로 거슬로올라갈 입구를 찾는데는 급류가 필요하다고 한다.

그래서 정말 계단같은 길이 생겼다(저기 갇히면 어떻게해...)

 

발전소 자체는 제법 오래된 친구인데, 찾아보니 저 계단은 2010년대에 추가로 만들어졌다.

유러피언들의 환경 사랑은 가끔은 좀 지독하지만서도 본받을만하긴 하다.

왜이렇게 낙서를 좋아한담 유럽 힙찔이들

 

안내문 보는걸 즐기는 산책자.

물론 즉석에서 이해하는데 한계가 있기 때문에 보통 찍어와서 

숙소에서 사전을 펼쳐놓고 본다.

 

암퍼가 옛날에는 좀 다르게 흘렀는데, 

1952년 수력발전소를 새로(원래도 '보'가 있었다함) 지으면서 

원래 물길 방향으로는 발전량이 영 시원찮은 나머지 물줄기를 좀 돌려버렸다는 이야기가 써있다.

 

그래서 옛날에는 암퍼에 바로 붙어 강물을 공급받던 다하우 시립수영장(Familienbad)이 

암퍼 강을 잃어버리고 결국 지하수를 끌어쓰는 방식으로 전환되었다는 tmi도 있다.

(난 이런게 재밌더라...)

자세히 보면 수영장 시설이 살짝 보인다

 

그래서 강건너 수영장쪽을 빼꼼 쳐다보니

여름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정말 많긴 하다.

하기야 독일사람들은 집 매물 소개할때도 수영장이 근처에 있다고 쓰는 사람들이다.

그늘이 사라지기 시작했고 해는 머리위에서 살짝 서쪽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수영장을 조금만 지났을 뿐인데 사람이 싹 사라진다.

간혹 지나가는 자전거만 좀 있을 뿐이다.

역시 이 더위에 걷는 바보는 나 밖에 없었던걸까... 

 

벤치가 나오면 쉬어가는게 내 일반적인 행태인데

저 날은 그늘이 없는데에선 그냥 계속 걸을 수밖에 없었다.

정수리 살짝 앞쪽에 떠있는 태양이

실시간으로 나를 지져대는게 느껴지면 안그럴 수가 없다

나는 저 사진을 보면 세상이 지글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그렇지만 평화로운 암퍼

 

좀처럼 안보이더니 겨우겨우 

그늘덮인 나무의자를 하나 찾았다.

 

안그래도 집도 못구하는데, 길에서마저 

내 한 몸 쉬일데 안보이니 조금 서러울뻔도 했다.

여기서 한참을 쉬어갔다

 

유럽의 여름이란 참 신기하다.

걸으면서 그렇게 열이 가득 올라 땀도 많이 났는데,

한 20분여 앉아있었다고 땀도 몸의 열도 제법 식었다.

습하지 않은 여름이 얼마나 고마운건지 이 친구들은 알까...

숲길이 나오면 행복하다

표지판의 천국, 바로 독일이다(너무 지시사항이 많아)

 

음... 수영 금지라는데 아무래도 (경)범죄 현장을 포착한것 같다.

나도... (불법)수영하고싶다 ㅠㅠ

산책자 사실 물도 좋아한다.

나무그늘 끝에 서서...

 

위의 풍경을 본 내 소감이 혹시 예측이 되려나 모르겠다.

객관식으로 만들어보자.

1) 와... 풍경이 너무 예쁜데? 역시 나는 전원이 좋아

2) 와... 세 발짝만 더 걸어나가면 지독하게 덥겠는데? ㅈ됐다

 

정답은 뭐... 둘 다 정답이긴 한것같다.

어차피 다 그 당시 무의식을 애써 되짚어보려 하는거라 정확할리도 없고.

아직 열매는 없는 옥수수

 

길이 암퍼와 살짝 갈라져나간다.

역시나 어김없이 끝없이 펼쳐진 농토가 나왔는데,

여기는 옥수수가 꽉잡고있는 동네다.

 

아마도 이 옥수수들 대부분이 사료로 쓰일 옥수수일거다.

유럽산 옥수수는 사람 입으로는 잘 들어가는 일이 없다했다.

구미돋는 산책자(위에 무지개 스티커 말고, 나는 그쪽은 중립이야)

 

자전거 루트 안내표지가 보인다. 

매우 흥미로워 보인다! 

집 구하면 상류에서부터 쭉 내려와야지(거꾸로는 너무싫어 ㅎㅎ)

 

찻길을 만났다는건 오늘의 산책이 끝나간다는것.

이미 저 즈음에는 숙소 돌아가서 어떤 맥주를 마실지

머릿속으로 고르고 또 고르는 중이었던것 같다.

또 다른 발전소를 만났다

 

암퍼와 다시 만났을때는 마치 운하처럼 쭉 뻗은 모양이었다.

그럼 분명히 저 끝에는 또 발전소가 있다는건데, 역시 그랬다.

 

슬슬 독일을 조금 알아가는듯 한 뿌듯함을 느끼면서

Gründing 마을에 버스를 타러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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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나 저러나 다하우를 언급하면서 어두운 과거 얘기를 빼놓을 수는 없는데,

다하우에서 제일 유명한건 KZ(Konzentrationslager), 즉 2차대전 수용소다.

1933년 독일 최초로 개설된 수용소이자, 

결국 독일의 항복과 함께서야 비로소 해방된 최장수 수용소.

 

그 안에서 3만명이 넘는 사람이 죽었고, 

그 곳에 오는동안 또 수없이 많은 목숨이 의미없이 꺼져갔다.

 

이 평화로움 사이사이에 깃든 섬뜩한 이야기에 

몸서리쳐지는 곳이 독일이긴 하다.

 

다하우는 수용소는 조금 시간이 흐르고 다시 방문하긴 했는데,

모쪼록 그래도 다음 산책지는 내 기억이 맞다면 Fürstenfeldbruck

역시나 평화로운 마을이다.

 

 

Das En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