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산책] 사전답사를 빌미로 한 잘츠부르크 '산책' ②

걷다보니 조금 더웠다.

여름이었다... 

(갑자기 웬 엔딩 ㅋㅋㅋㅋ)

 

합리화를 좀 해볼 필요가 있었는데,

곧 다음주부터 공연보러 다닐때 갑자기 어떤 일이 어떻게 생길지 몰라!

화장실이 갑자기 가고싶다던지, 공연 시간이 임박했는데 버스가 안온다던지

그런 상황이 있을때는 결국 걷고 뛰어야지 않겠어? 

 

오늘은 사전답사 차원에서 걷는거다!

(근데 기가막히게 나중에 잘 써먹긴 했다)

 

휘여휘여 걷다보니 어찌저찌 호엔잘츠부르크 성채로 올라가는 푸니쿨라 승강장에 도착했다.

표를 산다.

 

휴... 생각보다 더위에 많이 지쳐서 푸니쿨라와 관련된 그 어떤 사진도 남기지 않았고

결국 남은건 돌아와서 찍은 티켓 사진뿐이니, 중요한 녀석이다.

푸니쿨라는 이렇게 생겼답니다(결국 쟤도 유리창이라 더움)

 

왕복 탑승권은 12유로인데 성채 입장료도 포함되어있다.

(대부분은 잘츠부르크 카드를 사서 오는것 같긴 하다)

 

잘츠부르크의 모든게 이 풍경 하나에 다 들어있다

 

푸니쿨라를 내려 올라온 길을 향해 섰을때

더위, 피로감 그런 불쾌한 감각들을 모두 잊었다.

 

내 두 눈앞에는 잘츠부르크의 모든 보석들이 박힌 한 폭의 풍경화가 펼쳐져있었다.

대성당, 페터 수도원, 축제극장, 고요하게 흐르는 잘자흐와 저 멀리 미라벨까지

 

이런 경치 앞에서는 으레 말이 없어지는 산책자다.

(어차피 말할 사람도 없지만)

그저 멍하니 있다가 사진으로 몇 장 남겨보려 하지만

결국 눈에 맺히는 그 먹먹한 아름다움은 담기지 않아 아쉬운 채로 떠나곤 한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옛날에는 높은 곳에서 내려다본다는게 얼마나 큰 힘을 의미했을까

높이에 대한 우리 인류의 열망은 얼마나 오랜 것인지

도달할 수 없는 하늘을 신들을 위한 공간으로 남겨두고서도

어떻게든 도달하려고 바벨탑을 쌓아올리지 않았던가.

 

결국은 지금도 이 높은 성채를 가진 잘츠부르크는 한 사람당 12유로씩을 

거둬들이고 있으니 아직도 분명 유효하긴 한 것 같다.

 

요새 안에도 들어가볼 수 있어서 한 바퀴 돌아보기로 했다.

역시 대단한 무언가는 없지만

곳곳마다 호엔잘츠부르크가 처음에는 어떻게 만들어져서

어떤 이유에서 어떤 식으로 증축되어왔는지에 대해 잔뜩 설명해준다.

 

잘츠부르크 대주교구일때부터 계속 커오던 이 성채는

결국 어느순간 전쟁의 양상이 바뀌면서 방어적 목적을 상실하고

여행객을 유혹하는 언덕위의 요새로 바뀐다는게 요약하자면 얼추 맞을거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프레임

 

내심 기대했는데

성채 안에서 내가 정말 좋아하는 프레임을 역시 만날 수 있었다.

 

창문, 특히 창살이 있는 창문은

그 자체로 멋진 프레임을 만들어준다.

그중 한 귀퉁이를 굽이 흐르는 잘자흐 강이 참 아름답다...

 

저 멀리엔 장엄한 알프스가 늘어서있다(독일영토다)

 

 

요새는 그렇게 길지 않다.

오히려 여름날의 태양이 더 길게 떠있지.

 

요새를 둘러보고 다시 밖으로 나와 

이번에는 산들을 향해 시선을 돌려본다.

저쪽 하늘에서는 슬슬 태양이 빛을 거둬가고 있다.

 

이 드넓은 평원 끝에

알프스는 정말 갑작스럽게도 솟아있다.

우측 중단을 잘 보면 사운드오브 뮤직에 나오는 저택이 있다(진짜 잘 봐야한다)

 

 

고개를 살짝만 더 왼쪽으로 돌리면

경제관념 투철하고 부지런한 우리나라 사람들이 

잘츠부르크 카드를 사서 많이 간다는 그 운터스베르크 산도 보인다.

 

사실 저 산 둘레를 따라서 독일 영토가 시작되는데

케이블카는 잘츠부르크 쪽에서 시작되는 덕분에 

돈은 잘츠부르크에서 쓸어담고 계신다.

 

나는 아무래도 다음에 등산을 한 번 해볼 생각이다 :D

(잘츠쪽에서 시작하긴 해야한다. 독일 방향에서 오르려면 전문 산악인 수준이어야할 정도로 험준하다)

 

살살 배가 고파진 나는

정말 무의식적으로 다시 푸니쿨라에 올라탔다(이번에도 사진따위 없음).

 

갑자기 피자가 땡겨온다.

지금 생각해보니 아무래도 넓은 평원을 보고 내려가는 참이었던지라

넓은 음식이 먹고싶었던것도 같다.

 

시내 말고 그 반대방향에 괜찮은 피자집이 하나 있다는 구글맵의 제보를 믿어

다시 20분을 걷기로 한다.

배고프다는 사람이 계속 걷기만 하는데,

그게 내 앞으로 유럽에서의 잦은 일상이 될거다.

 

이번엔 정말 오스트리아 알프스, 저 산봉우리들 사이에 할슈타트가 숨어있다

 

 

피자집을 가려면 호엔잘츠부르크를 끼고 한 바퀴를 돌아가야 한다.

(그리고 그 길은 괜히 한 번 오르막을 거쳤다가 다시 내리막으로 이어진다)

그 덕분에 오스트리아 알프스의 얼굴도 한 번 본다.

 

참 아름다운 전원마을이 성 뒷편에 숨겨져있다

 

 

잘츠부르크를 이번으로 아마 세 번째인가 네 번째인가 그럴텐데,

성 뒷편은 처음이다.

이런 전원마을이 있을줄은 몰랐지.

 

한여름의 유럽은 참 푸르르고 싱그러워서 카메라를 어디에 들이대도 얼추 그림이 된다.

 

마르게리타 콘 부팔라

 

피자는 정말 맛있었다

내가 맛 표현은 정말 이게 최선인데, 어쩔수없다.

 

진짜 맛있긴 했다... 믿어줘... 

 

피자집 성함 : Pizzeria Casaantonio e Piccolo Gio Nonntal

 

잘자흐 뒤로 노을이 지고 있다

 

 

배도 성대하게 1인 1판으로 채웠겠다

중앙역까지는 다시 걷는다.

(배를 안채웠더라도 걷긴 했겠지만)

 

아홉시 즈음이 되어서야 잘자흐 저 뒷편으로 노을이 지기 시작했다.

열심히 걸으면 열 시 기차는 탈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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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츠부르크를 출발한 기차는 5분도 되지 않아 국경을 넘는다.

유럽의 국경이라는게 아무 의미가 없을것도 같지만

독일은 난민이 몰려드는 나라여서 그런지 입경 첫 역(Freilassing)에서 차를 세워두고 여권검사를 하긴 했다.

 

우리나라 여권은 힘이 센 여권이다.

한 경찰이 내 여권을 들고선 이리저리 넘겨보다가 동료에게 이거 괜찮은건지 묻는다.

그 동료는 '한국 여권은 3개월동안 무조건 패스다 바보야' 라는 시크한 대답과 함께 

옆 줄의 선생님들 여권을 계속 들여다보느라 바쁘다.

 

그나저나 나도 빨리 비자를 받긴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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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는 로젠하임 역에서 40분을 정차했다.

정기적인 선로 보수공사로 인해서 교행중인 관계로 연쇄적으로 지연되고 있다는 안내방송도 나왔다.

 

아니 그걸 왜 아직 정규 기차 운행도 다 안끝났는데 시작해... 

도이치반(DB)은 Delay Bahn의 약자라는 말 틀린거 하나 없다!

뭔가 사람 얼굴같이 생겼다 ㅋㅋㅋㅋ

 

 

결국 숙소 근처 지하철역에 내렸을때는 한 시 반 가까운 시간,

사람이라곤 나뿐이다.

 

피곤하고 끈적한 하루였지만,

행복한 날이었다.

 

뮌헨 밖을 벗어난 첫 산책이었고

또 마음에 드는 점은 즉흥 나들이었다는 사실.

 

삶이 평화로 가득할때

얼마나 다채롭고 풍요로울 수 있는지...

 

24.07.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