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번째 듣다] Wiener Philharmoniker & Andris Nelsons

전날에 이어 다시 한 번 RE5를 잡아타면서

약간 두려움 비슷한 감정이 찾아와버린 산책자였다.

 

'오늘은 8월 11일이다. 2024년 8월을 나는 열 한번을 살았다.

 오늘은 잘츠부르크에 가는 8월의 다섯 번째 날이다.

 

 나흘 뒤면 8월 15일이다. 

 그 날은 내가 잘츠부르크에 가는 8월의 여덟 번째 날이 될거다.

 

 와... 다른건 모르겠고 내 허리가 남아날까?'

(돈 걱정은 카드값 나갈때 해도 충분하지 않을까 ㅎㅎ)

 

결국 남아있긴 한데 

희한하게도 내가 사랑하는 클래식 음악을 들을때 오는 황홀함 만큼이나

잘츠부르크에 이제 그만 가도 된다는 해방감이 상당하다.

 

이 글을 쓰는 9월의 열 번째 날,

딱 열 하루 전에 2024 잘츠부르크 축제는 사이먼 래틀의 말러와 함께 막을 내렸다.

결국 폐막공연 티켓은 못구한게 아쉽지만,

래틀은 뮌헨에 상주하시니 자주 볼 일이 있을거라 믿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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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날씨가 훌륭하다. 

아침 일찍 숙소를 나서기 직전까지 

공연장에 등산화를 신고 가도 입장이 가능할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다.

 

물론, 등산화는 결국 신고가지 못했다.

 

아주 정말 정말 잠깐만 삼천포로 빠져보면,

저 즈음해서 계속 잘츠에 등산화를 신고 가고싶은 유혹에 빠져있었는데

그 이유는 겨울이 오기 전에 운터스베르크 산을 올라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약간 자린고비 같은 마음가짐이 기저에 깔려있는게

잘츠부르크 축제 공연 티켓 소지자는 당일 영업종료시간까지 시 대중교통을 

무제한으로 이용 가능하다(공연시작 여섯 시간 전부터 사용 가능).

 

그러니 내가 주말 아침공연 끝나고 쏜살같이 산으로 달려가고 싶은건

어찌보면 이해해줘야하는 유혹이다.

왕복 교통비를 아끼면

케밥에 콜라까지 곁들여서 마음의 부담 없이 한 끼 뚝딱 할 수 있는데!

카라얀 광장 정류장에 버스를 내리면 딱 눈앞에 보이는 풍경

일찍 온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한적함

 

모쪼록 그 전날처럼 날씨도 좋았고, 기차도 연착따윈 없었다.

그 둘 사이에는 경험적인 상관관계가 정립되고있다.

 

일단 기차도 날씨가 좋으면 기분이 좋... 을 리는 없지만

날씨가 안좋은 날에 특히 연착이 잦은게,

 

빗길에 서행하는 것도 물론 있지만

더 큰 이유는 승객들이 승하차하는데 시간이 조금 더 오래 잡아먹혀서

그렇게 살짝살짝 늦어지기 시작하는 것들이 

연쇄적으로 점점 큰 연착을 만들어내게 된다.

 

기차 선로는 대개 왕복 2차선인 까닭에

한 친구가 늦으면 그 시간에 선로를 써야하는 다음 친구들도

다 영향을 받아버린다.

스탠딩 바도 살짝 구경... 나홀로 관객은 슬프다

 

시간도 떼울 겸 공연장 구석구석을 돌아보려 했지만,

지금까지 눈에 보이던 공연장이 사실상 전부였다.

한산하던 거리에 사람들이 들어차있다

 

그래서 그냥 거리의 사람 구경이나 하면서 게으름을 피워본다.

 

흥미로운 모습을 발견했다.

 

일련의 중국인들이 가이드로 보이는 사람 앞에 늘어서서

호명과 함께 티켓을 하나씩 받아가고 있었다.

호오... 중국은 이제 잘츠부르크를 컨텐츠로 패키지 상품이 있나보군...

 

저 날은 중국인만 보였는데, 

나중에 보니 한국사람들도 그렇게 오는 사람들이 제법 눈에 띄였다.

심지어 일부는 잘 차려입고 연이어 이틀동안 오기도 하던데,

이렇게 하면 가이드는 얼마를 수수료로 받을지 문득 궁금해졌다.

티켓팅이란게 상당히 괴로운 일인데 말이다.

정확히 지휘자를 골라 가리는 위치의 기둥

 

기대와 걱정을 동시에 안고 공연장에 들어갔는데,

오늘은 자리운세는 꽝이다.

기둥석의 최고봉이라고 할 수 있는 지휘자 엄폐형 기둥시야를 받아버렸다.

역시 오늘도 거짓말은 하지 않는 티켓

 

제대로 기둥석이고나 ㅠㅠ

 

그렇지만 나라는 사람은 이럴때는 용기가 솟아나서

다섯 칸 오른쪽 빈 자리로 사람들을 헤치고 나아갔다.

양옆 동료 청중들도 내 덕에 용기를 얻어 따라왔다.

훌륭한 시야를 얻어낸 산책자

 

훌륭한 전망을 확보한 나는

아늑한 자세를 찾아 파고들었다.

 

오늘의 프로그램은 말러 9번 교향곡인데,

내가 정말 경외하는 4악장까지는 아직 먼 길이 남았기에 

에너지를 아끼면서 최대한 편안한 마음으로 듣는다.

 

대망의 4악장이 열리고

시작부터 나는 심장을 부여잡고 듣기 시작했다.

빈필이라는 어마어마한 악단의 모든 현악주자들이 몰아붙이는 총주는

심장에 다소 좋지 않다.

 

단순한 몇 층의 선율만으로도

이 거대한 감정의 덩어리를 만들어낼 수 있는 말러라는 작곡가는

정말이지 무서운 작곡가인것같다.

 

결국 그 소리 혹은 감정의 너울 속에서

조금 무섭지만 수긍가는 사건이 하나 터져나왔다.

 

우측 앞단이 조금 소란스럽기에 고개를 돌려보니

할머니 한 분이 입가에 거품을 묻힌채로

몸을 바들바들 떨고있었다.

 

결국 그 옆 자리의 아저씨가 

공연장 출입구에 대기중(함께 공연을 관람한다)이던 구급대원을 불러왔고

구급대원의 두 팔에 들린채로 실려나갔다.

 

말러 9번은 이렇게나 위험하다.

마음 속에 숨겨둔 응어리들을 죄다 찾아 쥐어짜내고 마는 느낌이니

심신이 약하신 어르신들께서 쓰러지는 것도 이상할게 없다.

 

부디 무사하시길...

 

모쪼록 공연은 계속 이어져 잘 끝났고

이런 훌륭한 연주를 들었다는 데에 만족하며 뮌헨으로 향해 다시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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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연정보

 공연장 : Großes Festspielhaus

 

Gustav Mahler

 - Symphonie Nr. 9 in D-Dur

 

지휘 : Andris Nelsons

연주 : Wiener Philharmoniker

 

11.08.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