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번째 듣다] Klavierkonzert : Arcadi Volodos

전날과 전전날에 이어 또다시 RE5를 잡아타면서

이젠 무아의 경지에 올라버린 산책자였다.

(일곱 번째 듣다에서 이어집니다)

 

내가 겪는 열 두 번째의 2024년 8월이면서

동시에 잘츠부르크를 방문하는 여섯 번째의 8월 어느 하루다.

 

음...

줍줍을 너무 잘 하는게 나의 흠이랄까

뭐야 너까지 왜 헷갈리게 여기서있어

 

나만 혼란스러운건 아닌가보다.

내 정겨운 친구 RE5도

어떤 이유에선지 평소와 다른 곳에 서서 기다리고 있다.

길을 잘못들었는데 아차 하고 돌아가기엔 몸집이 너무 길고 육중했던걸까.

(잘못했다면 선로 분기기 조작 책임자한테 있겠지 사실)

 

중앙역에 들어서면 과장 안보태고

무의식적으로 9번 승강장으로 알아서 몸이 향하는 저 무렵이었다.

 

11까지의 숫자를 달고 있는 승강장은 

역 남쪽, 다른 플랫폼들이 끝나는 곳까지 걸어가야하는 곳에서 시작되기 때문에

평소처럼('아슬아슬하게' 혹은 '빠듯한 시간에'와 동의어) 열심히 걸어가고 있었다.

 

엥? 12번 승강장까지 마중나온 우리의 RE5.

오늘은 서비스가 좋구나.

그럼 친구야 자랑을 해야지...  

훌쩍 지나갈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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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장으로 바로 퀀텀점프 :D

 

오늘의 공연장은 모차르테움 재단 건물이다.

피아노 독주를 보기에 이보다 완벽한 공간이 얼마나 더 있을까!

 

좋아하는 피아니스트 볼로도스(Volodos)의 공연이라고

평소보다 20유로를 더 주고 1층 중앙으로 내려와봤다.

 

사이드에서 치우쳐서만 듣던 음향 말고

중앙에서의 소리도 한 번 들어보고 싶기도 했다.

1부를 마친 볼로도스 선생님. 역시 기품이 느껴진다

 

먼저 슈베르트의 열 여섯 번째 소나타가 연주되었다.

D.845, 당대 사람들에게 처음으로 악보가 공개된 슈베르트의 소나타 곡이다.

 

왼손 오른손이 함께하는 유니슨으로 시작한 1악장이

긴장을 높여가다가

차분한 춤곡으로 바뀌며 내려앉는 장면이 아름다워서

잊을만 할 때즈음 어김없이 찾아 듣는 곡이다.

쉬는시간엔 언제나처럼 뒷뜰의신선한 공기를

 

슈베르트의 여운을 잔뜩 끌어안고 

언제나처럼 안뜰에서 쉬는시간을 보내러 나갔다.

 

노을은 이미 절정을 지나 옅어지고 있었는데

은은하게 흩어져 사라져가는 석양이 슈베르트의 음악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름다운 시간임에도 사람들이 정원에 그렇게 많지는 않았는데

부슬비가 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2부의 시작으로는 지난 소콜로프 공연때에 이어

저 날도 슈만의 곡이 올려졌다.

 

이상하게 이번에도 슈만의 곡(다비드동맹무곡)이 여느 때와 달리

기분좋게 다가왔다. 

 

내가 그간 슈만 피아노 곡을 선호하지 않던게

슈만 곡이 구미가 안당겨서가 아니라 

취향인 연주를 찾지 못해서였던걸까?

 

그게 아니라면 어느 틈바구니에 내 음악 취향이 또 살짝 바뀌었을 수도 있겠지 싶다.

피아노 소리가 부족하지도 남지도 않게 딱 채워지는 느낌의 공연장

 

네 곡이나 덧붙여준 앙코르까지 마저 다 듣고

한껏 몽글몽글해진 마음으로 잘츠부르크의 밤 공기를 향해 나갔을때는

인터미션때 내리기 시작한 부슬비가 제법 탄탄한 빗줄기가 되어있었다.

하긴 유럽에선 좀 젖고 그런거지뭐

 

나는 단지 잘츠부르크 일기예보를 보지 아니하고 출발했고

아침에 외출가방을 쌀 때 본 뮌헨 일기예보에는 

우산을 챙겨야 할 이유따윈 없었을 뿐이었다.

 

흑백사진 엔딩이 제법 잘 어울린다.

 

12.08.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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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연정보

 공연장 : Stiftung Mozarteum - Großer Saal

 피아노 : Arcadi Volodos

 

Franz Schubert

 - Sonate für Klavier a-Moll D.845

 

Robert Schumann

 - Davidbündlertänze, op.6

 

Franz Liszt

 - Ungarische Rhapsodie a-Moll S.244 (볼로도스 편곡)

 

[앙코르]

Sergei Rachmaninov

 - Lied "Hier ist es schön", op.21 Nr.7

 

Franz Schubert

 - Moments musicaux D.780, Nr.3 f-Moll

 

Ernesto Lecuona

 - Malaguena

 

Antonio Vivaldi

 - Sicilienne (Transkription von J.S. Bach, BWV 5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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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끝으로 또 하나의 음악을 올려본다.

지멘스의 역작, ÖBB 유로스프린터(ES64U2계열) 1116형의 구동음이다.  

아주 훌륭한 노동요인 셈

 

Das En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