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번째 듣다] Wiener Philharmoniker & Riccardo Muti

친구 한 명이 엄청 단순한 질문을 하나 던졌다.
내가 지금 산책하고, 듣고, 마시는 세 종류의 글을 써가고 있는데
다음번에 어떤 글을 쓸지 정하는 원칙같은게 있는지 말이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마땅히 없어서
없다고 했다 :D
 
대체로 시간 순서를 지키려고는 하고있기는 하다.
대부분의 경우 그 편이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특히 공연 일기의 경우는 그 카테고리 안에서는 100% 시간순을 지키고 있다.
 
마시는 일기는 이미 여섯 번의 몇 개 안되는 일기 안에서도
시계열이 이미 한 번 꼬였다.
 
산책 기록장도 시간을 거의 지켜온 편인데 
앞으로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손에 집히는 소재를 가지고 글을 쓰기 위해 
산책 카테고리에는 어느 순간부터 글 밑에 날짜를 지워버렸다.
 
그리고 서로 다른 카테고리 중에서 무엇을 골라 쓸지는
전적으로 그 날의 기분에 달려있다 :D 
 
다만, 요즘 공연 후기가 많은 이유는
9월부터 어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는데, 
지긋한 나이에도 믿기지 않는 에너지를 가진 우리 할머니 선생님께서
매일 하루에 네 시간 분량의 숙제를 내주시고 있기 때문이다.
 
고된 독일어 여정과 함께하기에는 아무래도
 
가만히 앉아서 두 시간 공연보고 마지막에 사진 한두어장 찍고 
감동에겨워 일어나 집으로 돌아온 (상대적으로)단순한 여정에 관한 일기가
 
최소 서너시간 이상 끊임없이 장소를 옮겨다니며
세상을 누빈 산책 일기보다는 손이 덜가서 그렇다.
 
적응되면 다시 산책일기도 쓰고싶다.
나는 산책이 좋고,
또 이미 다녀온 산책을 글로 옮기면서 다시 한 번 되돌아보는 그 시간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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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과 한국은 겹치는 공휴일이 좀 있다.
(새해, 크리스마스 이런거 말고 ㅋㅋㅋㅋ)
 
일단 10.3을 함께 쉬는데, 독일은 이 날이 동 서독 통일 기념일이다.
그러고보니 우리도 통일되면 공휴일이 하나 더 생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또 하나의 겹치는 공휴일이 이번 일기를 통해 되돌아갈 날짜인
8월 15일, 성모승천대축일이다.
하느님이 성모 마리아를 하늘로 불러 올리신 날인데,
대충 한 귀로 들어도 카톨릭 축일이다 보니
이 동네 구교 국가(스페인 이탈리아 등)는 거진 다 함께 쉬는 날이다.
 
물론 내가 오늘도 향하는 오스트리아도 쉬는날이 맞다.

이번 잘츠 음악제의 빈필 공연은 거의 다 챙겨보는중

 
휴일 아침의 여유는 내게는 없어진 개념이 된지 오래다.
 
늦잠은 무슨,
뭐 언제나처럼 7시 55분 기차를 타기 위해 
여섯 시 반부터 일어나서 아침도 챙겨먹고 부산을 떨어본다.
 
이렇게 잘츠부르크까지 온다고 호들갑 떨 날도 
오늘을 제하면 딱 하루밖에 안남았다는게 아쉽긴 하다.
좋은 공연을 왕창 몰아볼 수 있는 복에겨운 날이었는데 말이다.
 
오늘은 존경하는 지휘자 리카르도 무티가 이끄는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연주다.
 
무티 하면 조건반사처럼 시카고 심포니가 떠오르지만
사실 빈필이야말로 무티 할아버지의 진정한 팬이라고 할 수 있다.
빈필과 무티가 함께해온 시간이 거진 40년이다.
 
곧(?) 있을 내년 빈필 신년음악회에서도 
무티가 다시 한 번 지휘봉을 잡을 예정이다.
신년음악회를 맡긴다는건 빈필이 최고 수준의 신뢰를 보이는것.
 
그런 둘의 조합이기 때문에,
이번 공연은 2024년 잘츠 공연중에서도 정말 티켓 구하기 어려웠던 축에 속한다.

멋졌습니다 무티 형님

 
곡은 브루크너 8번이었다.
빈 필이 초연한 브루크너 말년의 걸작을 들고나온건 
브루크너 탄생 200주년에 대한 아름다운 헌사임에 틀림없다.
 
무티 특유의 위엄있고 절도있는 지휘를
공연장에서 두 눈으로 함께 즐기며 브루크너 8번을 듣고있으면
(해보지는 않았지만) 팔뚝에 주사기 꽂고 헤롱거리는 기분이 이런걸까
그런 생각마저 든다.
 
이번 해석은 템포가 상당히 느린 축에 속했는데
그렇지 않고 엑셀까지 밟아버렸으면 진짜 나도 뻗어버렸을지도 모른다.
 
브루크너라는 작곡가는
음악이 생동하는 에너지를 담아낼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위인이다.
 
나는 보통 브루크너의 음악을 들을때마다
길게 뻗은 거대한 파도, 잘 쌓아올린 성벽 혹은
깊고 높은 산속에서 올려다보는 밤하늘과 그 안에 수놓인 별 같은 것들을 떠올린다.
언어로 정확히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여하튼 인간의 스케일을 훌쩍 넘어서는 힘이 느껴진다.
 
그러다 보니 이런 훌륭한 연주를 들었을때의
그 전율이란게 감당할 수 없어진다.

이탈리아 아저씨는 정도 많다

 
정해진 모든 곡(한 곡이구나 그러고보니)의 연주가 모두 끝나고 나서
무티 할아버지가 이례적으로 수석들이 아닌 두 명의 단원을 찾아가
진한 인사를 나눴다.
 
약간 신기해하고 있었더니
그제서야 이 이탈리아 노신사가 포디움 앞으로 나와 설명을 해줬다.
 
'방금 나와 인사를 나눈 두 사람은 이번 공연을 끝으로 은퇴합니다.
 40년이 넘는 시간동안 나와 함께해준 이들이기에 직접 축하하고싶었습니다.'
 
무티와 함께하는 브루크너 8번이라면
그들 자신에게도 연주 인생을 되돌아보기에
딱 적절한 회상이 되는 은퇴작이 아니었을까.
 
이 음악에는 충분한 서사, 그리고 승리가 들어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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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연정보
 공연장 : Großes Festspielhaus
 
Anton Bruckner 
 - Symphonie Nr. 8 c-Moll, WAB 108
 
지휘 : Riccardo Muti
연주 : Wiener Philharmoniker
 
15.08.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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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많은 사람들은 각자 어떤 공휴일을 보낼 생각일까

 
축제극장을 나와 올려다보는 베드로 성당의 종탑과
호엔잘츠부르크도 한동안 볼 일이 없겠구나 싶어서 사진을 좀 남겨본다.

보이는것보다 훨씬 더 훌륭한 케밥이다

 
그리고 독일을 경험해본 친구들이
내가 자주 먹는다는 케밥에 상당한 관심을 보인지라
저 날 찍은건 아니지만 케밥 사진도 함께 올려본다.
 
비오던 날에 사진을 대충 찍어서 그렇지
내가 먹어본 케밥 중에서 손꼽히게 맛있었다.
 
이 글을 읽고 잘츠부르크에 들르는 누군가 중에서
케밥을 좋아하는 불행한 '독일의 한국인'이 있다면
한 번 꼭 들러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가게 이름은 'Alis Eck'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