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한 번째 듣다] Wiener Philharmoniker & Gustavo Dudamel

열 번째와 열한 번째 사이에 모처럼 열흘간의 간격이 있었다.

 

사실 8월초 너무 강행군을 이어갔더니,

연이은 경기에 체력이 고갈되어가는걸 실시간으로 느끼면서

우천취소만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야구선수의 기분을 이해할것만 같았다.

 

물론 그 사이에 보고싶은 공연이 몇 개 있었는데

이런저런 이슈로 다 불발되었다.

 

카메라타 잘츠부르크와 마티아스 괴르네의 협연은 집구경 일정때문에,

만프레드 호넥이 이끄는 피츠버그 심포니오케스트라의 공연은

(정말 보고싶었던건데)

공연 끝나는 시간이 너무 늦어서 

눈물을 머금고 포기했었다.

 

예매해둔 티켓도 없고 해서 

성모승천대축일을 마지막으로 올해 잘츠부르크 축제 일정이 마무리되나 싶었는데,

용케 공연 하루 전날 줍줍에 성공했다.

숙련된 줍줍러는 최종 완판 공연의 제일 싼 자리도 능숙하게 건져낸다

 

심지어 올해 마지막 잘츠 축제가 될것같다는 예감때문에

저 한 번의 방문으로 보고싶은 공연은 다 보고오면 좋겠다 싶어서

오후의 다른 공연 티켓팅에도 도전한 결과

그것도 성공해버렸다.

 

그렇게 8월의 마지막 주말이 음악으로 가득 채워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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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잘츠부르크행 기차라고 또 도이치반에서 날 위해 재미난 선물을 준비했다.

 

평소와 다름없이 공연 세 시간 전 RE5 맨 앞칸에 올라탄 나는

신기한 안내방송을 듣는다.

(맨 앞칸이 사람이 제일 적어서 가족석에서 다리뻗고 갈 수 있다)

 

'뮌헨 동역에 소방대들이 들어와있어 동역 열차운행이 중단되었습니다.

뮌헨 동역에 하차하실 승객께서는 U반 등 다른 교통편을 이용해주시기 바랍니다'

 

이게 뭔 해괴한 소리고... 

동역을 안거치면 대체 잘츠를 어떻게가냐...

간다고 쳐도 그럼 동역에서 타고다니는 사람들은 다 놓치라는건가

 

그것도 그렇고 대체 누가 동역가는데 지하철 안타고 기차를 탄다고 ㅋㅋㅋ

까지 생각하던 찰나에 한 독일인 아저씨가

독어로 'C발' 격의 2음절 단어를 뱉으면서 내렸다.

 

무슨일인가 싶어 DB 어플을 켜봤는데,

정말 정확하게 기관사가 읊었던 첫 문장만 그대로 써있었다.

 

동역에 소방대가 들어와있어 열차 운행이 중단되었다.

아 그러냐... 

 

결국 사유따윈 모르는 채로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아니면 어쩔건데)

 

누군가의 삶에 너무 큰 영향을 끼치지는 않았기를 짧게 기도하고

막 출발해서 살짝씩 진동하기 시작한 기차를 느끼고 있었는데

느낌이 쌔했다.

 

이 구간에서 찾아오지 말아야할 선로변경의 떨림이 느껴졌다.

기차가 서쪽을 향해 달리고있었다 :D

(거긴 오스트리아가 아니라 프랑스 방향이란다, 반나폴레옹주의자야)

 

그런데 정말 짜릿하게도

열차가 잠시 뒤 님펜부르크를 끼고 돌아

프라이징-란츠후트-파사우 선로를 잡아타더니

곧이어 정규 여객열차는 절대 가지 않는 조차장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조차장 연결선로로 접어든 RE5

 

조차장이라는 단어가 많이들 생소할텐데,

쉽게 생각하면 기차를 조립하는 역이다.

 

물론 여객열차는 유지보수 목적이 아니고서야 특별히 분해조립 할 일이 없지만,

화물차는 각기 다른 곳에서 적재된 화차들을 모아 한 대의 기관차 아래 매달고

어느 거점 도시에 도착하면 또 행선지에 맞게 다시 찢어주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 작업이 이루어지는 곳이 조차장인 만큼

사람을 싣고 다니는 여객노선이 이 구간을 운행한다는건 정말 드문 일이다!

동역을 통과할 수 없으니 어쩔수없이 우회선로로 화물선을 이용한 것.

(지도를 보니 정말 교묘하게 동역을 살짝 지나 RE5 본선과 합류한다)

 

단언코 내 기차여행 인생에 이런 일은 완벽하게 처음이다.

물론 우회한다고 시간을 40분가량 더 잡아먹었지만

피차 지난번(네 번째 듣다) 지각 사건 이후로 철저하게 

한 시간 버퍼타임을 두고 출발하고 있어서 전혀 문제될것도 없었고

오히려 너무 신나버린 나였다.

 

공연일기에 이렇게 잔뜩 기차 얘기만 늘어놓고 나니 

이번 글의 정체성이 이렇게 흐려지는구나 싶은데

이 이야기를 이렇게 적어두지 않고 기억에서 흐려지기라도 하는 날에는

준 철덕 인생에 큰 손실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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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론으로 돌아왔다.

호흡을 가다듬고 공연을 소개해보자면,

오늘은 장발의 베네수엘라 지휘자 '구스타보 두다멜'이 이끄는 빈필의 공연이다.

 

남미의 햇살같이 정겹고 열정으로 가득한 이 동년배의 지휘는 

재미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여기 독일사람들도 춤추게 할 수 있을지도 모를만큼

활기가 넘치는 편이라서 나도 두다멜의 지휘를 좋아한다.

(확실히 코끼리를 춤추게 하는거보다는 독일인이 더 어려울것)

 

정말 유명한 연주 영상이 유튜브에 있으니 관심있으면 한 번 보는것도 좋다.

그냥... 이건 혁명적이야!

Dudamel Bernstein Mambo를 검색하면 바로 나온다.

 

다만, 독일 작곡가들의 곡을 지휘하는건 사실 좀 안어울린다고 보는데

잘츠부르크의 축제다 보니 어쩔수없이 게르만 작곡가가 튀어나와야 하고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Richard Strauss) 작품이 오른다.

 

뮌헨 출생의 리샤르트 슈트라우스는 관현악 작곡 면에서는

범접할 수 있는 작곡가가 많지 않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특히 관악부(호른이 진짜 넘사벽)가 뿜어내는 소리를 듣고있자면

이게 천상의 나팔일까 하게 만드는 그런 곡들이 여럿 된다.

(물론 메타몰포젠같이 현악으로도 짱짱한 소리를 잘 만들어낸다)

이 사진만큼 슈트라우스를 잘 표현하기도 어려운것같다

 

교향시 장르의 대가 답게 

소리로 그림을 곧잘 그려내던 그의 능력 탓에

슈트라우스가 올려지는 무대에는 평소에 보기 어려운 독특한 악기들이 많고

두터운 음량을 소화하기 위해 보통 대편성 오케스트라가 필요한 덕분에

클래식 공연계에서 가장 화려한 무대를 구경할 수 있다.

(위의 사진과 다른 날의 빈필 공연 사진만 놓고 비교해봐도 확연한 차이가 보인다)

내게는 그냥저냥 무난까지만 했던 1부

 

1부는 알프스 교향곡이 아니라 네 개의 마지막 노래(Vier letzte Lieder)였다.

여기에만도 이렇게 떼지어 나오는데

알펜교향곡에는 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을 쓰는건지 싶다.

 

이 곡은 슈트라우스가 죽기 한 해 전에 쓴 마지막 작품들에 속한다.

흔치 않게 반주로 오케스트라를 쓰는 가곡인데, 

말년의 작품이라 그런지 다른 작품들보다 자극도에 비해 호소력이 짙다.

 

정확하게 소프라노를 찍어 마지막 작품을 쓴 데에는

분명히 아내가 소프라노였던 영향이 클것.

 

아쉽지만 내가 공연장에서 이 곡을 듣고 만족스러웠던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오늘도 그럴것임을 알고있긴 했다.

물론 좋은 공연이었는데,

문제는 이 작품에는 넘을 수 없는 두 개의 음반이 있다.

 

군둘라 야노비츠(Gundula Janowitz)가 카라얀의 베를린필에 노래한 음반과

제시 노먼(Jessye Norman)이 쿠르트 마주어의 라이프치히 게반트와 녹음한 음반인데,

들을때마다 인간이라는 존재에 경외심을 품게 된다.

 

좋은 연주를 들으면서도 비교하는게 연주자들에게 미안하지만

정말 그렇다.

수다쟁이 두다멜

 

알프스 교향곡도 그저 무난했다.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두다멜이 펼쳐나가는 알프스 등반은

조금 귀족적이고 산뜻한 감이 있다. 

(그런 귀여움이 있지 :D )

 

그치만 내가 그리는 이 곡에서의 알프스 등반은

거대하고 위협적인 자연이 아가리를 벌린채로 기다리고 

주인공은 처절하리만치 몸을 웅크리고 기어이 정상에 올라내고야 마는 

그런 모습을 하고있는걸...

 

뭐 그치만 어디가서 흠잡힐 그런 공연은 아니었다.

 

다른것보다도 두다멜 머리가 다 알프스 돌쩌귀들처럼

회백색으로 세어버린게 아쉬울 따름.

검고 곱슬거리는 머리가 저 친구의 매력 포인트였는데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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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이 끝나고 박수까지 여유있게 친 다음

사람들이 다 나가는것 까지 기다리고 천천히 나왔다.

 

오늘의 두 번째 공연까지는 아직 네 시간이 남았기 때문이다.

 

그 사이에 뭘 할지는 전혀 계획한 바 없다.

날씨도 우중충하게 쳐져있는 탓에 의욕도 잘 안솟아나기도 했고.

 

일단은 내 최애 케밥집으로 향해보기로 했다.

중앙역까지 가야하지만 다녀와도 시간은 충분할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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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연정보

공연장 : Großes Festspielhaus

 

Richard Strauss

 - Vier letzte Lieder, 

 - Eine Alpensinfonie, op.64

 

지휘 : Gustavo Dudamel

연주 : Wiener Philharmoniker

소프라노 : Asmik Grigori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