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번째 듣다] Violinkonzert : Anne-Sophie Mutter

없는 시간을 쪼개서 계단을 올랐던 만큼

오를때와 마찬가지로 쪼르르 계단을 달려내려갔다.

 

마침, 한 두어시간 멈췄던 비가 다시 오기 시작한 참이었다.

공연장에 들어가기에 더는 아쉬울게 남지 않았다는 확신이 생겼다.

 

이번 포스팅도 앞의 두 개의 글

'열한 번째 듣다 : Wiener Philharmoniker & Gustavo Dudamel'

그리고 '열한 번째 산책 : 아, 잘있거라 잘츠부르크야' 에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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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15유로 기둥존에 안착

 

오전에는 또래 친구(두다멜은 지금 마흔 네살밖에 안된다)의 공연이었다면,

오후 공연은 살아있는 여제의 연주를 들을 차례다.

 

아네-조피 무터(Anne-Sophie Mutter).

* 안네 소피 라고 하고싶겠지만 독일언니이니만큼 원어를 존중해야한다

 

카라얀으로 상징되는 레코딩의 시대를 평정했던 말 그대로의 여왕이다.

젊은 날의 무터는 뛰어난 외모까지 갖춘 소위 '사기적인' 연주자였다.

음반 커버가 그냥 무슨... 화보

 

무터는 의심할데 없이 훌륭한 그 실력 만큼이나 많은 운을 타고났다.

1976년 고작 열세살(63년생)의 나이로 루체른 페스티벌에 성공적으로 데뷔한 무터의 소문이 

카라얀의 귀에까지 들려갔고

바로 그 다음해 잘츠부르크 오순절(Pfingsten) 축제에서 무터는 카라얀의 협연자로 나서게 된다.

무터로서는 정말 든든한 후원자를 얻은 셈.

 

여왕님께는 또 한 명의 오랜 인연이 있다.

피아노를 제외한 솔로 악기들은 대개 반주로 피아노가 붙는데,

무터에게는 1988년부터 작업을 함께해온 'Lambert Orkis'라는 고정적인 동료가 있다.

함께한 25주년을 기념하는 음반을 발매한 무터와 오르키스

 

46년생 미국 피아니스트인 오르키스는 이제 벌써 나이가 여든에 가까운데

아직도 무터의 실내악 공연에는 실질적으로 다 따라붙고 있다.

 

2014년에 발매한 25주년 기념 음반도 벌써 10년 전이니 

35년이나 이어져온 우정이 대단하게 느껴진다.

 

잠깐 논외로 산책자가 아직 대학생이던 시절

저 음반에 이름난 지휘자이자 무터의 전 남편인

'앙드레 프레빈'이 작곡한 곡이 수록된 걸 보고 컬처쇼크라는 개념을 체득해버린 기억이 난다.

 

모쪼록 중요한건 오늘의 공연 역시

언제나처럼 오르키스의 반주와 함께라는 것.

저 둘의 실루엣이 함께하는게 너무 당연하게 느껴진다

 

무터의 연주에서는 아직도 자신감과 위엄이 느껴졌다.

물론 여왕님은 여자분이시지만 마치 꼬리를 활짝 핀 공작새 같았달까.

 

음악이 즐겁기 위해서는 꼭 완벽할 필요는 없다.

젊은날 만큼의 정교함까지는 없는 이 듀오지만 

공연 만족도는 얼마나 높았는지 모른다.

 

사람이 풍기는 에너지의 색깔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 번 느끼게 해주는 연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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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코르까지 두 곡을 베풀어준 여제님 공연이 끝나고 

미친척하고 저녁의 베를린필 공연까지 보면서 일일 3공연 기록을 세워볼까 하는 

발칙한 생각을 잠깐 해봤다.

 

티켓을 찾아보니 조금 비싸긴 해도 자리가 남아있긴 했었다.

'마지막이니깐 한 번...?'

 

잊고있던 사실이 불현듯 떠올랐다.

오늘 아침에 기차가 어땠더라...?

('열한 번째 듣다' 글에 정답이 나와있습니다)

 

이런 날 저녁 공연을 잘못 보면 오늘만이 아니라 내일까지 괴로울 수 있겠다는

경험해보지 않아도 느껴지는 그런 직감이 들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중앙역으로 향했다.

일간지에 사진과 함께 기사가 났다

아 이런 상황이었다면 연착 인정이지...

 

열차에 올라타 평소처럼 편하게 자리를 잡고 행여나 싶어 구글링을 해보니

아침에는 별다른 뉴스조차 없더니 기사가 하나 올라와있었다.

 

어제 밤 동역에서 공사작업용 기차의 기관실과 자갈작업용 특수차량에서 불이 났다고 한다.

그래서 밤새 사고처리, 후속작업을 하느라 아침에도 동역을 통과조차 하지 못했던거다.

 

다행이 선로 청소는 얼추 되었는지 동역 열차운행은 재개되어서 

대체선로 운행도, 무정차 통과도 없이 정상 운행 예정이라고 나오는 어플 시간표.

 

그럼 나는 이 상황에서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가방을 끌어안고 의식적으로 칼같이 깊게 잠들어버렸다.

어플 시간표는 그들의 계획일 뿐이고

가는 와중에 30분 이상 연착은 불보듯 뻔하다는 판단이었는데,

역시 귀신같이 정확했다.

그럼 그렇지, 결국은 더 늦게 도착했다

 

한참을 푹 자다가 기차가 멈추는 느낌이 나서 깨어보니

동역 이 아니라 동역 앞 선로 한가운데였다.

 

듣자하니 밀려있는 기차들을 통과시키느라 가다서다 가다서다 하는것 같았다.

저 시점에서 이미 47분 연착이었는데

결국은 9시 10분인가에 중앙역에 내림으로써 

한 시간 넘는 연착을 만들어낸 오늘의 도이치반.

 

그래도 화재사고 이후에 겨우 이 정도의 연착이면 나는 칭찬해주고싶다.

평소에도 20~30분은 밥먹듯이 늦는것들인지라 ㅎㅎ

 

그렇게 올해의 마지막 잘츠부르크 축제는 역시나

이쯤되면 너무나도 익숙한 허기와 함께 막을 내렸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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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를 현재 시점으로 돌려서, 드디어 금요일 밤이다.

한국에서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추석 덕분에 이번주는 짧게만 일했을텐데

짧은 만큼 너무 집약적으로 고생하지는 않았길 바란다.

 

독일에서의 맞는 추석은 딱히 명절 느낌은 나지는 않았다.

평소와 다름없는 평일에 불과해져버린 5일짜리 연휴였다.

(뭐 나는 지금 인생 자체가 연휴긴 하지)

 

그나마도 친구 지인들과 명절 인사조차 건너뛰었으면 

추석인것도 모르고 지나갈 수도 있었을것같다.

창문에 비친 달, 그리고 창문이 만들어낸 달의 분신들

 

그래도 명절이라고 여기 있는 몇몇 한국인 친구들과 저녁을 먹는데 

창밖으로 보름달이 휘영청 밝았다.

어찌나 밝은지 시험삼아 천장 등을 꺼도 달빛아래 서로가 거진 다 보였다.

갤럭시 너 대단하구나(S24 에서는 100배줌도 된다던데)

 

저녁을 먹은 우리는 외투를 둘러매고 배를 두드리며 달 구경을 나갔다.

 

한국에서도 추석에 달 구경한 기억이 까마득한데

오히려 독일까지 나와서 달빛 아래 서서 물끄러미 바라보려니 기분이 이상하긴 하다.

 

전날 까지 비를 퍼붓던 뮌헨의 하늘은 먼지 한 점 없이 맑기만 했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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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연정보

 공연장 : Großes Festspielhaus

 바이올린 : Anne-Sophie Mutter

 피아노 : Lambert Orkis

 

Wolfgang Amadeus Mozart 

 - Sonate für Klavier und Violine G-Dur KV. 301

 

Franz Schubert

 - Fantasie für Violine und Klavier C-Dur, D.934

 

Clara Schumann

 - Drei Romanzen für Violine und Klavier, op.22

 

Ottorino Respighi

 - Sonate für Violine und Klavier h-Moll

 

[앙코르]

Johannes Brahms

 - Ungarischer Tanz Nr. 3 in F-Dur

 

John Williams

 - Nice to be around

 

25.08.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