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세 번째 듣다] Münchner Philharmoniker - Lahav Shani : Bach

내 공연 일기의 세상속에서는

시간이 천천히 흐른다 :D

 

바야흐로 축제의 달 8월이 저물고

유럽 모든 악단들이 정규 시즌을 시작하는 9월이 도래했다.

(이제 잘츠부르크까지 안가도 된다 ㅠ)

 

뮌헨의 양대 오케스트라 

BRSO(Simon Rattle) & MPhil( - ) 중에서

오늘의 주인공 뮌헨필이

상당히 이른 9.4에 먼저 개막공연을 열었다.

 

BRSO(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는

한참 뒤인 9.26에 오프닝 콘서트를 가지니 차이가 제법 난다.

 

한 쪽이 조금 늦기도 했지만

다른 한 쪽이 많이 서두른것도 사실이다.

(BRSO는 래틀의 고향 영국에서 Prom 등 축제 일정을 소화하고 있었다)

 

뮌헨필이 개막을 서두른데는

이들의 유구한 전통 

그리고 세계적인 악단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발판과 연관이 깊다.

 

먼저, 올해는 오스트리아의 위대한 작곡가

안톤 브루크너(Anton Bruckner, 1824-1896)의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는 중요한 년도다.

 

내가 가장 존경하고 사랑하는 작곡가중 한 분이다.

Anton Bruckner(1824-1896)

 

세계 유수의 오케들이 24-25시즌에 브루크너의 곡을 대거 편성해둔만큼

내게는 행복한 한 해가 될것인데,

뮌헨필과 함께 보내게 된 브루크너 200주년은 특히나 더 뜻깊다.

 

뮌헨필(당시에는 다른 이름을 하고있었다)의 3대 상임지휘자

Ferdinand Löwe(페르디난트 뢰베)는 브루크너의 곡을 아주 많이 올렸다.

그가 처음으로 상임으로 재임한 1897-1898 시즌은 안톤선생이 돌아가신 바로 직후였다.

 

조심스러운 성격의 브루크너는 애시당초에

불혹의 나이 마흔 정도에야 교향곡 작곡을 시작했는데

그나마도 세간의 인정을 받은건 80년대 중반이었고

오히려 죽기 직전부터 (독일어권역에서) 제대로 주목받고 있었다.

 

지휘자 뢰베는 한 오케스트라에게 있어

브루크너의 음악을 표현한다는게 어떤 의미인지 일찍 알아차린 사람이었다.

아마 세계 모든 오케스트라중에서 브루크너 연주를

가장 이른 시기에 그리고 활발하게 올리기 시작한 곳이 뮌헨필이었을거다.

 

 

그렇게 시작된 이들의 브루크너 연주 전통은

아직까지도 변변찮던 뮌헨필을 세계 정상급으로 끌어올린 명지휘자

'세르쥬 첼리비다케(Sergiu Celibidache)' 대에 와서는

종교적이라고 표현하고싶을 정도로 높은

예술의 경지에 도달했다.

 

24-25 시즌 개막공연이 있던 

9월 4일은 브루크너의 생일이다.

대체 이때 개막하지 않으면 다른 언제 오픈할 수 있을까 싶은 그런 날이었던거다.

 

그리고 뮌헨필은 너무나 당연하게도 

브루크너의 곡을,

특히 그의 미완성 유작인 9번 교향곡을 들고 나왔다.

 

나는 4일의 공연 티켓을 구하지는 못했지만

마지막 일정이었던 9.8 공연의 표는

가까스로 확보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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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가 생겼다.

갑자기 지원서를 넣어둔 집에서

공연 하루 전날인 토요일에

집구경 일정을 잡아서 통보해줬다.

(진짜 감사한곳이긴 하다... 보통 나한테 기회를 잘 안준다)

 

근데 하필 그 일정이 9.8 (일) 13:00였다.

 

나는 이 공연을 예매하면서

일요일 오전 11:00에 시작하는 이 공연과

겹치는 일정이 생길거라고 의식조차 안했다. 

(일부러 평일 저녁보다 일요일을 택한건데)

아직도 이 표를 보면 속상하다

 

잠들기 직전까지 고민하고

아침에 깨어나면서도 고민과 함께 일어났다.

 

집을 보러 간들 

최종적으로 내 집이 될 가능성도 희박한데

그럼에도 절박한 집 문제에 찾아온 희망을 붙잡아봐야하는가

 

아니면 내 클덕생활 일생일대의 순간을

거머쥐는게 더 중요한가...

(내 브루크너 음악에 대한 애착은 집 문제에 비벼질정도다)

 

결국은 집이 이겼다.

아직까지 내 거처를 찾지 못했다는 사실때문에

회사까지 때려치고 이곳에 나온 결단을

내가 자칫하면 후회해버릴 수도 있겠다는

그런 생각이 살살 들어오는 시점이었다.

 

다른 누군가라도

온전하게 즐기는게 나을것도 같아서

양도하거나 팔아볼까도 했는데

 

그래도 개막공연의 첫 곡이라도

즐긴 후에 집을 보러 가기로 했다 ㅠ

들어가기 직전, 많이 두근거렸다 :D

 

1부만 보기로 결심을 하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숙소를 나서서 오늘의 공연이 있는

Gasteig HP8로 가는 도중엔 설렘도 찾아왔다.

처음 가보는 공연장이기 때문이다. 

 

여기도 짧게 할 얘기가 있는 공간이지만

다음 포스팅에게 양보해보기로 한다.

체육관에 의자놓은 것 같은 첫인상의 HP8

 

공연장은 기대 이상으로 마음에 들었다.

미국 고등학교 체육관처럼 생겼는데,

덕분에 측면 좌석의 수를 충분히 확보하면서

시야까지도 적당히 챙겨냈다.

 

좌석수에 비해서 공연장 규모가 

그렇게 거대하지 않은 점도 플러스 요인이다.

그 덕분인지 음향 밸런스가 잘 잡힌 느낌.

(원래 Gasteig가 음향 이슈로 잡음이 많았던만큼 뮌필 입장에서는 '오히려 좋아' 격일수도)

Isarphilharmonie, Gastieig HP8

 

그리도 다른것보다도

체육관 마루바닥같은 나무색 바닥과

실재 재료는 모르겠지만 겉보기에

나무의 질감이 살아있는 흑색 계열의 벽 마감재가 조화롭게 느껴졌다.

 

보기 좋은 공연장이 듣기도 좋은 법이다.

(임시로만 쓰기엔 좀 아까운데?)

시야방해석이라 싸다

 

내가 앉은 자리는 일종의 시야방해석이다.

여기도 롯콘처럼 난간석이 있는데

음... 방해도는 중간정도 되는것같다.

 

그물코로 되어있다 보니 

초점이 앞에 맺혔다가 오케에 갔다가 할 때도 있다.

 

별수없다.

수입이 없는 내가 문화생활을 즐기려면...

 

1부의 곡은 바흐의 건반협주곡 1번이다.

(하프시코드 협주곡이라고들 많이 한다)

특별한 점이라면 오늘의 지휘자인 

Lahav Shani가 직접 피아노 연주도 맡았다.

뮌헨필 미래의 상임, Lahav Shani

 

제법 달달한 느낌의 이름을 가진 샤니는

이스라엘 출신의 젊은 지휘자다(1989년생).

보수의 끝을 달리는 이곳 바이에른, 뮌헨이

(이들 기준에선) 머리에 피도 안마른 샤니를

상임으로 내정한건 사실 놀라운 일이다.

 

어떤 음악세계를 펼쳐내 보여줄지 궁금하던 참이었다.

특히나 전임자가 이 시대를 대표하는  

러시아 스타 지휘자임을 감안하면

엄청 부담스러운 자리여서 더 그렇다.

 

전임은 발레리 게르기예프(Valery Gergiev),

(내 개인적 기준으로) 베를린필의 상임

키릴 페트렌코(Kirill Petrenko)와 더불어

현존 최고의 러시아 지휘자다.

이분... 그립긴 하다

 

2015년에 뮌헨필 수석이 된 이후로 

아주 훌륭한 궁합을 자랑하고 있었다마는

뮌시너들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너무 잘 알려진 친 푸틴 인사인 게르기예프와

함께하기 어려웠다.

 

그 이후로 상임지휘자 자리는

아직까지도 공석이다.

 

다만, 2023년 연초에 MPhil이 샤니를 

26시즌부터 새로운 상임으로 내정했으니

지금은 합을 맞춰나가는 단계에 해당한다.

(26년까지는 세갱의 후임으로 로테르담필하모닉 상임으로 재직중인데,

작년에 라하브 샤니는 로테르담필을 몰고 내한했었다) 

 

샤니는 피아니스트 출신 지휘자다.

그렇지만 1인 2역은 쉽지 않다.

지휘를 하면서 깔끔한 연주를 보여준다는게

특히 바흐같이 투명한 곡을 내보인다는건

아주 리스크 높은 도전이라고 생각한다.

 

그 어려운걸 깔끔하게 해낸 공연이었지 않나 싶다.

피아노 터치도 엄청 경쾌하고 깔끔했고

오케의 속도감이나 세련됨도 좋았다.

 

젊은 지휘자라는게 이런건가 하는 

식상하지만

그래도 한동안 클래식업계에서 느끼지 못했던

그런 생각도 잠깐 들었다.

 

속상하지만 바흐를 끝으로

2부를 포기하고 집을 보러 출발했다.

시간은 딱 맞춰 잘 도착했으니

계획에 있어서는 성공적인 하루가 되었다.

잘 보면 집을 보러 온 인파들이 보인다

 

결론적으로 저날 본 집은 

내 집이 되지 못했다.

 

위치가 일단 너무 좋았다.

St. Paul 성당이 보이는 뮌헨의 노른자위인데

젠들링어토어와 테레지엔비제 사이에 있다.

 

내게 올 녀석이 아니라는건 

너무 잘 알고있었다.

독특한 느낌의 내부장식

 

그냥 상트 폴 성당에 온 김에

들어가서 기도나 짧게 하고 가기로 했다.

 

독특한 장식을 하고 있었다.

원래 유리는 색조없이 박아넣고

내부에 스테인드글라스 느낌의 덧유리를 댄 그런 장식이었다.

 

기도중에

이날 집이 당연히 안될거라는거 잘 알지만

그래도 나중에 두고두고 후회만하지는 않고

하나의 에피소드로 회상하게 해달라고 했다.

 

이루어진것 같다.

 

그래도 숙소 돌아가자마자

공연 평을 찾아보긴 했다 ㅋㅋㅋ

 

아직 정교함은 다소 아쉽지만

음악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는 능력이 좋았고

앞으로가 기대된다는 반응이 주를 이룬다.

 

샤니도 샤니지만

여기 살면서 만나게될

수많은 공연들이 얼마나 기대되는지 모른다!

 

내가 좋아하는게 무엇인지 알고

그걸 즐길 아주 좋은 기회와 가까이 살아가는

나는 아주 행복한 사람이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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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연정보

공연장 : Isarphilharmonie, HP8

 

Johann Sebastian Bach

- Konzert für Klavier und Orchester Nr. 1 d-Moll, BWV 1052

Anton Bruckner

- Symphonie Nr. 9 d-Moll, WAB 109

 

지휘 : Lahav Shani

연주 : Münchner Philharmoniker

피아노 : Lahav Shan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