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번째 마시다] 아우구스티너 헬 (feat. 학센 그릴 뮌헨)

마드리드에서 유학중인 제법 오랜 친구 한 놈을 기어이 설득해내서

뮌헨에 스탑오버시키는데 성공했다.

(비행기 표도 더 싸지는데 왜 안오려고해 자꾸)

 

밤 비행기 타기 전에 저녁 한 끼 든든히 사주는걸 공약으로 걸었던 나는

막상 큰소리는 쳐놨지만 

그 녀석이 오는 날이 가까워질수록 점점 불안해졌다.

 

왜냐, 뮌헨에서 외식을 한 적이 없으니깐!

케밥 사먹은것도 외식이라면 외식이긴 하지만...

 

뮌헨 맛집을 검색해봤다.

뭐 예상했지만 호프브로이하우스, 아우구스티너켈러, 슈나이더브로이

비어가르텐이 많이 표출되고

그 뒤로는 Andy's Krablergarten이라는 슈니첼 집이 또 제법 나왔다.

 

슈니첼이라는건 말이다. 

튀김이라는 요리에 대한 모욕에 가깝다고 나는 생각한다.

맛있는 재료(돼지고기)를 더없이 훌륭한 방식(튀김)으로 요리했는데

어떻게 맛이 이거밖에 안 나올수가 있는지 매번 궁금하다.

게다가 가격도 납득이 안되는건 덤.

 

기각.

 

그래 '뮌헨 맛집'이라고 검색하다니 내가 너무 독일을 무시했다.

독일에 맛집이란건 없다(끼니때마다 그리워지는 나의 조국).

 

결국 식상하지만 학세로 메뉴를 특정한 다음 구글맵에서 Haxen을 검색하니

학센그릴(Haxengrill)이 튀어나왔다.

네이버맵도 아닌데 호평으로 가득한 한국어 후기들이 제법 나왔다.

 

됐다. 한국사람들이 맛있다고 하는 집이 제일 맛있는 집이다.

다른 곳은 알아볼 생각조차 하지 않고 바로 여기로 정해버렸다 :D

사실 위치도 마리엔 근처니 훌륭하다.

 

며칠이 흘러 친구녀석을 만나는 날이 됐다(8월).

친구는 비구름과 함께 도착했다. 

그 비구름은 친구가 머무는 2박3일동안 줄곧 같이 머물다가 함께 떠나갔다.

 

모쪼록 그 3일중 가운뎃날 저녁 예정대로 학센그릴로 향했다.

 

예약 없이 갔더니 한 10분가량은 기다려야 했다.

고기에 대한 사랑은 역시 비바람을 이겨내는 법.

 

우리 차례에 난 자리는 바탠더와 마주보는 바 자리였다.

이런 자리는 부담스러워하는 성격의 산책자.

그치만, 결론적으로는 이 자리에서라서 저녁식사가 더 재밌었다. 

1/2 Haxe, 맛이 상당히 괜찮았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많이들 잘 아는

학세(Haxe)의 풀네임은 Schweinshaxe, 돼지무릎이라는 뜻이다.

대게 무릎은 Knie를 쓰지만 Hachse도 같은 뜻이다.

많은 사람들이 학센 이라고 부르는데 

사실 Haxen은 Haxe의 복수형이니

여러개를 먹을 생각이 아니라면 학세라고 해야 옳다.

(보통 1/2개 시키면 딱 1명 분량이다)

 

와인소스로 요리한 족발이라고 생각하면 되는데,

맛있는 학세의 관건은 껍질이 바삭하고 간이 잘 배여있어야 하고 

속살은 부드럽고 촉촉한 식감이 나야 한다.

 

참된 맥주안주. 

비싸서 그렇지 학세정도는 맛있는 독일 음식에 꼽아줄 의향이 있다.

 

학센만 먹기엔 심심해서 립도 시켰는데 립이 또 정말정말 맛있었다.

이집 고기요리를 전반적으로 다 잘 다루는 느낌.

이빨을 좀 조심해야하긴 해야한다

 

맛과 비쥬얼 모두 훌륭했던 립.

다만, 하나 조심할건 저 위에 올라가있는 (옥수수로 추정되는) 곡물이

아주아주 딱딱하다.

 

이빨 약한 사람이 무방비로 씹었다가는 강냉이 우수수 날아가기 딱 좋은 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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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센그릴 식당에서는 아우구스티너 브로이의 맥주를 취급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 포스팅이 맥주에 관한 글이어야 한다는걸 잊을뻔했다.

보고있자니 냉장고에서 맥주 한 병을 꺼내오고싶은 욕구가 인다

 

아우구스티너 브로이는 1328년에 설립된 뮌헨 최고령 양조장이다.

(조선왕조조차 1392년에 시작된걸 감안하면 진짜 오래되긴 했다)

 

1294년 이곳 뮌헨에 아우구스티너(어거스틴) 수도회가 설립되었는데

역시 수도원답게 몇 년 지나지 않아 양조장도 함께 건립했다.

설립년도인 1328년은 정식으로 아우구스티너 브로이(Augustiner Bräu)라는

이름을 사용하기 시작한 해이다.

 

수도원은 나날이 커져서 프라우엔 성당이 완공되기 전까지

뮌헨 최대의 종교시설이었고

더불어서 양조장도 번창을 거듭,

비텔스바흐 가문 공식 납품업체가 된다.

 

물론 익히 알려져있듯 빌헬름 5세의 명으로 

1589년 지금까지도 경쟁사인 호프브로이하우스가 만들어진 이래

납품계약은 끝.

 

아우구스티너 수도원 맥주도 1800년대에 불어닥친

세속화의 바람을 피하지 못했다.

 

수도사들은 수도원을 모두 떠나야 했고,

양조장은 잠깐동안 공국에 귀속되었다가 Anton Wagner라는 농부 가문에 팔렸다.

(농부를 무시하지 말자, 기본적으로 굴리는 땅이 어마어마한 사람들이다)

 

* 바그너 성씨에 브루크너 이름을 가진 남자, 그 이름이 마음에든다

 

언제 한 번 세속화에 대해 글을 써보는것도 좋겠다...

맥주랑 인연이 많은 시기이니만큼.

우표 모양의 로고

 

여튼 이 가문은 브랜드를 잘 굴려나갔다.

그리고 안톤 아들내미 Josef Wagner가 로고에 J.W.를 박아넣으면서 

지금의 멋들어진 맥주 로고가 탄생한다.

 

수도사들의 지팡이까지 함께 그려넣으면서

그리고 수도원 맥주였다는 뿌리에 대한 의리까지 지킨 요제프.

 

지금까지도 아우구스티너는 뮌헨 사람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맥주인것같다.

옥토버페스트 지정 6개 양조장중 하나이니 만큼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뮌헨 모든 가게, 편의점(우리식 편의점은 아님)에 가장 많이 진열된 맥주병이

아우구스티너 헬이다.

병이 좀 2류맥주같이 생겼는데, 의외로 초일류 맥주

 

그것보다 더 직관적인 지표는

길거리에 가장 많이 버려진 맥주병이 바로 위의 초록색 맥주병.

 

참고로 독일에서 맥주병을 길에 버리는건 몰상식한 행위가 아니다. 

공병 반환금 제도가 있기때문에 노숙인들의 소중한 생계자금이 된다.

한 쪽에 잘 세워두기만 하면 된다.

 

나는 병입된 아우구스티너 헬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생맥으로 마실때는 다른 뮌헨 맥주들보다 선호하는 편이다.

밀맥 라인업도 있다

 

물론 밀맥 라인업도 있어서 언젠가 한 번 사다 마셨는데

이 라인 역시 아우구스티너의 명성에 누가되는 맥주는 결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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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내가 왜 바텐더와 함께여서 즐거웠냐면

그 시크한 바텐더가 의외로 나를 잘 챙겨줬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 나라 말을 어느정도 하는게 이렇게 중요하다)

 

마침 우리가 맥주 한 잔을 다 비워갈 무렵

생맥주 오크통을 새로 딸 타이밍이 되었기 때문이다.

 

아저씨가 새 통 뜯는거 본 적 있냐고 묻고는(당연히 없었음)

그럼 아주 운이 좋은 친구들이라고 하더니

창고 문을 열어재끼고 오크통을 내왔다.

 

오크를 밀봉한 밀랍에 공기구멍을 내어준 후

몸통에 맥주 꼭지를 가져다 대고는

망치질 몇 번으로 부드럽게 꽂아넣는 아저씨.

 

첫 맥주 두 잔을 우리에게 따라주고 나서

새 맥주통이 열렸다는 의미의 종을 쳤다.

 

기분좋게 오른 취기를 다스리며 

친구놈과 다시 뮌헨 밤 거리로 나섰다.

(물론 비는 계속 오고있었다)

 

Das En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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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agerbier Hell

 도수 : 5.2%

 용량 : 500ml

 용기 : 잔

 원료 : 물, 보리맥아, 홉

 

**  Weißbier

 도수 : 5.4%

 용량 : 500ml

 용기 : 병

 원료 : 물, 밀맥아, 보리맥아, 홉, 효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