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다섯 번째 듣다] Münchner Philharmoniker - Karina Canellakis

지난주 이드매 즈음 딱 이렇게 생긴 흰 바탕의 페이지에 글자를 끄적이면서

'제아무리 겨울이 쳐지는 계절이라지만 밖으로 나가기엔 추울망정

방안에서 글을 쓰지 못할 이유는 없음' 을 재확인하며

부지런히 글을 써볼것을 결심했거늘

 

마음먹은걸 지킨다는게 쉬운일이 아니다.

 

지나간 엿새동안 나는 지독하게 많은 낮잠과

약간의 넷플릭스와 함께했을 뿐(덱스터를 다시 보고있다)

나의 이야기를 살려내는 데에는 다소 소홀했음을 인정한다.

(뭐 어때 :D 이게 돈을 벌어다주면 조금 책임감이란게 생기려나)

상당히 많은 정보가 들어있는 티켓

 

이번 편은 공연일기다.

블로그 게재순이 아니라 현실세계의 기준으로 보면

BRSO의 개막공연이 있던 9월 26일 바로 하루 뒤에 열린 공연에 대한 후기다.

여기에 더해 이 공연장이 가진 이야기도 약간 써볼까 한다.

 

뮌헨필의 개막으로부터는 정확히 삼 주가 흘러있었는데 

그사이 이들은 이미 두 번의 공연 프로덕션을 돌려놓았으니

매주 새로운 프로그램을 올리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 24-25시즌 네 번째 공연에서는 무려 올시즌 세 번째 지휘자가 지휘봉을 잡는다.

 

상임이 공석이라는게 이런건가보다.

내심 게르기예프의 음악을 듣지 못하는게 아쉬우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거의 매번 다른 지휘자의 음악세계를 구현해내는 이들 뮌헨필을 지켜보는 재미가 있다.

Karina Canellakis

 

모처럼 여자 지휘자의 공연을 본것같다.

그 전까지 내가 공연장에 앉아서 본 유일한 여자 지휘자는 경기필 상임이었던 성시연 뿐이었으니

아직까지는 사실 '지휘자' 라는 직업, 그리고 클래식 업계의 남자 선호가 뚜렷한게 사실이다.

(음... 남자 지휘자들이 배 나온 사람이 많아서 포디움에 섰을때 안정감이 좀 있긴 하지)

 

오늘의 주인공은 카리나 카넬라키스(Karina Canellakis), 미국 국적의 지휘자다.

옛날에 라디오필하모닉 오케스트라(네덜란드) 유튜브에서 한 번 본게 전부이지만

알게모르게 화려한 경력을 가진 사람이다.

 

네덜란드 라디오필 음악감독, 런던필 수석객원 등... 

 

원래는 바이올리니스트였는데

베를린필 아카데미오케 단원시절 사이먼 래틀 선생의 눈에들어 지휘자의 길을 걷게되었다고 한다.

(과연 뮌헨에 상주중인 래틀 선생은 자기가 부추겨서 지휘중인 사람의 공연에 왔었을까)

 

보수의 정점에 서있는 이곳 뮌헨에 카넬라키스가 들고온 음악은

베토벤의 에그몬트 서곡과 운명교향곡 그리고 쇼스타코비치의 첼로협주곡이었다.

에너지의 조절이 아주 중요한 곡들인데 어떤 스타일로 풀어낼지 궁금했다.

뮌헨필은 거의 예외없이 가슈타이크 HP8을 사용한다

 

지난 포스팅에서 이곳 공연장에 대해 설명을 달지 말지 한참을 고민하다가

그래도 개막공연임을 감안해서 뮌헨필 자체에 약간 집중하기로 하면서 참았는데

오늘은 얘기할 수 있다.

 

여기 공연장은 진짜 GASTEIG이 아니다.

위 사진을 봐도 GASTEIG HP8 이라고 구분해서 간판달아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 친구는 지난 글에서도 살짝 흘렸다시피 임시공연장에 불과하다.

2024.10.26 - [듣다] - [열세 번째 듣다] Münchner Philharmoniker - Lahav Shani : Bach

 

가슈타이크는 1985년에 완공된 뮌헨의 복합 문화시설이며

그 이후로 쭉 뮌헨필이 상주 공연장으로 사용중이던 소중한 공간이다.

 

탄생 배경을 따라 근원까지 파고들어가면 다시 한 번 2차대전이 나오는데

2차대전중에 뮌헨의 두 소중한 공연장 '오데온(Odeon)'과 '톤할레(Tonhalle)' 가 거진 완파되어버려서

존재감은 별로 없었을지언정 19세기부터 존재해온 뮌헨필은 급기야

상주공연장을 잃고 연주할 공간을 찾아 이리저리 헤매는 신세에 처하고 만다.

 

뮌헨시가 다시 공연장을 만들겠다는 생각을 한건 전후정비를 마치고 난 60년대 후반에서였는데 

그마저도 시립도서관과 시립문화센터 수용능력이 한계에 봉착한 결과 

복합문화시설을 만들자는 논의가 나온 덕분이었다.

 

곧이어 새로운 복합문화센터가 들어설 장소가 결정되었고,

그 위치는 뮌헨 구도심 동남쪽 하이드하우젠(Haidhausen)의 언덕배기 'Gasteig' 였다.

 

가슈타이크는 중세 바이에른 사투리로 가파르다는 뜻을 가진  'gaehe'와

경사로를 뜻하는 'Steig'가 합쳐진 지명이다.

막상 가보면 그렇게까지 심한 언덕은 아닌데(기징같은데가 오히려 더 언덕에 가깝지)

아마도 소금교역로에 위치했을테니 무거운거 나르기엔 gach 했을것도 같다.

 

모쪼록 그 언덕배기에 모던한 공연장을 만들기로 하고

이미 자리잡고있던 요양시설도 야심차게 철거했지만

너무나 독일스럽게도 1978년에야 기공식을 올리고 그 이후에도 지연, 또 지연된다.

가슈타이크 자리에는 요양시설이 있었다

 

그런것 치고는 제법 빠르게 개장했는데 그게 1985년,

즉, 첼리비다케의 영도아래 있던 시즌이다.

 

붉은 벽돌로 지어진 건축물인 탓에(벽돌건축은 남독일스럽지 못하다)

지역 주민들로부터 '문화수용소' 소리를 들어야 했지만

40년만에 뮌헨에 다시 들어선 전용 공연장이었다.

리모델링을 앞둔 Gasteig의 모습

 

드디어 상주공연장이 생긴 첼리비다케가 얼마나 행복했을지 상상해보려고 할 때마다

와장창 환상이 깨져버리고 마는 이유는

이 가슈타익이 실패한 공연장의 표본으로 자주 언급되기 때문이다.

가슈타이크의 대표 홀 'Philharmonie'

 

현대적으로 잘 설계된것 같은 이 공연장은 음향이 구린 걸로 상당히 유명했다.

남은 인생이 5년뿐이던 살아생전의 번스타인이 여기 Gasteig 개장년도인 1985년에 공연을 하고서는

방명록에 '태워버려(Burn it)' 라고 쓴 일화는 심지어 실화다...

 

잘 찾아보면 리카르도 무티가 가슈타이크가 음향적으로 실패한 공연장이라고 인터뷰한 것도 있다.

심지어 돌려말하지도 않는다(그 신사양반이).

 

그래도 가슈타이크 덕분에 뮌헨필이 얼마나 큰 안정을 누렸는지 모른다.

전용 공연장이 있고 없고는 오케스트라 운영에 있어서 정말 큰 차이를 불러온다.

(이 얘기는 BRSO와 함께 풀어내는게 더 적절할테니 조금 더 미뤄보자)

 

2015년 어느날, 바이에른 주 총리가 갑자기 가슈타이크의 철거와 전면 재건축을 주장하고 나섰다.

표면적인 이유야 현행 화재방지시설 기준 미흡, 음향문제 해결 등에 있었는데

사실은 BRSO의 염원이던 또 하나의 공연장 신축 계획을 좌초시키려는 의도였다는게 정설이다.

 

실제로 가슈타이크 재건축은 신축 공연장 계획을 백지화하면서 생긴 계획이었지만

클래식 음악계의 엄청난 반발을 때려맞은 끝에 

얼결에 두 계획이 병행추진되는 경사스러운 상황이 펼쳐졌다.

이렇게 바뀐다고 한다

 

그래서 Gasteig는 문을 닫았다.

그래도 대책없이 뮌헨사람들에게서 클래식 공연장을 다시 뺏어갈 수는 없는지라

뮌헨시는 2021년 리노베이션에 들어가기 전에 GASTEIG HP8 이라는 임시공연장을 개관시켰다.

 

가슈타이크 이름을 쓰고있기는 하지만

(HP8은 임시공연장 주소의 약자다. Hans-Preißinger-Straße 8)

사실 공통점이라고는 벽돌을 사용한 외관과 이자르강변에 있다는것 정도다.

 

심지어 평지에 있다.

 

정말 다행이도 그 구질구질하다는 음향은 닮지 않았는데,

휴먼스케일 공연장 답게 음향은 상당히 좋은 편이다.

Gasteig HP8 로비

 

임시문화시설 치고는 너무 훌륭하게 잘지어놨다.

가운데 공간이 중앙정원처럼 트여있는 테라스 형태의 공연장인데

그 곳곳에 (임시) 시립도서관과 문화센터, 그리고 공부방들이 알차게 자리잡고있다.

오히려 열람공간들이 층으로 분리된 와중에 테라스로 개방되어있다보니 

묘한 안정감이 들면서도 답답한 느낌이 전혀 없다.

 

음... 독일사람들이 그럴것같지는 않지만

제발 개축 이후에도 철거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이번에도 시야방해석 :D

 

모쪼록 다시 공연장 안으로 돌아와보자.

오늘도 시야방해석 티켓밖에 구할 수 없었지만 

프로그램이 결코 내 최애라고는 할 수 없는 곡들이라 아쉬움없이 잘 감상했던것같다.

베토벤 운명교향곡을 마치고

 

교향곡의 4악장이 끝난 후에 가장 큰 박수가 터져나왔고, 사실 그게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오늘 내게 인상적이었던건 오히려 쇼스타코비치 첼로협주곡을 풀어나가는 해석에 있었던것같다.

뭐라 표현해야할지 잘 모르겠는데

파블로 페란데즈와 함께 보여준 이날의 쇼스타코비치가 어...

전혀 기대치 않았는데 인상깊게 파고들어서 

집으로 돌아가는길에 비슷한 느낌의 음원이 뭐가 있을지 열심히 찾아보려했던 기억이 난다.

 

베토벤 음악들은 그렇게 특별한 느낌은 없었다.

오히려 힘을 주려고 의식하는듯한 뻣뻣한 감정이 간혹 전해져오기도 했었던것같다.

사실 베토벤같은 가장 고전적인, 그리고 가장 기본적인 작품만큼 연주하기 무서운 곡이 없을거다 ㅎㅎ

미관상으로도 상당히 괜찮은 공연장이다

 

끝으로 

 

이 글을 읽고 나서

'대체 Gasteig 리노베이션은 언제 끝나는거죠?' 라는 질문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면

확실히 독일사람은 아닌게 분명하다.

 

독일에서 건물이든 교통시설이든 혹은 심지어 지하주차장 보수가 되었든 어떤 공사를 한다고 했을때

끝나는 시간을 예상하는것 만큼 의미없는게 또 없다.

세상 늘어져~~~라 지연되는게 지극히 정상인 독일의 공사 되시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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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연정보

공연장 : Isarphilharmonie, HP8

 

Ludwig van Beethoven

- Overtüre zu 'Egmont', op.84

Dmitrij Schostakowitsch

- Konzert für Violoncello und Orchester Nr. 1 Es-Dur, op.107

Ludwig van Beethoven

- Symphonie Nr. 5 c-Moll, op.67

 

지휘 : Karina Canellakis

연주 : Münchner Philharmoniker

첼로 : Pablo Ferrande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