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아홉 번째 산책] 말 그대로의 '숲속마을' 미텐발트와 가이스트협곡①

오늘의 반환점에는 평화로운 계곡이 있다

 

 

이름들이 지닌 뜻을 곱씹어보곤 한다.

특히 어떤 장소에 깃든 이름이라는건 내게 일종의 지침서와도 같아서

당대 사람들이 마음속에 그 지역을 그려낼때 어떤 질감을 담아내었는지를 상상해보게끔 한다.

 

그 의미가 뚜렷하게 전해져오는 곳들도 많다.

'지역의 방패' 라는 의미를 지닌 '란츠후트(Landshut)'를 누빌때를 예를들면

당대 바이에른 공작가의 소망이 담긴 이 이름을 되뇌이면서 그곳을 거닐때

더 많은 것이 보이는 느낌, 혹은 보이지 않는 어떤 행간마저 내게 귓속말을 시도하는 그런 느낌마저 들었었다.

 

물론 어떤 이름은 의미라는게 전혀 없어보이기도 한다.

누군가를 혹은 무언가를 부를수 있게 해준다는 그 자체에 의미가 있기도 한 것이 이름이니 말이다.

그럴때에는 그 단어가 지닌 질감만이라도 오물오물 입안에 돌려보는데,

풍선껌을 씹는것 처럼 단 5분정도에 불과할지언정 재미를 안겨주곤 한다.

 

역시 오랜만의 글이다(대신 96화짜리 덱스터가 이제 9편 남았다).

이번 소재로는 아직 가을이 한창일때 떠난 미텐발트(Mittenwald)와

그곳에서 들어갈 수 있는 '가이스트협곡(Geisterklamm)' 산책기를 골라봤다.

미텐발트는 역을 내릴때부터 산과 함께다

 

처음 미텐발트라는 이름을 들었을때는 살짝 웃음이 나왔다.

마을 거주민들의 푸념같기도 하고

다시 한 번 입 안에서 굴려보면 산 바깥에 서있는 사람들이 품은

약간의 두려움섞인 동경과 호기심의 맛도 느껴졌다.

 

미텐발트는 숲 이라는 뜻의 'Wald'와

'~의 한가운데에', '~중간에' 가끔은 '~와중에' 같은 뜻을 가지는 'mitten'이 합쳐진 이름이다.

정확히 한 가운데를 의미하는건 물론 아니겠지만

잘 지은 이름이 아닐 수가 없다.

 

미텐발트에 들어가보면 사방이 온통 산으로 둘러쌓여있는걸 금방 알아차리게 된다.

어느 방향을 바라봐도 팔짱을 딱 끼고 마을을 내려다보는

험악한 알프스 형님들의 시선으로부터 숨을 곳이 없음을 느끼게 된다.

 

저 알프스는 정말이지 어떻게 미텐발트 발치에 다다라 거짓말처럼 땅으로 꺼져버리면서 

이곳에 고요하고 아늑한 숲속마을이 자리잡을 공간을 마련해둔걸까...

 

아마 산을 지하로 추방시켜버린 장본인은 마을을 따라 흘러내려가는 이자르 강이었긴 할거다.

오늘도 북측 측면승강장이다

 

강이라는게 내리막만 있지 오르막은 없으니만큼

그 이자르강을 따라 쭉 달려가면 편하려마는

열차편으로 뮌헨에서 미텐발트에 가려면 가르미슈 파르텐키르헨을 경유해야만 한다.

위의 사진 왼쪽에 서있는 파란 RE56을 타면 이자르변의 Lenggries 마을까지는 갈 수 있지만

그 너머를 달리기에는 이자르 협곡이 너무 험했나보다.

Weilheim 남쪽 선로는 전부 Werdenfels 회사 소유다

 

Werdenfelsbahn 회사는 주구장창 빨간 2442계 탈렌트를 굴린다.

슈타른베르크 호수를 지나가는 RE6와 여기서 뻗어나가는 지선들은 모두 여기 소유 노선인데

아름다운 마을들과 가볼만한 여행지를 무수히 많이 거느리고 있는 알짜배기들이다.

심지어 인스부르크를 오가는 S6 노선도 여기에서 운영하고 있다.

(독일 국경을 넘는 순간 49유로티켓-도이칠란드티켓은 효력을 상실한다. 검표도 확실하게 하는 구간이다) 

Garmisch-Partenkirchen가 메인 차고지다.

 

푸르른, 혹은 눈에 덮여 새하얀 알프스 사이로

이 새빨간 기차들이 지나다니는 풍경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른다.

게다가 객실에 콘센트도 아주 잘 구비되어있어서 

나같이 하루종일 사진찍으면서 돌아다니다가 집에갈무렵에는

방전되기 직전인 핸드폰 배터리와 함께인 나들이객들에게는 고마운 열차시다.

(콘센트가 차창 윗쪽에 나있어서 충전기를 꽂아 매달아두면 마치 휴대폰에 수액을 놔주는 기분이다)

독일 최고봉 추크슈피제(Zugspitze)를 이렇게 쉽게 볼 수 있다

 

Garmisch-Partenkirchen에서 갈아탄 열차가 그렇게 오래지 않아 미텐발트역에 도착했다.

국경을 넘기 전에 뭐 준비라도 조금 하려나 싶었는데

나를 내려준 기차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출발해 더 깊은 산속으로 사라졌다.

연륜이 느껴지는 문구다

 

역사(히스토리 말고 건물)에는 세월이 느껴지는 문구가 적혀있었다.

미텐발트의 해발고도를 써둔 문구였는데

물론 덧칠은 새로 했겠지만 NN(Normal Null)은 92년부터 사용하지 않는 과거 독일의 해발도고 표기법이다.

Mittenwaldbahn이 1912년에 개통했으니 그 무렵부터 쭉 적어둔 문구인듯하다.

 

바이에른 왕국과 오스트리아 제국이 함께 관리하던 이 노선은 

나름 알프스-발칸 철도에 한 영향력 정도는 행사한 녀석이다.

미텐발트선이 당시 오스트리아제국 전체을 통틀어 전 구간이 전기로 깔린 첫 노선이었기 때문에

오-헝 제국이 앞으로 동부지역에 깔 전철들의 표준을 세팅한 노선이 된다.

역 바로앞에 있는 우체국 건물

 

역 바로 앞에는 우체국 건물이 상당히 크게 있다.

마을 규모에 비해서 정말 큰 편인데 저기 직원들은 말단부터 자기 방 한 개 정도는 있을것같다...

이 우체국 건물을 포함한 미텐발트 시내에 있는 사실상 모든 건물들은 문화재로 등록되어있다.

개축같은건 꿈도 못꾸겠지...

 

역에 내려서 철길 따라 쭉 계속 내려가면 최단거리로 협곡 입구에 도달할 수 있지만

이 멀리까지 두 시간 반을 왔는데 마을구경을 빼놓을 수는 없다.

 

그러고보니 제목에서 빼고는 오늘의 목적지를 한 번도 언급한 적이 없다는걸 깨달았다.

오늘의 목적지는 Leutascherklamm 혹은 Leutascher Geisterklamm이라고 불리는 협곡이다.

Klamm은 협곡, 계곡이라는 뜻이고 Geist는 유령이라는 의미니 유령협곡이라는건데

계속 망령처럼 앞에 따라붙는 저 Leutasch는 이 협곡을 따라 달려내려가는 계곡의 이름이자

계곡 상류에 위치한 콩알만한 마을 이름이다.  

아직 가을이었던게 실감이 나는 사람들의 옷차림

 

토요일을 맞은 미텐발트는 제법 활기로 가득했다.

아직 날씨도 좋고 해도 길때 알프스를 즐기려는 사람들이 많이들 놀러와있었다.

비인간적인 알프스 풍경에 둘러쌓여있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평소와 다르게 사람들이 적당히 있어주는게 마음이 더 편한 기분이었다 :D

St. Peter und Paul Kirche

 

한 200m나 걸었을까, 바로 마을 한복판의 성당이 나왔다. 

정말 예쁘고 조그만 마을이라고 생각하면서 성당 앞 모퉁이를 돌려는 찰나 

한 무리의 악대와 마차를 앞세운 주민들의 행렬을 맞닥뜨렸다.

어떻게 그냥 마을사람들이 브라스를 이렇게 잘들 부는지 항상 궁금하다

 

바이에른 전통의상을 차려입은 남자들이 브라스를 불면서 행진하고

그 뒤를 마차탄 가족이 따라가고 있었는데

(레더호젠과 디른들을 독일 전통의상이라고 하면 다른지역 사람들이 상당히 싫어한다)

새하얀 옷으로 아기천사처럼 차려입은 갓난쟁이와 함께인거로 봐서는

모처럼 마을에 유아세례가 있던 날이 아니었을까 싶다.

따라가고싶은 마음이 절로 생기는 이 신남

 

이 (피리 말고) 관악기 부는 사나이들이 상당히 많은 관광객들을 꾀어내 끌고가는데 성공했지만

나는 가까스로 참아내고 주님 품으로 미끄러져들어갔다.

성당 내부

 

성 베드로 바울 성당은 아주 멋진 바로크 성당이다.

깔끔한 회백색 벽에 중후한 프레스코화 그리고 과하지 않은 금박 장식을 갖고있다.

높다란 창을 통과해 들어온 햇빛이 이 고요함을 비추면 무엇이 되었든 신성이라는걸 믿고싶어진다.

물론 성당이라고 알프스에게서 달아날 수는 없다

 

이제 본격적으로 가이스터클람으로 향해보기로 했다.

평소보다 허기가 조금 빨리 찾아와서 케밥집을 지나는게 유달리 힘들긴 했었지만

가방안의 삶은계란과 바나나를 배신할 수는 없기에 휘여휘여 클람으로 걸어본다.

(여기서 케밥을 사먹으면 아침부터 계란 삶는다고 부지런 떤 나 자신에 대한 배신감이 제일 클거다)

방향을 바꾸니 알프스가 그나마 조금 멀어졌다

 

계곡으로 가는 와중 마을 끄트머리에서 태권도 도장을 마주쳤다.

운동도 싫어하고 특히 그중에서도 '무도'라는 폭력이 가미된 장르는 특히 꺼리지만

독일 시골마을 한귀퉁이에서 만난 신명조체의 '태권도'는 반갑긴 했다 :D

여기까지 태권도가 진출해있다니

이 즈음이 시내가 끝나는 지점이다

 

마을 풍경이 너무 예뻐서 계속 사진을 찍느라 멈춰섰던 기억이 난다.

물론 항상 그렇듯 건지는건 몇 장 없지만 말이다 ㅎㅎ...

기억속에 남아있는 저 푸르른 녹색이 그립다. 

지금 이순간에는 살짝 걷어둔 커텐 사이로 간밤에 서리가 내려앉은 마른 이파리들이 보인다.

뭐... 모닝커피와 함께하는 이 풍경도 그렇게 싫지만은 않다.

뮌헨까지 111km, 근교라기엔 멀리도 왔다

 

건물들이 점차 시야에서 사라지고 그 자리를 더 많은 알프스가 채우기 시작했다.

오늘 등산까지는 아니지만 여하튼 저 안 어딘가로 들어간다는 생각을 하니 점점 신나오는 산책자다.

가이스터클람 가는 길은 여기에서 시작된다

모처럼 뒤를 한 번 돌아봤다

 

가이스터클람 입구로 가는 오솔길 입구에 다다랐다.

물레방아 돌리던 실개천을 따라 조금만 거슬러올라가면 이제 본격적인 오늘의 투어가 시작된다!

누가 알프스 빙하녹은 물 아니랄까봐 석회 한가득 풀어놓은 옥빛 개울이다.

언젠가는 저 산도 한 번 올라보고싶은 무서운 생각이...

이건 Leutascher Ache다

 

조금 더 가니 뮐바흐가 로이타쉬 계곡이랑 합쳐졌는데(엄밀히 따지면 갈라지기 전 지점이지만)

와... 로이타쉬 계곡은 평지에서도 물이 콸콸 흘러가는게 뿜어져나오는 에너지가 어마어마했다.

협곡 안에 들어가면 대체 어떤 힘을 선보일지 짜릿함이 온몸을 잠식해간다 ㅎㅎ 

 

클람 안쪽 일기는 또 잠깐 쉬고 다른데에 써봐야겠다.

남은 덱스터를 얼른 다 봐야 글에도 집중이란게 좀 될것같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