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세비야] 맛과 색, 그리고 열기로 가득한 차양의 도시 세비야 ①

임팩트가 가장 강했던건 스페인광장인것 같다

 

태양마저 사람들만큼이나 여유로운건지 

햇살의 나라는 그 강렬한 이미지가 무색하게도 스페인의 아침해는 생각보다 늦게 떠올랐다.

 

나중에 스페인통 친구에게 듣자하니 이마저도 또 2차대전 무렵에서부터였다 했다.

스페인내전에서 프랑코가 정권을 잡는데 히틀러와 무솔리니 손을 좀 많이 벌렸는데

시간을 얘기할때마다 자기들만 한 시간이 늦는게 소외감이 느껴졌는지 

독일 시간으로 맞춰버린게 아직까지 유지되고 있다고 한다.

(우리였으면 진즉에 돌려놨지)

 

모쪼록 태양은 죄가 없다는것.

 

아, 숙소를 나왔을때 해가 없었는데 그 이야기가 하고싶었다.

이러나 저러나 해가 떴든 안떴든 공기중에 따스함이 가득한건 매한가지여서 내게는 충격이었다.

전날 밤에 도착했던 그곳으로 다시 돌아갔다

 

공항에 도착했을때는 그래도 해가 떠있었다.

해가 뜨자마자 조금 더워지기 시작해서, 

마치 태양이 아침이라는 개념을 건너뛰어버리고 바로 한낮으로 돌진해버린것같은 기분이 들었다.

 

공항은 전날 밤에 본것 만큼이나 정말 현대적이었다.

그리고 천장에 팬이 달려있는게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었다 ㅋㅋㅋ (더운 나라구나)

고마운 나의 라이언에어

 

세비야로 나를 데려다줄 항공사는 너무나 당연히도 라이언에어

교환학생 시절부터 나를 이곳저곳으로 실어나르는 훌륭한 항공사다.

공항세 아끼겠다고 탑승교 안쓰고 주기장 걷게 만들어주는 점 또한 마음에든다 :D

이게 어인일이람

 

심지어 고객관리에도 눈을 뜬건지 

나라는 우수고객에게 한 줄을 통째로 쓰는 행운까지 선물해줬다.

심지어 비행기 탑승 손님이 적은 편도 아니었다 ㅋㅋㅋ

이륙 직후, 발렌시아 전경

 

비행기 바퀴가 활주로를 떠나는게 느껴지기가 무섭게

내가 앉은 방향으로 발렌시아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어제 밤에 숙소 가는 동안에 느낀대로 정말 모래빛으로 가득한 도시같았다.

나중에 다시 올 일이 있을까? ... 정도 타이밍에서 기절했던거로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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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하게 바뀐 분위기

 

기장선생이 착륙준비를 알리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어후... 뮌헨에서부터 이동하는데 에너지를 많이쓰긴 했는지 깊게 잠들었나보다.

상당히 개운했다 ㅋㅋㅋ

 

드디어 생애 처음으로 스페인 남부에 접어들었다는 기대감에 창밖을 봤는데

발렌시아랑은 분위기가 또 다른 풍경이 있었다.

음... 적어도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세비아 인근은 더 메마르고 생기없는 느낌이었다.

뭐야, 정열의 도시라고 다들 그러드만

Sevilla

 

착륙해서도 역시 주기장은 걸어가는게 제맛!

하아아... 바람이 뜨거웠다...

 

공항에서 시내까지는 공항버스를 타고 움직였다.

정류장 앞 가판대에서 아저씨가 티켓을 팔고있었다.

아는 스페인어라고는 종이의집 보면서 너무 자주들은 몇 개 단어가 고작이었지만 

다행이 손가락이 있어서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공항버스는 시내 곳곳에 사람들을 내려줬는데

숙소에 가기 적당한 지점에 내려서 시내를 관통해보기로 했다.

차양이라는게 이렇게 아름답게 사용될 수가 있는거라니

 

내가 세비야를 관통하는 동안 그곳의 더위도 나를 꿰뚫고있었는데

이 열기를 그나마좀 덜어보려는 시도들이 도시 곳곳에 보였다.

마주보는 두 건물들은 항상 좁다랗게 모여서서 거리를 그늘로 만들고,

그럼에도 정수리 바로 위에서 내다꽂히는 태양빛은 차양을 드리워 덜어내고있었다.

 

그런데 그 모습안에 정말 뭐랄까... 아름답다 못해 섹시함에 가까운 매혹이 깃들어있었다.

건물은 또 상당히 이국적이다(물론 이국이 맞다, 한국에서 보나 독일에서 보나)

 

무와히드 왕국 칼리파가 살았다던 이쉬빌리야는 

카스티야 왕국의 세비야로 이름이 바뀐 후에도 이슬람풍을 많이 채택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그간 유럽 어느 곳에서도 보지 못한 독특한 매력이 넘쳤다.

성 살바도르 성당, 바로크 양식이 뚜렷해보이지만

 

곳곳에 모스크로 건축되었던 성당들이 즐비하고

가장 높게 드리운 '히랄다 탑' 역시 이슬람의 위대한 건축물이었다고 한다.

위 사진의 바로크 풍이 뚜렷한 성 살바도르 성당 역시 모스크로 지어진 건축물이었다.

렌즈를 어디에 들이대도 차양은 좀처럼 빠지는 곳이 없다

세비야 시청의 남쪽 귀퉁이

 

시청 앞에는 무슨 도서전을 위한 부스가 설치되어있었다.

세비야에만 있나 싶었는데,

일주일정도 스페인을 돌아다니는 내내 온갖 도시에서 다 마주칠 수 있었다.

책을 좋아하나 에스파뇰

시청앞 광장, 누에바 광장으로 가는 길이다

 

사실 시간을 좀 죽이고 있었다.

모처럼 여행을 떠나는데 사람도 좀 보고 남이해준 밥도 좀 먹고 하고싶어서

세비야에서는 한인민박을 잡았는데 아직 체크인 시간이 되지 않았었다.

 

한 30분 일찍 가도 되려나 싶은 마음도 들긴 했는데

세비야의 아름다움에 반해서 짐과 함께여도 그냥 좀 돌아다녀보기로 했다.

 

더웠다.

산 페르난도 광장

 

광장에는 기마를 탄 아저씨 동상이 하나 있었다.

기마상인걸 보니 좀 괜찮은 왕이나 장군이라는건 유추 가능했는데

나중에 찾아보니 (이슬람으로부터의) 세비야의 해방자 산 페르난도 왕이라고 했다.

역사야 뭐 승리자가 기록하는거니깐...

 

숙소에 들러 짐을 풀고 밖으로 나왔다. 

마침 딱 밥먹을 때라고 했다...

스페인 사람들은 하루에 네 끼 이상을 보통 먹는단다.

그래서 내 기준이랑은 이곳의 표준 식사시간이 묘하게 어긋나는 느낌이 있었다. 아직은.

 

민박집 이름은 세비야 앤티크하우스였는데

사장님이 재미난 아저씨였다 ㅋㅋㅋ 과거가 궁금해질정도로... 

시설이나 그런건 얼추 괜찮았는데 아주 솔직히 밥은 내가 해먹는 밥이 훨씬 맛있긴 했다.

요즘 내 요리실력이 좀 물이오른 것도 있지.

 

내 여행 인생에 정말 드문 일인데 이번 여행 전체에는 동행이 있었다.

미지의 땅에 가는데 혼자이고 싶지 않았던걸까.

그러길 잘했다는 생각이 몇 번이고 들었다.

운좋게도 너무너무 좋은 동행자였을 뿐 아니라, 사람 만큼이나 중요하게도

그와 함께여서 매 끼니마다 두 개 이상의 메뉴를 맛볼 수 있었으니깐 ㅋㅋㅋ

첫 끼니가 벌어진 거리

 

아직 동행분이나 나나 세비야에 대한 사전 정보가 별로 없는 상태에서 첫 끼니를 맞이했다.

대성당 근처 거리에 갔을때는 허기를 도저히 견디기가 어려워서

너무 여행지 근처이기에 가성비가 좋지 않을것을 걱정하면서도 그대로 주저앉았다.

오렌지나무가 심겨진 거리에 드리워진 빨간 차양이 아름다웠던 것도 크게 한 몫 했다.

 

세비야에는 오렌지 나무가 셀 수 없이 많았다.

그리고 오렌지가 스페인어로 '나랑하(naranja)' 라고 하는데

어쩜 그리 어감조차 몽글몽글한건지...

 

스페인어로 어줍잖게 가게 상호명을 읽느니 지도를 올리는게 나을것같다.

< Antigüedades Bar de Tapas >

 

음식은 그래도 맛있었다. 특히 따로 주문했던 올리브가 넘 좋았다 ㅠㅠ

동행분이랑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빨간 차양그늘 아래서 

각자 맥주 한 잔과 띤또 데 베라노 한 잔을 마셨다.

이때 알았다. 세비야 음식은 일단 최소 기본은 한다

 

나름 맛있는 맛집에서 점심도 해결했겠다

우리는 쭉 걸음을 도시 남쪽으로 옮겨 스페인 광장으로 향해보기로 했다.

스페인 여행에 대해 감이 없던 탓에 각종 여행지를 예약해야 들어갈 수 있다는걸 몰랐는데

그래서 세비야 알카사르(이슬람 왕궁)는 들어갈 수가 없고

대성당 표는 용케 구해서 내일 가기로 했었다.

 

콜럼버스 무덤은 볼 수 있겠군...

 

사실 처음엔 조금 아쉬웠는데 

그냥 여기서는 걷다가 땀 식히고, 그리고 맛있는 음식만 먹다가 돌아가도

행복할 것 같았다.

동행분과 젤라또도 먹었다

 

동행분도 나와 생각이 비슷했다.

사사로운데에 너무 아쉬움과 걱정을 쏟아내지 않는 그가 고마웠다.

그리고 대성당 앞에서 먹은 젤라또가 시원하고 맛있어서 또 세상에 감사함마저 들었다.

 

세비야 1일차 포스팅을 한 호흡으로 마치려고 했는데

(첫 사진이 내용에는 없는 스페인 광장인게 그 증거)

지금 현 시점이 크리스마스 연휴를 지나가고있다 보니 

한 잔 할 일들이 제법 많이 생긴다.

물론 혼자 마시는 술도 포함.

 

부득이하게 스페인 여행기는 조금 짧은 호흡으로 회상하게 될 것 같다.

 

쓰다보니 세비야의 따스함(이라기보다는 열기에 가깝나)이 그립다.

근데, 또다른 한 해가 시작되려하는 이 무렵에는

추위에 불어내는 입김이 또 더 따스하게 느껴지는것도 같고...

뭐 그렇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