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세비야] 세비야라는 천국에서, 이모저모 세비야 ③

돌이켜보면 저 무렵의 세비야는 내게 천국, 지상낙원같은 곳이었다.

무엇보다도 늘상 (조금 과하게) 따뜻한 기후와 결코 구름에 완전히 가려지는 법이 없는 하늘,

그 아래서 빛을 발하는 화사한 색의 건물들과 

하루에 밥 때가 네 번 밖에 되지 않는게 서러울정도로 맛있는 음식...

 

올해도 저기 남쪽나라 태양이 힘을 좀 잃어갈 무렵 다시 한 번 찾아야겠다.

그나저나, 이 글을 읽어주는 나 자신과 여러분들께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는 인사를 드린다.

하루의 시작은 언제나 헌법의 거리와 함께

 

여행자로서 세비야에서의 하루의 시작은 언제나 헌법의길과 함께다.

어제는 대체 이 거리를 몇 번을 지난지 모르겠다.

스페인광장만도 두 번을 오갔으니 이미 거기에서 4회 적립...

 

오늘은 세비야 2일차, 중요한 일정이 하나 끼어있는 날이었다.

'세비야 대성당 관람'

다시 한 번 이 모든 표를 구해놓은 동행분께 감사인사를 :D

 

민박집에서 차려준 아침을 먹으면서 하루 계획을 살살 구상해보던 우리는

혹시라도 알카사르에 입장 줄이 너무 길지 않으면 현장대기로 들어가보기로 했다.

그렇다고 따로 서두르거나 하진 않았는데, 

사실 둘 다 모두에게 들어갈 수 있다는 기대와 함께 걱정도 있었던것같다.

 

'행여나 줄이 애매하게 있어서 포기도 못하고 두어시간 기다리게되면 어떻게한담'

그러고보니 세비야에는 동양인이 은근 많았다(특히 우리 사람들)

 

얼마 걷지않아 입구가 있는 알카사바의 성벽을 만났다.

호오... 성벽 안 정원에 줄을 선다더니 듣기보다 사람이 정말 없는걸? 

희망에 부풀기 시작했다. 비수기인가?

 

그럴리가, 한국인이 여행지에 많이 보일때는 절때 비수기가 아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딘가에 여행갈 최적의 순간을 기가막히게 포착해내는 사람들이라구.

그러고보니 세비야에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상당히 많았다.

이정도면 줄이 엄청 없는거라고 한다

 

여하튼, 줄이 없었다.

뭐야 땡큐, 하면서 끄트머리에 우리도 발을 얹어보려는데 안내원이 왔다.

 

"오늘 남은 잔여표로 입장 가능성이 없어용, 돌아가세용"

 

그럼 그렇지.

크게 미련은 없지만 그래도...

앞으로 여행다닐때 유명 관광지 정도는 예약 필요여부를 알아두는것도 좋겠다는 교훈을 얻었다.

가르침을 얻었으니 이 아침에 알카사르까지 걸음한 의미가 있는거다.

뒤돌아 나오려 할때

 

플랜B가 딱히 없는 상황에서 일단 나가긴 해야하니 뒤를 돌았을때 히랄다탑이 눈에 들어왔다.

이따가 갈 곳이란 말이지 :D

금방 기분이 좋아진다 ㅋㅋㅋ

 

이러나저러나 정원에 줄지어 서있는 오렌지 나무들이 도시 어느 배경에 대어놔도 잘 어울린다.

 

'나랑하'

도시의 미관은 이렇게 신경쓰는거다

 

알카사르 앞 오렌지나무 그늘에는 마부들이 자기 마차와 함께 줄지어 쉬고 있었다.

도시의 미관은 이렇게 신경쓰는건데 말이다.

깎은지는 좀 되었지만 메로나 모양의 오렌지나무 아래 둥근 마차바퀴,

그리고 아직 익지 않은 열매 대신에 그 색깔을 떠올리게하는 바퀴살의 색깔 하며.

 

이런 이야기를 하며 지금껏 지나지 않은 골목 안쪽으로 무작정 걸었다.

플라멩고 박물관도 나오길래 '아, 그래! 세비야가 또 플라멩고의 고장인데 한 번 볼까?'

역시 매진이었다.

아무리 즉흥여행이 좋다지만 그래도 좀 보고다니긴 해야겠다 ㅋㅋㅋ

 

그래서 기왕 북쪽으로 향하던거 끝까지 올라가서 메트로폴 파라솔까지 가보기로 했다.

메트로폴 파라솔은 세비야 구도심에서 보기 드문 현대건축물이다.

(아니 어쩌면 유일할지도...?)

보아하니 너도 건축 계획때부터 반대가 깨나 심했겠구나... 고생했다.

메트로폴 파라솔, 고마운 그늘인건 사실이다.

 

생긴 모습이 파라솔처럼 생겨서 메트로폴 파라솔일것같은데

이래봬도 목조건물이라고 한다.

파라솔 위에 올라가볼 수도 있다지만 입장료(인당 15유로)를 찾아보고선 마음을 돌렸다.

사람들이 노을보러 해질녘에 제법 가는것도 같긴 한데

그 시간엔 밥먹어야한다는데 둘의 의견이 일치했다 ㅋㅋㅋㅋ

DDP류의 건축물, 선이 예쁘다

 

파라솔 밑에만 해도 사람들이 모여앉아 수다떨기 좋은 공간이 쭉 펼쳐져있는데(물론 그늘이다)

우리도 모처럼 만난 앉아 쉴 수 있는 그늘에 앉아

물도 한 잔 하고 수다나 좀 떨고 그랬다.

 

역시 여행은 쉬러오는거지 :D 

너무 열심히 돌아다니는것만이 여행은 아닐거다.

Hermandad del Valle(무슨뜻인지 모름)

 

파라솔이 있는 광장(Plaza de la Encarnacion, 그리스도의 현현 광장)에 올라서서 보니

어제 숙소 옥상에서 내다본 그 아름다운 전망속 첨탑 반대면이 코앞에 보였다.

역시 Hermandad del Valle 성당이 맞았다.

옥상 난간은 기하학적인 무늬로 장식된게 상당히 이슬람 분위기가 난다.

 

한 삼사십분 그렇게 주변도 둘러보고 이런저런 실없는 수다의 시간을 즐기다가 

다시 정처없이 길을 떠났다.

세비야라는 도시가 딱히 목적없이 골목만 돌아다녀도 느낄수 있는 아름다움이 큰것같다.

다시 헌법의 거리 초입

 

그렇게 걷다보면 지나간 길을 또 지나치기도 하고 새로운 모퉁이를 돌아 감탄하게되고 그러는데

결국 헌법의 거리는 몇 번을 지나게되고

히랄다탑은 언제나 길잡이가 되어주고 그런다 ㅋㅋ

Plaza el Cabildo

그냥 거리...

 

걷다가 끌리는 골목에 들어가면 이런저런 매력 가득한 풍경을 만날 수 있다.

그 아름다움이 어찌나 강렬한지 모든 거리를 다 섭렵하고싶은 욕심마저 들게하긴 한다.

그치만 선택하는 짜릿함과 남겨두고온 구석에 대한 아쉬움이 묘미라는걸 안다면

이런 욕심은 재미의 절반을 죽여버리는 헛된 노력이라는 결론에 가 닿는다.

로마 빌라같은 느낌의 공간

 

한참을(사실 그렇게 한참도 아니다) 쭉 내려갔더니 어느새 다시 알카사르를 지나쳤다.

다시 한 번 그늘에서 쉴 공간을 찾았는데 사실 세비야 대학교였다.

안쪽에 발을 들였더니 가운데 분수가 있는 작은 내부정원이 있는데

로마시대 빌라 건축같은 느낌이 났다. 

따지고 보면 스페인도 로마제국의 중요한 부분이었긴 하지(오히려 독일이 오랑캐야)

 

너무 예쁘길래 본관동으로나 쓰겠지 싶었는데 웬걸

바로 옆이 학생들이 잔뜩 공부하고있는 도서관이었고 곳곳에 강의실도 있었다.

도서관인걸 알고는 원래도 조용히 있긴 했지만 목소리를 더 낮췄다.

더 안쪽에 있는 또 다른 정원

대학교 외관

 

더 남쪽으로...? 

다행이 이제 밥시간이 되어가는 관계로 드디어 정확한 목적지가 생겼다.

여행하는 내내 음식점은 거의 구글맵에서 찾았다.

사실 옛날부터 네이버나 티스토리나 블로그에서 검색해서 가면 분명 맛있긴 한데

그 약간 채워지지 않는 묘한 아쉬움이 항상 남는다.

 

한국인이 너무 많아서 내가 어디에 와있는건지 모르겠다거나,

아니면 대체 포스팅이 얼마나 중요하길래 이런 집도 맛집이라고 올렸는지 원망스럽다거나...

 

그에 비해 구글맵에서는 100개 이상의 평가에 4.2 평점정도만 넘기면 

아주아주 흡족한 식사를 즐길 수 있다.

물론 한국인들 평이 충분하면 우리 입맛까지 검증 가능하고 :D

식당으로 가는길에 지나간 고문서보관소

 

우리가 찍은 점심식당은 대성당 바로 앞 작은 골목에 있다고 했다.

먹고 여유있게 바로 대성당 입장 시간을 맞춰볼 요량이었다.

 

세비야대학에서 대성당에 올라가다 보면 인디아스 고문서보관소도 있는데 

사실 여기가 신대륙 역사의 산실이다보니 좀 들어가보고싶긴 했다.

다음에 세비야 가면 꼭 들어가봐야지!!!

 

 

가게 이름은 Casa Morales(까사 모할레스),

무려 5800개가 넘는 리뷰에도 4.4를 기록중인 믿음직한 타파스바다.

 

어떤 음식을 타파로 시킨다는건 아주 작은 양만을 달라는거다.

그 덕분에 두 명 정도 끼리만 가도 넘치게 다양한 음식을 맛볼 수 있다.

나는 타파스 문화가 너무너무 마음에 들었다.

 

한국이고 독일이고 음식은 쓸데없이 남길정도로 많이 주면서 가격은 비싼집이 너무 많은데

그렇게 남겨먹기보다, 가게는 맛있는 음식을 열심히 만들어 내고 

손님들은 편하게 들어와서 맥주 한 잔과 먹고싶은 모든 요리를 즐기다가

음식이 주는 행복에 흠뻑 젖어 나갈수 있는 이곳의 타파스 문화가 내겐 너무 이상적이었다.

저장용 토기 가득한 인테리어가 인상적인 가게였다

 

타파스바 100배 즐기기를 위해 부족함없이 메뉴를 시켜보기로 했는데

사실 결국 배라는게 어느정도 먹고 나면 차버리긴 한다... 

어제 저녁에 이어서 더 맛보지 못하는게 아쉽다는 감정을 다시 한 번 느껴버리고 말았다.

일단 띤또 데 베라노

 

일단 해가 아직 있을적에는 항상 띤또 데 베라노를 한 잔씩 한다.

Tinto de Verano는 여름(Verano)의 레드(Tinto)와인이라는 뜻인데

바에서 레드와인 + 탄산수 + 레몬즙 + 레드와인을 뚝딱뚝딱 얹어서 내어줬다.

 

이름이 너무 예쁜것같다.

여름의 빨강이라니...

왜 이런 음료마저 낭만적인건데 너희 ㅠㅠ

스페인여행 거의 모든 끼니에 빠따따 브라바스가 함께했다

 

이집 브라바스 소스는 어제적거보다 더 전통적인 맛이었고 페스토 느낌이 강했다.

그래도 공통적으로 맵싹한 베이스가 깔려있었다.

맛있었당...

뿔뽀(문어) 요리

 

브라바스와 함께 문어 요리 하나와 하몽이 올라간 빵을 같이 시켰다.

하몽빵은 이미 베어먹고 나서야 사진 생각이 나서 그냥 남김없이 다 삼켜버림.

 

음... 앵간히 다 맛있는 와중에 

최고를 꼽으라면 의외로 하몽빵이었고 ㅋㅋㅋ

또 굉장히 의외로 뿔뽀가 개중에서는 감동이 덜한 편이었던것같다.

 

역시 문어는 갈리시아 문어!

찐 동네 주민의 바이브란 이런것

 

배를 뚜들기며 나갈 무렵에는 사람들이 몰려오다 못해 바에 서있었다.

맥주 한잔에 다들 타파 한 두 개씩을 즐기는 중이었다.

사실 테이블 자리는 애시당초에 가게 오픈과 함께 꽉 차있긴 했다.

가게가 구글맵에 써진거보다 살짝 늦게 여는 바람에 어쩌다보니 우리가 오픈런 손님이었는데 

오픈런 손님들만으로도 가게 내부 테이블은 이미 다 만석이었다.

 

이제 이날 오후의 유일한 일정 세비야 대성당만 남은지라 여기서 끊고싶지가 않은데

(여행의 일상과 그 안에서의 발걸음과 생각의 움직임을 기록하고싶지 

너무 디테일하게 한 공간을 포스팅하고싶지는 않아서 ㅠㅠ)

아무래도 여기서 더 가면 쓰는 나나 읽는 사람이나 가독성이 떨어질것같다...

 

밥도 먹었겠다 여기서 쉬어가는것도 나쁘지 않겠다!

 

모쪼록 말이다. 

천국에 살고싶지는 않다.

독일이라는 이 땅이 완벽하지는 않아도 내게 주는 소중한 것들이 참 많다.

(형편없는 음식과 지랄맞은 겨울날씨, 그리고 느려터진 행정이라던지 ㅋㅋㅋ 으악!)

 

이러나저러나 천국은 이 삶이 끝날때 가는 곳이잖아 :D

삶이 이렇게나 재밌는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