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세비야-그라나다 샌딩투어 ①] 낭만 넘치는 다리의 도시, 론다

 

사실 투어라는 형태의 상품을 조금 꺼리는 편이다.

일단 여행지에 가서까지 처음보는 사람들과 사교활동을 어느정도는 해야하는 부담도 있고

동선과 일정에 대한 부자유가 답답하기도 하거니와

만에하나 여행지가 실망스러울 경우를 상상해보면,

돈내고 실망하느니 혼자가서 나 자신에게 실망하는편이 더 마음이 편하다는 회피적 이유도 있다.

 

그러고보면 회피 성향의 사람이 맞긴 한것같다 ㅋㅋㅋ

 

그럼에도 어떨때는 투어가 마음이 편할 때도 있는데, 

그 나라 말을 잘 모르는데 영어도 잘 안통한다던가...  혹은 이래저래 다 귀찮을때!

 

스페인 여행을 계획하던 무렵 집구하기와 비자에 대한 압박으로 인해

마음의 여유가 썩 충분치 않았는데 그때 동행분의 이 샌딩투어 제안은 아주 달콤하게 다가왔다.

 

처음에는 샌딩투어가 뭔가 싶었다 ㅋㅋㅋ

모래사막이라도 걷는건가?

스페인도 아프리카처럼 사막이 있었나? 아니면 태안 신두리처럼 모래사구라도 있는감...

알고보니 샌딩투어는 A지점에서 B지점으로 보내주는(sending) 투어였다.

 

그러고보면 여행 관광업계에는 영어로된 용어가 많은것같다.

'투어', '패키지', '가이드', '뷰포인트' 등... (사실 더 생각은 안난다)

여행이라는게 일상을 떠나 다른 곳을 누비는거라 그런지 

용어부터가 훌쩍 한국을 벗어나있는 느낌이다 ㅋㅋㅋ

 

모쪼록 세비야 그라나다 샌딩투어는 말그대로 세비야에서 그라나다로 옮겨다주는 투어인데

이 투어의 차별화 지점은 '도시간 이동' 과 '작은 마을 관광' 기회를 결합한데 있다.

아무래도 짐을 밴에 실어서 도시간 이동을 해버리면 편한데

그와 동시에 기차나 버스로는 가기 성가신 곳들도 묶어서 둘러보고 가니 특장점이 있는거다.

 

투어상품 마다 들르는 마을들은 약간 차이가 있는데,

가장 흔하게는 '론다', '프리힐리아나' 그리고 '네르하' 라는 마을들을 거쳐 그라나다로 간다.

 

물론 그라나다에서 출발하는 역방향 투어도 있다.

가격이 싸지는 않은 점은 참고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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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팅포인트(영어군)로 가는 길에 마지막 인사

 

투어 시작이 그렇게 이르지 않은 덕분에 마지막 날까지 민박집에서 아침을 잘 먹고 출발했다.

민박집 사장님과 덕담을 주고받고 배낭을 들춰매고 골목길로 나서는데

가슴 한켠에 벌써 자리잡으려하는 그리움... 세비야에서 좋은 기억이 너무 많았다.

히랄다탑과 마지막으로 작별인사를 하면서 미팅포인트로 움직였다.

 

미팅포인트는 알카사르 뒷편의 무리요 정원, 콜럼버스 테마로 꾸며진 곳이다.

 

생각보다 젊던 가이드님과(동생으로 추정) 어색하게 인사를 하고선 밴에 자리를 잡았다.

스페인 아저씨가 운전하는 밴은 먼저 '론다' 라는 곳으로 향한다.

가는 길은 생각보다 황량했다.

세비야 공항에 착륙하면서 하늘에서 본 풍경이 잘못본거는 아니었나보다.

이런 황량하고 큼직한 풍경 사이에 색채감 진하고 매력적인 도시를 세워놨다니... 

 

(기절)

 

론다의 골목길

 

밴이 버스정류장같은 곳에 멈춰섰다.

우리가 탄 밴 말고도 수없이 많은 관광버스들이 버스정류장에 들락거렸는데,

관광업이 주 수입원인 스페인에는 관광과 관련된 이런저런 규제들이 있는것 같았다.

 

론다는 아주 오래된 도시라고 했다. 

로마인들이 몰려오기 전 켈트족이 이베리아반도에 살고있을 무렵부터 있던 곳이란다.

(최대 기원전 6세기를 의미한다...)

물론 지금 남아있는 건물들은 그리 오래된것들은 아니다.

아랍인들이 세운 목욕탕 유적이 '발굴' 작업을 통해 발견되었는데 그게 13세기 건물이다.

 

최고의 하이라이트는 '누에보 다리(Puente Nuevo)' 인데 우리는 거기로 걸어가고있다.

 

그나저나 세비야에서도 그랬는데 여기 론다에서도 건물들이 서로 빈틈없이 붙어있었다.

가이드님의 설명에 따르면 스페인식 내진설계라고 했다.

이 지역에 대지진이 왔었을때 건물들이 맥을 못쑤고 다 스러져버려서 

그 뒤로 건물을 이어붙이기 시작했다고 한다(그럼 양 끝은 내진설계가 없나요 ㅠㅠ).

 

그나저나 세비야에 페스트가 몇 번 휩쓸고 갔다는데

이런 '스페인식 내진설계'에 더해 더위를 피하려고 좁게 마주보게 만든 골목 때문에 피해가 컸을거다.

생각보다 단체여행객들이 많았다

 

다리까지 가는 길에는 사실 그렇게까지 특별한 풍경은 보이지 않는다.

그럴만도 한게 투어를 통해서 론다에 처음 발을 내딛게 되는 버스정류장은 신시가지쪽이다.

투어로는 누에보 다리까지 갔다가 잠깐의 자유시간(밥먹으면 끝날 정도)을 갖고 다시 출발하는데,

진짜 론다의 보물들은 누에보 다리부터 시작되는 구시가지 안에 있다.

그러다보니 랜드마크를 보긴 봤지만 뭔가 론다를 즐겼다는 생각은 좀처럼 들지 않는다.

 

다시 안달루시아에 간다면 반드시 론다에서 최소 1박을 할거다 ㅠㅠ

누에보 다리를 끼고 델타호 전망대까지 이런저런 산책도 좀 해보고

모로왕의 집, 비에호 다리 이런 멋진 유적지들도 둘러보고싶다... 

그래도 결국 론다라는 도시가 멋진 곳이라는걸 내 눈으로 확인하고 느낀 덕분에 

다시 가고싶다는 결심도 했으니 투어라는것도 그런 면에서는 의미가 있는 셈이다.

저 멀리 안달루시아의 황량한 산들이 보인다

 

가이드님이 가장 먼저 우리를 몰고간 곳은 누에보다리의 동쪽면이 보이는 전망대였다.

Mirador de Cuenca, 엘 타호 협곡 건너로 구시가지가 바라보이는 멋진 곳이다.

경사진 비탈길을 따라 전망대로 내려가는 동안 저 멀리 안달루시아의 언덕들도 내다보였다.

론다 누에보 다리

 

론다의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를 이어주는 누에보 다리는

짤막하긴 하지만 깊은 협곡위에 건설된 아주 높다란 건축물이다.

과달레빈 강이 조금 돌아가는 대신 기어이 암석 위로로 흐르기로 결심하면서

결국 긴 세월동안 엘 타호(El Tajo) 협곡을 깎아버렸는데

그 강 만큼이나 고집스러운 인간들은 기어이 이 고지대 양쪽에 다 살아야만 했나보다.

그러니 다리가 필요했지... 뭐 그런게 또 인류의 낭만적인 면인것도 같다.

 

그 고집스러움 말이다.

 

누에보 다리는 저 자리에 세워진 첫 다리는 아니다.

1735년에 스페인 국왕 펠리페 5세의 지시로 아치형 목조다리가 놓였다고 하는데,

일 년도 안되는 시간만에 만들어지긴 했으나 부실공사였는지

수많은 사망자를 내면서 협곡 아래로 흐물어져내리고 만다.

 

그나저나 펠리페 5세는 어머니가 바이에른 비텔스바흐 가문 사람인데(멘탈이 약한 유전병이 있다),

펠리페5세의 좀 사연있는 즉위로 스페인 합스부르크 왕조가 이상하게 끝나면서

스페인왕위계승전쟁이라는 재미난 전쟁이 벌어지게 되는 재미있는 인물이다.

여기 론다에서 그의 자취를 만나니 또 반갑기도 하다.

뒤로 보이는건 국영호텔 브랜드 '파라도르'

 

론다 사람들은 스페인 왕정이 만든 다리로 인해 사상자가 난 데에 대해 적절한 보상을 요구했다.

그리고 중앙정부는 1751년 드디어 지금의 새로운(nuevo) 다리를 착공해준다.

돌로 바닥부터 한땀한땀 신중하게 잘 쌓아나가는데, 이번에는 또 너무 신중한지 42년이 걸렸다.

공들여 만든만큼 걸작이긴 걸작이다.

특히, 스페인 건축이 으레 그렇듯 인근에서 채취한 재료만 써서만든 덕분에 색 조화가 너무 좋다.

 

다리 가운데 부분에는 비밀(?) 공간도 있다고 한다.

상당기간동안 감옥으로 쓰였다고 하는데,

뷰는 조금 좋았을지언정 살아서 나오는 경우는 없었다는것같다.

협곡에 걸친 레스토랑

 

다리 말고 다른쪽으로 시선을 좀 돌려보면 군데군데 레스토랑들이 조금 보인다.

다만, 론다라는 지역 자체가 워낙 깎아지른 절벽위에 세워진 도시다 보니 

나같이 난간 근처에서 상당한 공포감을 느끼는 사람들에겐 썩 밥먹고싶은 곳은 아닐것같다.

전망대 모습(한국인으로 추정되는 분들 얼굴은 가려드렸다)

 

전망대는 이런 모습인데, 명당은 명당이다.

그래도 공간도 제법 넓고 사람들의 관심을 많이 받지는 못하지만 한쪽으로 예쁜 정원도 있다.

남쪽으로 안달루시아의 언덕들이 펼쳐져있다

 

투어 동행자 분들은 열심히 누에보 다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있을때

내 사진을 남기는데 큰 관심이 없던 나는 살짝 정원쪽으로 가서 탁 트인 전망을 즐겼다.

남쪽으로는 안달루시아의 황량하고 드넓은 구릉지대가 펼쳐져있었다.

이런 큰 규모의 풍경에서는 장엄함이 묻어나는 법이다.

 

그나저나 위 사진에는 상당히 업무강도가 부러운 스페인 현지 가이드가 한 명 껴있다.

스페인(?) 안달루시아(?) 법률상 모든 그룹투어에는 스페인 현지 가이드가 동행해야한다는데

그래서 론다에 도착한 순간부터 그 양반이 몇 발짝 떨어져서 우리 주변을 맴돌았다.

이렇게 안하면 가끔 경쟁사로부터 친히 신고당해서 불시검문당한다고... ㅎㅎ

론다 투우장 앞

 

전망대를 뒤로하고 다시 골목길들을 지나 약간 누에보 다리 가까이로 갔다.

우리 그룹이 다시 멈춰선 곳은 론다 투우장 앞, 스페인 투우문화의 발상지이다.

하얀 외벽이 둘러쳐진 원조 투우장은 세비야에서 지나가면서 본것보다 규모가 작다고 느껴졌는데,

오히려 여기 투우장이 더 고급진 곳이라고 한다.

 

가이드씨 말에 따르면 람보르기니 사장이 여기 론다 투우장을 사랑한다고 했다.

그러니깐 람보르기니 사장님 정도 되는 사람들이 드나드는 귀족 투우장 느낌인거다.

차에 크게 관심이 없어서 몰랐는데 람보르기니 수퍼카 이름들이 거의 투우에서 왔단다.

투우장이 그리 크지는 않다, 소는 나에겐 그저 식사의 대상일 뿐

 

투우장 뒤로는 론다의 서쪽 구릉지대가 내다보이는 또 하나의 전망대 공원이 있다.

론다 자체가 암석지대 꼭대기에 세워져있다 보니 곳곳에 이런 전망대가 많은 느낌이다.

그나저나 여기는 사실 파라도르의 뒷마당을 겸하고있기도 하다.

휴먼스케일을 뛰어넘는 자연

구시가지가 위치한 돌덩이 지대, 아래쪽으로 버려진 옛 건물들도 보인다

 

공원 한쪽에는 어니스트 헤밍웨이 흉상이 하나 서있었다.

론다, 헤밍웨이가 사랑한 도시였다(사랑할만 한듯).

헤밍웨이는 여기에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를 집필했다고 한다.

스페인 내전기를 배경으로 하는 장편소설이다.

Ronda a Ernest Hemingway

 

우리도 여기에서 자유시간을 한 시간 가량을 받았다.

가이드님이 협곡 밑에 예쁜 전망대가 있는데 식욕이 없는 사람만 갈 수 있다고 조언해줬다.

(아이유가 가서 온 세상 사람들에게 유명해졌다고 한다 ㅋㅋㅋ)

 

음... 헤밍웨이도 소설쓰는 중간중간 밥은 먹으면서 했겠지?

우리에게는 관광 만큼이나 식사가 중요했다.

뭐를 먹을까에 관해서 밴에서부터 이미 토론을 좀 했었는데,

여기는 소꼬리찜이 유명하다 하니(투우의 산물이다..) 한국인이 많이 찾을지언정 

소꼬리찜이 유명한 식당을 한 번 가보기로 이미 합의를 봐두었다.

 

오죽 한국사람이 많이 가면 들어가자마자 종업원이 한국인인걸 알아보고는 한국어 메뉴를 줄 정도.

하나 좋은건 한국인에게 단련되었는지 주문받는 속도나 서빙 속도가 생각보다 빠르다 ㅋㅋㅋ

소꼬리찜 요리

 

오... 근데 한국인이 좀 찾아올만 한것같다 ㅋㅋㅋ

그리운 나의 조국에서 먹던 소갈비찜이랑 맛의 방향성이 상당히 유사해서 거부감이 전혀 없다.

획기적인 맛있음은 아니었지만 한식당에 온 기분으로 흡족하게 먹어치웠다 :D

(그런 면에서 어찌보면 그렇게 꼭 먹어봐야 하는 메뉴까지는 아닌것도 같다)

빠따따 브라바스 사랑은 이어진다

 

우리는 들르는 모든 식당에서 빠따따 브라바스를 한 번 먹어보자고 이미 목표를 세워뒀기때문에

여기에서도 브라바스 감자요리를 하나 주문해야만 했다.

이런 컨셉있는 도전과제 너무 내스타일이긴 해. 동행분이 참 좋았다.

띤또 데 베라노도 빠질 수 없다

 

틴토 데 베라노도 빠질 수 없지.

어차피 론다를 떠나는 순간 또 차타고 이동할거기 때문에 낮술에 거부감이 조금도 없다.

식후에는 배를 좀 두드려주면서 걸어줄 필요가 있지

 

종업원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도와줬음에도 생각보다 우리의 식사가 오래걸렸다.

아무래도 밥먹는 속도가 스페인에 조금 맞춰지긴 했나보다(바람직했지).

다시 집합해야 하는 시간까지 딱 10분밖에 남지 않았지만 

배를 꺼트려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우면서 부랴부랴 다리를 한 번만 건너보기로 했다.

 

확실히 그 어떤 골목길보다도 다리 위에 사람들이 많았다.

이 다리 안쪽으로 그 낭만이 넘친다는 론다 구시가지가 웅크리고 있는거다!

다들 그곳으로 들어가고, 그곳에서 나온다고 생각하니 부러운 마음이 찾아왔다.

멀리서 골목이 굽어가는 모습만 봐도 아쉬움이 남았다.

 

다음에는 꼭 하룻밤은 머물다가 떠나야지 정말!!!

처음 왔던 전망대가 보인다

 

다리 위에서 아까와 반대로 전망대 쪽을 바라다보았다.

멋들어진 다리는 없지만 저멀리 제법 높이 솟은 언덕배기와 코앞의 협곡이 함께 보이니 은근 멋지다.

결국은 비슷한 뷰

 

결국 전망대쪽과 비슷하긴 한데 가까이에서 관찰하는 재미가 있긴 하다.

이렇게 가까이서 바라보니 다리가 더 크고 높다랗게 느껴진다.

협곡 아래, 때마침 새들이 날아오르고 있었는데 사실 좀 먼지같이 보인다

 

눈을 질끈 감고 다리 난간에 붙어서니 협곡 아래가 적나라하게 내려다보였다.

높긴 높고 멋진건 멋진거지만 역시 싫은건 싫은것 ㅋㅋㅋㅋ

다음에 다시 이곳을 찾는다면 차라리 저 아래로 내려가서 

땅에 두 다리를 굳건하게 붙이고 이곳을 올려다보리라 ... ㅎㅎ

다리 앞 로터리

 

그래도 다리를 한 번 건너는 보겠다는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다.

말 잘듣는 사람들이라 둘 다 그래도 집합시간에 늦지는 않게 딱 맞춰 모였다.

의외로 다른 사람들도 시간을 잘 맞춰서 왔다... 한국인들 대단해

내진설계 탄탄한 론다의 골목을 끝으로...

 

아름다운 마을을 알게되었다는 기분좋은 감정과

그 보석함에서 가장 화려한 녀석에 시선이 쏠린 나머지 수수한 아름다움들은 놓쳐버리고 말았다는

아쉬움을 함께 들고 다시 밴에 올라탔다.

 

어쩌면 이렇게 독일의 겨울날씨에서 다시 도피할 명분을 쌓고있는걸지도 ㅎㅎ

 

이러나 저러나,

너무나 당연하게도 밴에서는 기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