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그라나다 ③] 알함브라가 한 눈에 보이는 두 명당(Adios 그라나다)

다시 돌아온 알카사바앞 공터

 

나스리에서 나온 우리는 다시 알카사바 앞 공터로 돌아왔다.

다음 행선지가 정반대편인 헤네랄리페(Generalife)였음에도 그래야만 했던건 바로...

배가 너무 고프기 때문이었다.

 

알함브라를 통틀어 먹거리를 판매하는 곳이 내가 보기엔 세 곳이 있는데

두 곳은 궁전 부지안에 있는 '호텔 아메리카' 와 국영 '파라도르 호텔' 이고 

나머지 한 곳이 바로 여기 알히베스 광장(Aljibes)에 있다.

(호텔이라는 데가 자체 레스토랑을 구비했다는걸 의미하니까 당연히 팔겠지...?)

 

아주 심플하게 자기가 자리잡은 광장 이름을 그대로 따다 쓴 이 가판대 이름은

Los Aljibes Bar(알히베스 바).

사실상 이 넓은 알함브라 전체를 독점중인 유일한 간이식당이다.

 

한국에서 이런 랜드마크급 관광지에 가판대가 있다고 하면

지독하게 비싸거나 최소한 맛이라도 형편없기 마련이거늘

여기는 심지어 경쟁사도 하나 없으면서 아주아주 훌륭한 커피를 제공한다.

카페 콘 레체 x 2, 보까디요 x 2

 

아니 어떻게 그래...?

왜 이런 가판대에서 파는 먹거리가 이렇게 훌륭한건데?...

 

나랑 내 동행은 아직까지도 가끔씩 연락을 주고받는데

이야기가 알함브라로 흐른다 싶으면 절대 빠지지 않는 소재가 이곳 바에서의 점심이다.

둘 다 이곳에서 마신 카페콘레체가 이번 여행에서 맛본 최고의 커피임에 동의한다.

심지어 고작 빵 사이에 하몽, 치즈정도 들어간 저 보카디요는 왜이렇게 맛있는지...

 

나스리 궁전을 둘러보느라 피로가 쌓이고 배도 너무 고팠던걸까?

이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다음번에 그라나다를 가면 배를 단디 채우고 다시 저 바에 가볼 생각이다.

 

의외로 구글 리뷰가 별로 없는데,

공터 너머로 내다보이는 알바이신 전망과 사방에 펼쳐진 알함브라로 뷰맛집이기도 하니만큼

알함브라를 여행하는 허기진 사람들에게 꼭 저기에서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기라고 권하고싶다.

---

Iglesia de Santa Maria de la Encarnacion

 

황홀한 점심식사를 마치고 아주 흡족한 기분으로 다시 헤네랄리페로 출발했다.

마치 이 막간의 시간이 마법같은 시간여행이라도 된것처럼 느껴지도록

나스리궁전 출구로 구태여 다시 움직여서 재시작한다 :D

(게임하다가 저장해두고는 잠깐 점심을 즐기고와서 다시 불러오기한 기분에 가깝다 사실)

 

다시 돌아간 지점에서는 레콩키스타를 마친 카톨릭군의 낙인, 산타마리아 성당이 보인다.

모스크를 헐어낸 자리에 올린 이 성당은 승리자가 행사할 수 있는 너무 당연한 권리의 산물이긴 하지만

솔직히 없었으면 더 좋았을것같은게

바로 옆에 붙어있는 카를로스 5세 궁전과 함께 이곳 알람브라의 통일성을 약간 해친다.

 

기분좋게 배부른 상태에서 봤는데도 그랬다.

국영호텔 파라도르(Parador de Granada)

 

그런 유의 생각을 하면서 찬찬히 걸어갔다.

오른편으로는 스페인 곳곳에 있는 국영호텔 브랜드 '파라도르(Parador)'가 서있다.

말그대로 알함브라 궁전 안에서 하루 묵어갈 수 있게 해주는 낭만적인 호텔이긴 한데

저기에서 하룻밤을 자고 간다고 해서 나스리 궁전 입장권을 준다거나 그런건 없다고 한다.

그정도는 해줄 수 있지 않나 ㅋㅋㅋ

고영희 선생님 편해보이신다

 

헤네랄리페로 가는 길에는 제법 길게 정원이 늘어서있는데

화단 곳곳에 보들보들해보이는 솜뭉치들이 널부러져 햇볕을 쬐고 있다.

역시 안달루시아는 고양이를 좋아해... 아니면 고양이가 안달루스를 좋아하나?

맞은편으로 보이는 헤네랄리페

 

건너편 언덕배기에 바로 그 헤네랄리페 정원이 보인다.

나스르 왕조의 여름별궁인 헤네랄리페는 사실 거주공간보다도 조경으로 유명한데

언덕 높은곳에서 샘솟는 물과 수많은 아름다운 식물들이 가득한 정원이 마치 낙원과도 같은 곳이다.

이쪽 길에서는 이 낙원이 신의 손이 아니라 사람 손끝에서 나왔다는게 보이는데

언덕 비탈면을 가득 채운 석축 시공이 그 증거다  :D

 

따사로운 햇살을 즐기며 조금 걷다보니

헤네랄리페와 알함브라를 가르는 협곡에 놓여있는 다리를 지나 여름별궁의 영역에 들어왔다.

드디어 이번 포스팅 제목에 좀 부합하는 내용이 나올 차례다!

 

여기 헤네랄리페쪽에서는 알함브라의 동북쪽 얼굴을 한 눈에 볼수있다.

여름별궁에 들어가기 전부터 슬슬 불그스름한 성벽의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하는데

화단이 시야에서 걷히고 알함브라가 완전하게 건너다보이기 시작하면

나스르 술탄에 감정이입을 해보고싶어진다.

 

저게 내 궁전이었으면 얼마나 흐뭇할까...

처음에는 화단에 가려서 망루들만 보이다가

점점 이렇게 또렷하게 모든 지붕들이 시야에 들어온다

 

전망에 감탄하느라 그다지 강렬하게 눈에 들어오지는 않는다마는

사실 헤네랄리페 궁전 입구까지 가는 길 오른편에 펼쳐져있는 정원도 상당히 잘 가꿔져있다.

지중해쪽의 따뜻한 기후의 정원에서 자라나는 식물들은 우리 정원의 그것들과는 사뭇 다르다.

어쩌다보니 너무 주인공처럼 나오신 두 분은 모자이크 처리해드립니다...

 

궁전 입구 제법 앞으로 입장 줄이 늘어서있었다.

오... 병목이라니, 알함브라가 정말 유명한 관광지긴 하구나...

나스르 궁전이 예약제가 아니었으면 거기도 한 혼잡 했겠다는 생각에 닿았다.

입장 대기열이 좀 있었는데, 국적을 막론하고 단체관광객이 상당히 많다

 

대기줄에 서있으면서 주변을 둘러보니 국적을 막론하고 단체관광객이 상당히 많았다.

물론 유럽의 원조 여행광 독일인들의 언어도 귀에 상당히 자주 들려왔다 :D

정말이지 독일인들은 우리만큼이나 여행을 사랑하는데,

특히, 알프스 남쪽 지중해처럼 날씨가 온화한 곳이라면 도저히 참을 수가 없나보다 ㅎㅎ

정원 한가운데로는 수반이 있는데, 사실 수반이라기보다는 수로에 가깝다

 

그래도 그렇게 오래까지는 기다리지 않고 입구에 들었다.

언덕배기에 난 궁전답게 가장 주인공이 되는 정원은 한 단 위에 있었고 바로 계단을 올라야했다.

여기 이 아름다운 이슬람 정원 가운데에는 나스르의 아라야네스 안뜰처럼 가운데에 물이 있다.

작은 수반인가 싶었는데 사실 여기는 수로에 가깝다고 한다.

 

시에라네바다의 한 지맥인 여기 헤네랄리페 언덕 위에서 샘이 솟아나는데

여기서 샘솟는 물을 이런 수로를 따라 알함브라를 거쳐 알카사바까지 흘려보내면서

그 사이에 있는 모든 건물과 정원들에 물을 공급해주는 역할을 한다는거다.

 

기능적인 수로마저도 이렇게 아름답게 사용할 수 있다는게 놀랍다...

햇빛을 머금은 물과, 나무의 녹색 그리고 그렇게까지 잘 정돈되지는 않은 꽃들의 색이 잘 어울렸다.

또 한 단 위에는 다른 정원이 있다

 

그로부터 또 살짝 한 단 위로 또 하나의 정원이 있는데 여기는 아랍풍이 다소 약하긴 하다.

그래도 이 파티오의 매력이 또 상당해서 마지막 계단을 올라가면서 많이 뒤돌아봤던 기억이 난다.

이 마지막 정원을 끝으로 헤네랄리페에서 나갈 수도 있는데

그전에 저 끝에 나있는 계단을 한 번 올라보는게 좋다 :D

Escalera del Agua

 

헤네랄리페에서 계단을 오른다는건 샘솟는 물과 점점 가까워진다는걸 의미한다.

수원지가 언덕 높은곳에 있기 때문이란다.

이 평범해보이는 계단에는 조금 특별한 점이 있는데,

계단 난간에 사실 홈이 파져있어서 거기를 따라서 물이 끊임없이 타고내려가고있다!

 

정말 알함브라에 들어와서 몇 번이나 인간의 상상력에 감탄하게되는지 모르겠다.

더 높은곳에서 보이는 알함브라의 풍경들

 

구태여 그 계단뿐만이 아니더라도 공들여 위로 올라갈 가치는 충분한데

올라감으로써 더 탁 트인, 그리고 이번에는 헤네랄리페의 지붕도 함께하는 그런 전망이 있기 때문이다.

곳곳에 뾰죽 솟아있는 바늘(?) 같이 생긴 나무들이 마음에 들었다마는

식물은 내 전공이 아닌지라 저게 무슨 나무인지는 알 길이 없다.

헤네랄리페를 나오는 길

 

그리고 헤네랄리페를 나오는 길에는 그 바늘들이 줄지어 서있었다 :D

빼곡한 나무들을 뚫고 내려쬐는 한낮의 태양도 사실 대단도 하다.

메디나에는 한때는 건물을 받치고 있었을 토대들이 남아있다

 

다시 협곡에 난 다리를 건너 다시 나스르 궁전쪽으로 향했다.

이번에는 북쪽의 정원을 따라가지 않고 남쪽 성벽을 따라 난 큰길을 따라 걸었다.

양옆 메디나 구역에는 한때는 건물을 떠받치고 있었을 토대들이 남아있다.

언젠가는 이 녀석들도 다시 옛 모습을 찾게 해주려나...?

알함브라 부지안의 호텔, 호텔 아메리카

 

길끝 눈앞에 시선이 닿는 곳에는 알함브라 부지 안의 호텔 1호, 호텔 아메리카가 있었다.

1성급의 단촐한 이 아메리카 호텔을 보고 사람들이 미국을 연상시키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아메리카 대륙에는 미국 말고도 수많은 나라들이 있다 :D

특히, 에스파냐 땅에서 불리우는 아메리카는 중미와 남미에 더 가까운걸 ㅋㅋㅋ

(뮌헨 어학당 선생님도 옛날에 미국을 아메리카라고 지칭하는 학생한테 일침을 날리셨지)

그리고 국영호텔 파라도르

 

그리고 그 맞은편, 걸어오던 길 담장 너머로는 파라도르 호텔이 있다.

파라도르는 20세기 초반 관광업을 본격적으로 국가산업으로 키우려던 스페인 정부가

이베리아반도 전역의 성채, 고성같은 유적지의 일부를 호텔로 개조해서 만든 국영호텔이다.

 

여기 그라나다의 파라도르도 역시 제법 오랜 역사를 가진 건물이기도 하고

또 상당히 의미있는 공간이기도 했다.

건물 앞뜰의 타일을 쭉 따라 끝까지 들어가면 이사벨라 여왕의 임시 묘소도 있다.

잘은 모르지만, 가톨릭 군주 이사벨 여왕 여기 잠들다 정도 아닐까...

 

이사벨 여왕은 공동왕이자 남편인 페르난도 2세보다 12년 먼저 세상을 떠났다.

남편 페르난도는 그 묘한 부부관계 안에서도 이사벨을 사랑하고 존경하는 마음이 컸는지

사후 그라나다 대성당 지척에 왕실예배당 건립을 시작한다.

 

다만, 페르난도씨도 그 예배당 완공을 보기 전인 1516년에 사망하는고로

두 부부의 관은 모두 임시묘소에 안치되어있었는데,

그 임시묘소가 지금의 파라도르호텔인 당시의 프란체스코 수도원이었다 :D

 

이런 유적지를 호텔로 개조할 생각을 하는 스페인,

그리고 그 후로도 유적지 관리에 소홀함이 없는 스페인.

그 두 모습 모두에 혀를 내두르면서 알함브라를 빠져나왔다.

---

그라나다 골목길

숙소가 있던 지역 San Pedro

 

그라나다는 참 생명력이 가득한 지역이다.

여기 도시까지 오는 내내 황량한 풍경을 너무 많이봐서 그런지

숙소 앞을 흐르는 다로 개울을 가득 매우고 자라나는 저 초록색에서 강한 생명력을 느꼈다.

자연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생기도 상당한 곳인데, 그라나다 역시 대학이 있어서 젊은 도시라고 한다.

 

숙소에 들어간 우리는 낮잠을 잤다.

여행중에 달여내는 시에스타에 누군가는 시간이 아깝다고 뭐라 할수도 있겠지마는

그건 사실 한두시간의 낮잠 이후에 다시 바깥으로 나왔을때 

세상이 나를 향해 온통 웃음짓고있는것 같은 그 황홀경을 느껴보지 못한 사람들의 힐난이다. 

 

꿀같은 낮잠 이후에는 숙소로 들어오는길 근처 아시아마트에서 사둔 라면 세 봉지를 힘차게 뜯어서

파글파글 끓여먹은 후에 본격적으로 다시 알함브라를 바라보러 출발했다.

 

알바이신에 있는 성 니콜라스 성당 앞 전망대는 알함브라가 말 그대로 한 눈에 들어오는 명당이다.

아마 한쪽 눈을 감아도 정말 다 들여다보일거다.

심지어 알함브라 뒤로는 남쪽 멀리 솟아있는 시에라네바다도 항상 함께다.

 

나와 동행분은 일몰시간까지 한 45분정도가 남았을 무렵 여기에 도착했는데

다들 석양 아래 붉게 타오르는 알함브라를 보러 나온건지 사람이 이미 빠글빠글했다.

그래도 운좋게도 우리가 서있던 바로 앞 난간에 걸터앉아있던 커플이 퇴근해준 덕분에

우리는 난간에 철푸덕 편하게 걸터앉아 하염없이 알함브라를 바라볼 수 있었다.

붉은 노을빛을 받아서 알함브라가 더 함브라해졌다

 

이십여분이 흐르자 서쪽 하늘이 점차 붉은 빛으로 타오르기 시작했는데

그 노을 아래서 알함브라가 더 함브라(아랍어, 붉은) 해졌다.

그리고 시에라네바다도 함께 붉게 물들었다.

평화와는 거리가 좀 있긴 하다

 

이렇게 쓰고 나면 마치 한없는 평화속에 있었을것같지만 현실은 꼭 그렇지만은 않은데

물론 눈에 들어오는 풍경은 더없이 황홀하고 고요하지만

주변에는 온통 이 모습을 눈과 카메라에 담으려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제일 앞열에 앉아있을 수 있었던건 정말 크나큰 행운이다...

해는 완전히 산을 넘었다

 

공식적인 일몰시간이 지나자 알함브라 궁전에 조명도 들어왔다.

그렇게 시작된 야경도 예쁘긴 했는데

역시 자연이 선물한 붉은 빛 만큼 아름답지는 않았던것같다.

 

해질무렵 알바이신을 오르려는 독자가 있다면 우리처럼 조금 먼저 올라가서 

시시각각 새로운 색을 입는 알람브라를 여유롭게 감상하길...

그라나다의 맥주는 이름도 알함브라

 

시원한 밤공기를 짧게 산책하고선 오래지않아 숙소에 들어왔다.

다음날 새벽 일찌감치 말라가로 떠나는 기차를 예매해뒀기 떄문이다(새벽기차가 저렴했다).

타파스 바를 한 번 더 누비고도 싶었지만 아쉬운대로 자체적으로 맥주를 한 잔 했다.

 

이 알함브라는 여기 그라나다 만큼이나 생기있는 녹색을 하고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