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듣다] Wiener Philharmoniker & Blomstedt

교환학생 시절, 그러니까 제법 오래 전에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블롬슈테트씨 공연을 본 적이 있다.

정확한 곡도 이제 기억나지 않을만큼 시간이 흘렀지만

그네들의 음악세계에 크게 감동받았던 느낌만큼은 선명하다.

 

다른건 차치하고서라도 정말 아름다운 공연이었으니깐...

 

당시 내게 그 공연이 의미있었던 또 하나의 이유가 있는데,

블룸슈테트 할아버지께서 워낙 고령이신 탓에

언제 돌아가셔도 이상할게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10년을 살짝 못채운 시간이 흘렀지만

(심지어 코로나 시절도 함께 흘러갔다)

나는 이 아흔 일곱살의 거장이 수천 관객 앞에서

소리를 펼쳐내보이는 모습을 다시 한 번 볼 수 있었다.

앉은채로 성악가들과 기쁨을 나누는 블롬슈테트

 

작년 겨울에 낙상을 입었다고 들었는데,

거동이 불편해 수석바이올린 부축을 받아 움직이고

앉아서 지휘할 수 밖에 없으면서도

여전히 음악세계는 날렵하고 장엄했다.

 

잘츠부르크 축제 사이트에서 블롬슈테트씨 지휘 일정을 보고

프로그램을 확인한 순간부터 이미 감동이 시작되었었는데,

 

브람스 운명의노래로 시작해서 

멘델스존 찬미의노래로 끝맺다니

 

이 분은 아직도 신과 이 세상에 무한한 감사를 전할 

내면의 에너지로 가득하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 내가 많이 즐겨듣는 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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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비가 제법 오더니 다행이도 그쳤다

 

잘츠부르크에 올때마다 아쉬운 마음만 가득 품은채로

부러움에 사무친 눈길만 흘기던 이 축제극장 앞 거리를 

드디어 그냥 지나가지 않게 되었다.

 

잘츠부르크 음악축제의 시작부터 빈 필하모닉오케스트라-블롬슈테트 공연이라니

정말이지, 영광이라고 하면 적절할지 모르겠다.

티켓조차 마음에드는 이곳은 잘츠부르크다

 

새벽같이 일어나서 출발한 덕분에 아홉시 반에 축제극장에 도착해서

(일곱 시 기차를 타야 이렇게 도착한다)

앞으로 예매해둔 티켓도 한 번에 수령했다. 

 

원래 오늘 공연 표는 미리 수령하지 못할것같아서 E-티켓으로 선택했는데,

(홈페이지에는 최소한 두 시간 반 전에 와야 실물티켓 수령이 가능하다고 써있다)

티켓카운터에 갔더니 당일 E티켓도 실물로 출력해줬다.

어찌나 감사하던지... 

 

나는 뭔가를 전산화해서 관리하는데 재주도 없을뿐더러

더 큰 문제는 전혀 정감이 가지 않는다.

나중에 진짜 이 블로그도 내가 제대로 추억하려면

출력본을 만들어야 할 수도 있겠다...

 

앞으로 한 달간 정말 많이도 보게 될 장소

 

로비는 생각보다 평범하다.

비교적 새 건물이라 그런지 여기까지는 그렇게 큰 감동은 없었는데,

콘서트홀 안에 들어가자마자 '와 여기 괜찮다' 생각이 들었다.

 

너무 마음에드는 공연장, 벌써 소리가 기대된다

 

일단 시야가 확 트여있는데다가

2층까지밖에 없어서 어느 자리에서나 소리가 비교적 균일하게 들리는 편일거다.

또 하나 마음에 드는 포인트는 등받이가 높다.

(앉은키가 큰 나라서 등받이 높은 의자를 선호함 ㅠㅠ)

 

이날 공연은 프로그램북을 샀다. 매일 사지는 않는다

 

 

내 자리는 맨 뒤다.

15유로짜리 티켓을 들고 그 이상을 바랄 수도 없다.

이 티켓 한 장을 구하기 위해서 내가 잘츠부르크 축제 홈페이지를

몇 번을 새로고침했는지는 내 노트북만이 알거다...

(정말 물어보고싶다)

 

사실 맨 뒤가 좋은 점도 있다.

적어도 뒤에는 내 주의를 분산시킬 짜증나는 인물이 없을뿐더러

조금 피로하다 싶으면 기지개도 편하게 피울 수 있다.

공연을 함께 즐길 오늘의 동료

 

공연이 시작하기 전에

한 아저씨가 내 옆에 와서 앉아도 보고 

고개를 쭉 내밀어도 보고 하더라니

 

사실 오늘 저녁에 바로 이 공간에서 슈트라우스 카프리치오 공연을 보는데

내 오른쪽 자리가 당신 자리라면서 미리 테스트해보러 왔다고 설명한다(독일어로..)

 

많이 실망하고 돌아가면서,

산책자가 운이 아주 좋은 케이스라고 말해준다.

 

피차 이곳 대축제극장은 소리는 앵간하면 다 좋은데,

딱 하나 2층 뒷부분의 문제가 기둥에 시야가 심하게 가려진다.

근데 딱 내 자리까지가 무대에 영향이 없는 축복받은 15유로 존이라는것!

 

그렇게 기분좋을 사유가 하나 늘어난 감사한 하루.

정말 내 자리에서는 딱 무대가 끝나고서야 기둥이 시야에 들어온다

 

 

연주는 역시 대단했다.

빈필... 

 

옛날엔 우리나라 오케스트라들의 가장 큰 문제가 관악부라고 생각했다.

워낙 실수도 많고 음색도 불만족스러운 경우가 많았으니깐.

 

근데 내가 정말 사랑하는 서울시향 공연에 가면

요즘은 관악부는 아쉬움이 잘 안느껴진다. 오히려 감동받는 일이 많달까...

 

진짜 잘하는 오케는 이제 현악기들의 오케스트레이션,

그 총주에서 느낌이 확 다르다.

빈필은 오늘도 역시 이름값을 해줬다.

 

그리고 또 한국에서는 합창이 섞인 곡을 그렇게 쉽게 들을 순 없으니

이 역시 더없이 귀한 순간.

모두를 자리에서 일어나게 만든 숭고한 음악세계였다

 

블롬슈테트가 지휘봉을 내렸다.

자리에서 일어날 기력이 있는 사람이면 다 기립했다.

 

그러지 않을 수가 없었다.

눈앞에 한 세기를 온전히 음악에 바친 거장이 신과 운명에게 감사를 올린 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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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연정보

 

Johannes Brahms - Schicksalslied für gemischten Chor und Orchester, op.54

Felix Mendelssohn - Lobgesang, op.52 (Symphony No.2)

 

지휘 : Herbert Blomstedt

연주 : Wiener Philharmoniker

소프라노1 : Christina Landshamer

소프라노2 : Elsa Benoit

테너 : Tilman Lichdi

합창 : Wiener Singverein (Einstudierung : Johannes Prinz)

 

28.07.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