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번째 산책] 퓌어스텐펠트 수도원 그리고 암퍼

근처에 멋들어진 수도원이 있다고 어디선가 보고는 구글맵에 저장을 해두었는데

일요일 주일미사도 해결할 겸 뮌헨 서쪽에 '그 마을'에 가보기로 했다. 

 

Fürstenfeldbruck.

길고 어려운 이 마을 이름을 대체 한국어로 뭐라고 표기하는게 나을지 한참을 고민했다.

 

그나마 한글은 위대한 언어라 이런저런 방법으로 대충 읽어는 지지만,

가끔 이렇게 길고 요상한 독일 지명을 만나면 조금 당혹스럽긴 하다.

 

결론적으로는 제목에서처럼

퓌어스텐펠트브루크 라고 쓰기로 했다.

(와 이번 글은 쓰면서 최대한 마을 이름을 덜 언급해봐야겠다)

 

이곳의 이름은 세 개의 단어로 이루어져있다.

Fürst : 제후, 수도원장 (뭐가 되었든 Fürst는 왕 바로 아래 정도의 권력을 가진 직책이다)

Feld : 들판, 벌판

Bruck : 다리 (바이에른 방언이다)

 

종합해보면 이곳은 다리가 있는 제후령이라는 뜻이고,

그말인 즉슨 여기도 (너무 당연하게도)비텔스바흐 가문의 영지였다는걸 말한다.

왜 다른 영지들은 제끼고 여기만 특정지어서 제후령이라고 마을 이름을 붙였는지는

이 글을 쓰면서 약간은 알 것도 같게 되었는데, 조금 뒤에 써보기로 한다.

 

바이에른부터 잘츠부르크에 이르는 이 부근에서 

마을 이름에 다리 혹은 성채 같은 명사가 들어가면 소금 교역로였을 가능성이 높다.

이 다리 혹은 성채를 가지고 길을 막아놓고 통행세를 징수했던 곳이라는 것.

 

요즘은 그래도 그 나라에서 물건 팔게 아니면

지나간다는 이유로 삥뜯지는 않는것같은데(잘은 모르지만)

적어도 저기 가면서 통행료를 준비해갈 필요는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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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가 양이니 개니

 

출발할때부터 트램에서 귀여운 털뭉치를 만났다. 

대중교통을 타고 다니다 보면 예쁜 멍뭉이들을 정말 자주 만나는데,

지금 글쓰는 날 기준으로 어제는 심지어

검둥이 한 마리가 내 발등이 마음에 들었는지

그 위에 털썩 엎어져서 쉬는 바람에 심장에 무리가 왔다.

(좀 뜨겁기도 했고)

 

주일미사에 제 시간에 도착하지 못하는 병이 있는데

유럽의 여유마저 자연치유에는 엿부족이었나보다.

20분정도 늦게 출발해서 마음이 급했는데

저 복슬복슬 털뭉치를 보고선 마음이 다시 편해졌다.

대체 이게 몇 음절짜리 동네야

 

늦은 마당에 무슨 사진이냐 싶지만

잘 생각해보면 늦을똥 말똥 아슬아슬한 순간에야 급하겠지만

이미 늦은 마당에 뭐가 급하겠나. 

수 년째 내 정신건강을 책임져주고 있는 나름 유용한 사고방식이다.

 

그렇지만 여기 지명을 발음하려고 할 때마다 여유가 싹 사라진다.

퓌어스텐-펠트-브룩크

몇 음절인지 정확하게 세고싶지는 않지만

한국인으로서 발음하고싶지는 않은 지명.

 

서울 부산 대구 광주 전주 원주 강릉 속초 하다가

주문진 남양주 삼천포 퇴계원 하기 시작하면 어딘지 멀게 느껴지면서

두물머리 장승배기 하면 이제 숨이 차오르기 시작하는 한국인인데 말이다.

왜인지 동남아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기차역은 마을이랑도 수도원과도 조금 떨어진 곳에 있다.

1870년대 개통될때는 기차타러 다닐때는 마차타고 다니는게 일상이었겠지.

 

이곳 정도만 되어도 제법 규모있는 행정구역이지만

버스는 20여분에 한 대 꼴로 있고 그 마저도 일요일엔 좀 더 게을러서

그냥 재빨리 걷는게 낫겠지 싶어 걸음을 재촉했다.

딱 기차 내렸을때 신부님이 아마 제단으로 나왔을정도 시간이었다.

저 멀리 보이기 시작한 수도원 성당

 

그래도 내리막을 내려가니 곧장 수도원의 하이라이트,

성모승천 성당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풀밭을 가로질러 가면 1분정도는 줄지 않을까 싶었지만 꾹 참았다.

 

잔디 보호는 유럽에는 없는 개념이라 그 목적은 아니었고,

가끔씩이라도 나무 그늘을 스쳐가고 싶어서다.

나도 누가 태워주는 자전거 타면 참 편할텐데

 

저 길을 걷던 시간을 떠올리는 지금이 

이곳 수도원의 유래를 짚고 갈 마지막 기회인것같다. 

곧 수도원에 들어가고 나면 감탄하기에도 시간이 빠듯하다.

 

그게... 여기가 조금 황당한 이유로 세워진 수도원이다.

바이에른 공국시절인 1256년,

의처증이 있던 루이 2세가 자기 아내를 살해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그 당시는 힘있는 남자로 살기에 매우 편한 시절이었어서...

당시 교황 알렉산더 4세 교황이 속죄를 위해 내세운 조건이

바로 수도원의 건립이었다.

(물론 '봉헌'도 많이 하셨겠지)

 

이래저래 수도원 자리를 찾다가 우여곡절끝에 정해진 곳이 

Bruck 마을 근처의 현재 위치.

(그래서 Fürstenfeldbruck이 된 것 같다)

 

아마 정치적인 목적에서였겠지만

루이 2세의 전폭적인 지지 아래서 이 수도원은 크게 번성했고

2세 아들이자 신성로마제국 황제로 등극하는 루이 4세 역시

수도원을 대대적으로 후원하면서 이 지역의 핵심 수도원이 된다.

 

지금의 건축물들은 대부분 17세기 후반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피차 1600년대 초반에 있었던 30년전쟁에서

이곳 바이에른마저도 스웨덴 멋쟁이 구스타프 아돌푸스한테 

철저하게 약탈당했기 때문에 그 전에 멋졌어봐야 큰 의미는 없었을거다.

 

그 뒤로 세속화도 되었다가

(나폴레옹과 친구들의 영향으로 온 독일이 영토재편, 세속화에 들어갔을 그때)

다시 막스 요셉이 사들였다가, 나중에는 또 야전병원, 막사로도 쓰이고 

다채로운 역사를 가진 수도원.

 

여하튼 나한테는 건립배경이 좀 충격적인데 뭐... 다른 사람들한테는 아닐수도...

이러나 저러나 시토 수도회 소속이어서 나한테는 또 의미있는 곳이다.

(내 수호성인이 시토 수도회에서 제일 유명한 양반이다)

글씨가 낡아 헤져서 잘 해석은 안되는데, 숫자가 두 개를 봐서는 2차대전 추모비다

 

성당 뒷편에는 역시 2차대전 추모비로 추정되는 기념비같은게 있다.

Landsberg am Lech, Dachau 산책편에서 간단히 썼지만

역시 이 동네는 2차대전의 트라우마가 독일 안에서도 큰 편에 속하는것같다.

독일인들은 그래도 매 순간 되뇌이면서 속죄하는게 어디랑은 좀 많이 비교된다.

그렇게 커 보이지는 않는데?

 

성모승천 성당에 거의 근접했을때

지명에서 뿜어져나오는 강력함과는 달리 규모 자체가 그리 크지는 않아서

실망이라기엔 좀 그렇지만 그 비스무리한 어떤 생각을 잠깐 가졌었는데,

성당 안에 들어가면 바로 깨지고 말 허튼 생각이다.

사진으로 다시 봐도 어마어마한데, 직접 가서 보면 어떻겠냐구...

 

도착했을때는 딱 강독 시간이었다.

거 참 한국에서도 맨날 이 무렵에 도착하더니 그 습관을 못버리고...

그래도 걸어서 20분 걸린다는 거리를 14분만에 주파했으니 나름 노력은 한거다.

 

아쉬운대로 미사 전례 자체는 따라갈 수 있지만

그래봐야 설교는 알아먹기 버거워서

누가 앞에서 말하고 있을때는 성당 구석구석을 감상하는 시간으로 쓰는 산책자.

(언젠가는 알아듣게 되길)

 

아마도, 내 기억속에 남아있는 독일 바로크 성당중에서

가장 화려하고 아름다운 성당인것 같다.

한낮의 햇빛이 은은하게 스며드는 이 공간에 반해버렸다.

천정 벽화

내 마음을 사로잡은 초록색 휘장 조각

제단부(물론 첫 사진 빼고는 다 미사 끝나고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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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가 끝나고 나도 사람들이 다 빠지지 않더니, 

봉사하는 사람들이 나에게 와서 리플렛을 한 장 주었다.

오늘 오르간 콘서트가 바로 이어진단다(밥 시간이 한 시간 늦어지겠군).

정말 딱 앞뒤로 한 장짜리 리플렛

 

Georg Muffat(1635-1704) : Passacaglia aus Apparatus musico-organisticus

Philip Glass(1937~) : Dance Nr. 2 

 

Fuxorgel : Kasimir Sydow (뮌헨에서 음대 나온 아저씨라함)

저기에 통로가 있다는걸 의식해 본 적이 없다

 

오르간 연주자 아저씨는 독서대에서 간단하게 자기가 연주할 곡에 대해 설명해주고선

(관심분야다 보니 다행이도 어느정도 이해가 된다)

오른쪽 어디로 사라지더니 갑자기 위쪽 창문쪽을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었다.

저 위에도 통로가 있을거라는걸 의식해 본 적이 없어서 재밌었다.

연주가 끝나고 찍었지만, 연주중에 찍었어도 아저씨는 안보였을거다

 

파이프오르간은 소리라는게 공간을 타고 흐른다는걸 온 몸으로 느끼게 해준다.

소리가 귀에만 꽂히는게 아니라 

팔, 다리, 심장 온 몸을 파고드는게 느껴진다.

그래서 마치 음악의 떨림에 맞춰 내 몸도 함께 진동하는 기분이다.

 

필립 글라스의 음악을 오르간으로 들어보는 것도 처음인데

특유의 반복과 미묘한 변화 속에서

머릿속에 '영원', '영겁', '우주'와 같은 그런 단어들이 계속 떠올랐다.

(다만, 너무 계속 반복되다 보니 참을성 부족한 분들이 많이 떠나가셨다)

맨 뒷자리인데다가, 유럽 카메라는 소리가 안나서 20초만 찍어봤다

다음주에 시간이 맞으면 한 번 다시 가봐야겠다

 

9월까지 이런 공연이 계속 이어진다 해서

한 두 번정도는 다시 와봐야겠지 싶었지만,

집 이슈 때문인지는 몰라도 아직 다시 가보지는 못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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퓌어스텐펠트 수도원 전면부

한참을 멀리 떨어져야 한 프레임 안에 들어온다

 

훌륭한 공연 덕분에 예상보다 훨씬 늦은 시간에 성당 문을 나섰다.

사실 이미 점심시간이지만 밥은 숙소 돌아가서 먹을 작정으로 하루를 시작했기때문에

그 결심을 지키기로 했다.

 

이곳 주민들은 성당보다는 밥먹고 쉬러 여기 수도원을 많이 찾는듯 하긴 했다.

'이 마을'은 수도원 부지 한 켠을 마을회관처럼 사용하고 있다.

식당도 있고 문화행사에도 쓰고 회의, 전시 공간으로도 활용되는 듯 하다.

야외 영화상영을 참 좋아하는 독일 피플

박물관과 식당이 있는 건물, 이 뒷편에는 야외 테이블이 즐비하다

수도원 앞의 버스정류장, 세 대나 노선이 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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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배가 고파서 수도원 앞 버스정류장에서 무의식적으로 

역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릴뻔했다.

 

하지만 오늘의 목적이 아직 덜끝났으니 강행군을 이어가본다.

'이 마을' 역시 지난번 다하우와 같이 Amper 강을 끼고 있다.

암퍼의 지류 하나가 수도원을 통과해 흐르고있기도 하다.

얘는 왜이렇게 관리를 안했대

표지판 만큼이나 야생 그대로인 암퍼의 지류

 

처음에는 암퍼 남쪽을 따라서 쭉 내려가려고 했는데,

저 꼬질꼬질한 표지판 덕분에 암퍼 남쪽 산책길이 강을 많이 빗겨간다는걸 알게되어서

수도원을 다시 끼고 강을 건너 북쪽 산책길을 타기로 했다.

 

역시 독일에서 표지판은 한 번즈음은 읽어볼 가치가 있다.

 

오늘도 그림같은 독일의 자연

나는 왜 이런 시골 강가 산책이 좋은걸까... 그렇게 막 자극적인것도 아닌데

 

드디어 암퍼 본류를 만나서 강을 건넜다.

또 강을 따라 걸을 생각을 하니 기분이 좋아서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걷다 보면 그 강이 그 강이고 어차피 옆에 물 있고 오른쪽에 산 들 있는 풍경은

가도가도 비슷한데 왜 계속 산책을 하러 오게되는지 사실 나도 잘 모르겠을 때가 있긴 하다.

멀리서 보니 다시 검소해보이는 마법

 

사람이 참 별거 없어서

두 다리로 열심히 걷는다고 제법 걸어왔는데도

아직도 수도원이 가깝게 보인다.

가다가 만난 쉼터, 근처에 물고기와 오리들이 많다

나도 끼워달라

 

오늘의 부러움 모먼트를 만났다.

고무보트, 패들보드 띄워서 암퍼 따라 쭉 내려가는 사람들을 많이 봤다.

나도 이렇게 살고싶어서 이 동네 집도 찾아보기 시작했다.

뮌헨으로 가고있는 기차(다음 차편은 언제일까를 생각하게 된다)

오른편으로는 목초지가 있는데, 소들은 저 오두막에 갇혀있었다

배고파서 포기하고 마을로 가려한다

 

이제 산책을 멈출 때가 되었다.

더 이상 몸이 연료보충 없이 걷기를 거부하기 시작했다.

기차역이 있는 마을로 가기 위해 찻길쪽으로 나갔다.

Buchenau 주민들은 갑자기 나타난 동양인이 신기했을것

 

Buchenau 마을을 지나가는데 여기도 정말

사람구경하기 어려운 작고 고요한 마을이다.

이런데에 갑자기 동양인이 와서 살겠다고 하면 

동네 할머니들이 창문 커텐의 작은 틈으로 내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다가

신고하고 만다는 그런 익숙한 이야기의 주인공이 될것같긴 하다.

배차간격이 20~40분이면 살만한건지 아닌지 잘 판단이 안선다

 

 

역에 도착했다.

Buchenau 역은 그래봐야 S-Bahn으로 '그 마을'에서 한 정거장 떨어져있다.

시간을 정말 잘 맞춰서 4분뒤에 바로 기차가 3번 승강장에 미끄러져들어왔다.

자꾸 만나게되는 우리의 수도원

 

기차타고 가는 길에 수도원과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인사를 하고

역시 칼같이 기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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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 풍성한 고단백 식단

 

결국 다섯 시가 거의 다 되어 먹은 점심(?)밥.

어차피 해는 여덟시 반에 질 테니 저녁은 그 때 먹어도 괜찮을거라 생각하며

양조절 없이 때려넣었다.

 

걷고 와서 샤워하고 먹는 한 끼식사란 참 아름다운 쾌락이다.

물론 맥주도 함께했고

 

04.08.2024

(한 달이 밀려버렸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