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세비야-그라나다 샌딩투어 ②] 바닷가의 하얀 꽃 프리질리아나, 그리고 유럽의 화단 네르하

론다에서 먹은 소꼬리찜이 모처럼 한식과도 비슷해서였는지,

다시 시골길을 달려나가는 밴 안에서 포만감과 함께 또 깊은 졸음을 달여내었다.

차가 속도를 미처 못줄이고 로터리에 들어서면서 전해져온 강한 코너링에 잠에서 깨니

다른 사람들도 점심은 스페인식으로 풍성하게 드셨는지 얼추 잠에 사로잡힌 채였다.

말라가는 제법 큰 항구도시다

 

로터리를 만난건 드디어 길 끝에 바닷가 항구도시 말라가를 만났기 때문이었다.

이렇다할 랜드마크는 별로 없어서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찾는 여행도시는 아니지만

정갈한 항구도시이자 남부 최고의 교통의 요지인 말라가,

그라나다에서 몇 밤을 보낸 후에 우리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다시 말라가로 올 예정이다.

 

그때까지 잘 있어 말라가, 또 보자구!

고속도로 다리 난간도 짙은 바다빛을 하고있다

 

오래 지나지 않아서 고속도로 출구에 가까워진 밴이 속도를 줄이기 시작했다.

오른편으로는 네르하(Nerja)가 보였다.

 

론다 다음으로 가고있는 프리힐리아나(프리질리아나, Frigiliana)는 

작은 해변가도시 네르하 바로 북쪽에 붙은 산속마을이다.

무어인들이 지어놓은 흰 집들로 빼곡한 이 언덕배기 마을은 '스페인의 산토리니' 라고도 불린다.

 

사실 그 별명 덕분에 그렇게 큰 기대를 품고 가지는 않았다.

산토리니와는 무관하고, (약간 뒤틀린) 성격상 이런 류의 별명이 약간 뭐랄까

내게 불공평한(?) 혹은 마치 산토리니의 우위를 인정듯한 그런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한 지명에 다른 지명을 가져다 쓰는 별명을 싫어한다.

 

삼척은 삼척대로 아름답고, 나폴리는 나폴리대로 아름다운데

왜 삼척 장호항에다가 한국의 나폴리라는 별명을 꼭 붙여야할까...

 

결론적으로는 그런 별명이 내 기대감을 좀 낮춰놓은 덕분인지 

뒤늦게 찾아본 많은 인터넷상의 후기들과 달리 나는 어느정도 마음에 들었다.

(기대를 너무 많이해서 그런가 실망스러웠다는 리뷰들이 상당히 눈에띈다)

프리힐리아나 마을 초입

 

프리힐리아나도 마을이 윗말과 아랫말로 살짝 나뉘어있는데

대부분의 투어 코스들은 윗마을로 올라간다. 

너무 당연히도 윗마을에서 바다와 함께 내려다보는 아랫마을 풍경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D

 

마을 초입에서 만난 갈림길에서부터 이미 마음속에 낭만이 차올랐다.

바닥에도 자갈들로 꽃무니가 표현되어있었는데 끝없이 이어지는게 유럽스러웠다.

물론, 캐리어를 끌고 여기를 온다고 생각하면 조금 서글퍼지는건 사실이다마는.

골목 풍경

 

아... 아름다운 풍경이다.

흰색 벽에 박혀있는 시원한 푸른색의 문과 창살들, 그리고 발코니에 매달린 초록색까지.

무어인들의 집은 어쩌다 이렇게 고운 흰색을 하게 되었을까 하고 로맨틱한 상상을 해보려다가도

나의 이성이 치고들어와서 훼방을 놓는다.

 

10월도 반절을 넘긴 이 순간 30도를 넘어가는 여기에서 

흰색이 아니면 대체 어떤 색으로 벽을 칠할 수 있단말이니 ㅎㅎ

한여름에 사람이 살아 지나...? (가이드 선생님은 여름이 싫다그랬다)

 

그나저나 일부 집들은 상당히 시원하기도 하다는데

그런 녀석들은 원래 산을 이루던 바위의 안을 파내서 만든 뭐랄까 동굴같은 집이라고 했다.

이곳의 집들은 문과 창문이 포인트다

 

냉방이 잘 돌아가는 오늘날에 들어서도 이곳은 법으로 흰색 벽을 쓰는게 의무화되어있다.

색으로 개성을 표현하려다가는 막대한 벌금 정도면 다행이고 구금까지도 가능하단다.

그래서 이곳의 집들은 문과 창문의 모양이 그나마 포인트인데, 

조금이나마 다르게 푸른 계열을 사용할 수 있고 특히 문고리의 모양은 나름 자유로워 보였다.

마을 곳곳에는 고양이 선생님들이 배회중이다

 

역시 무어인들의 마을이었던건지 마을 곳곳에 고양이 선생님들이 배회중이었다.

청결과 세정의식을 중요하게 여기는 이슬람 문화에서 고양이는 이상적인 동물이다.

마을을 빠져나가는 골목에는 마을에서 공동으로 운영한다는 대형 고양이집도 있었다...

그러나 저러나 야옹이들이 귀엽고 우아한건 온 세상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사실인가보다.

언덕배기 마을이긴 하다

 

언덕을 끼고 만들어진 마을이다 보니 역시 계단이 좀 많다.

그래도 오르는 재미가 있긴 했는데, 계단은 마을 사람들의 화단이어서 정감이 갔다.

그와 별개로도 계단 자체가 아래에서 봤을때는 벽돌이 보이게끔 되어있어서 

자칫 차가워보일수 있을 이 마을에 따스함을 불어넣어주고 있었다.

같은 계단을 위에서 내려다보면

 

마냥 아름답고 차분해보이는 프리힐리아나에는 사실 고난의 역사가 깃들어있다.

물론 여기뿐만 아니라 이베리아 반도 전역에 해당되는 이야기기이긴 하지만

프리힐리아는 그 고난의 역사가 조금 더 길다.

 

에스파냐의 레콩키스타는 1492년 그라나다를 마지막으로 완성되었다.

무어인들의 왕조는 가톨릭 세력에 망해 바다를 건너갔을지언정

가진게 없는 서민들에게 삶의 터전을 떠나는게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다.

 

개종이 아니면 떠나는걸 선택해야 하는 결정의 순간에, 일부 이슬람인들은 숨기로 정했다.

언덕배기에 걸쳐 쉽사리 접근하기 어려운 여기 마을에 모여서 숨죽여 살아갔지만

결국 저항의 끝에 이곳에서 벌어진건 살육과 추방이었다고 한다.

그 내용을 담은 글귀들이 프리힐리아나 곳곳에 벽화와 함께 새겨져있다.

 

스페인어를 조금 알아볼 수 있으면 좋으련만...

마을 한켠에 있는 우물

 

이곳 마을사람들은 반목의 역사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를 되새기려는지

어딘가 골목 한켠에 이런 음수대를 만들어놨다.

유대의 별(훗날 유대인도 들어왔다)과 십자가, 그리고 이슬람의 상징이 나란히 졸졸거린다.

모쪼록 아름다운 곳이다

 

그런 깨달음이 세상을 지배하면 좋으련만 아직도 세상에는 종교의 이름으로 흐르는 피가 너무 많다.

모쪼록 현재의 이곳은 아름답고 평화롭다.

프리힐리아나의 하이라이트로들 꼽는다

 

비슷하지만 또 조금씩 다른 아름다움을 제각기 품고있는 골목들을 누비다 보니

어느새 프리힐리아나의 하이라이트라고들 꼽는 전망대에 도달했다.

아랫마을이 한 눈에 들어오고 그 뒤로는 푸른 지중해가, 또 그 너머에는 파란 하늘이 늘어서있다.

확대하면 이런 모습

 

여기 있는 내내 하늘이 마냥 맑지만은 않더니 전망대에 올때즈음 귀신같이 하늘이 개였다.

전망대에서의 풍경이 예쁘긴 했는데 여기 마을은 그냥 이 모습보다는 

흰 건물 사이 골목에서 숨쉬는 모습이 더 아름다운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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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을 잘 마치고 다시 밴에 올라탔다.

그나저나 밴을 타고내린 주차장에는 무려 무료화장실이 있었다...

 

꼬불꼬불 산길을 어찌나 밟아 내려가던지

네르하로 다시 내려가는데에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화장실을 미리 들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안그랬으면 지려버렸을지도)...

네르하는 해변가 마을이다

 

우와 바다다... 뮌헨에 살면서는 결코 볼 수 없는 바로 그것, 해안선이다 ㅠㅠ

저 당시 바다가 나에게 준 감동이란건 한없이 컸다.

특히, 저 영롱한 비취색이라니... 

 

동행분은 마요르카도 여행한적이 있다했는데, 

여기 바다도 아름답지만 마요르카의 바다빛은 정말 다르다고했다. 

꼭 가봐야지...

유럽의 발코니

샌딩투어에서 네르하는 약간 프리힐리아나에 온 김에 들러가는 덤 같은 느낌으로만 거쳐간다.

그래서 '유럽의 발코니' 라고 불리는 곳까지만 걸어갔다가 올 수 있었다.

네르하도 자극적이지는 않아도 생기있는 마을 같았는데 조금 아쉽긴 하다.

 

유럽의 발코니 한켠에는 알폰소 12세의 동상이 서있다.

사실 유럽의 발코니라는 이름도 그의 감탄에서 나왔으니 동상의 존재 이유는 충분하다.

엄청 좋아하는 장소였다고 한다.

 

이 아저씨도 즉위할때부터 시작해서 왕노릇한다고 고생을 꽤나 했는데

어쩌면 그래서 이렇게 바다를 내다보면서 치유의 힘을 얻었는지도 모르겠다.

유럽의 발코니에서

 

 

그래서 주변을 둘러보면 왜 12세 아저씨가 감탄했는지 알것도 같았다.

그나저나 이곳에는 야자수가 쭉 심어져있었는데 확실히 이국적이다.

더 신기한거는 야자수 사이사이에 잘 보면 앵무새들이 살고있다.

와... 철장 밖에있는 앵무새는 태어나서 처음보는건데!

야자수가 자라는 이곳, 스페인 남부

정말...? 여기 산다고?

 

역시 다른 여행자분들이 신나게 유럽의 발코니(테라스?)에서 사진을 찍기 바쁠때

나는 앵무새 구경하느라 시간가는줄을 몰랐다.

그나저나 시간이 말 그대로 제법 가있었는데 한국에서는 저녁도 먹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해가 눕는다

 

뒤를 딱 돌아서 출발하려는데 정말 태양이 성당 종탑에 걸리기 시작했다.

얼른 출발하긴 해야 그라나다에 밥때 맞춰서 도착하긴 하겠다...

 

그나저나 이 안쪽 골목에도 스페인광장이 있었다.

스페인에는 세비야의 그 아름답던 스페인광장 이외에도 조금 규모있는 마을이면 어디든

스페인 광장이 있다.

 

심지어 스페인이기를 거부하는 바르셀로나에도 있을 정도니깐 :D

네르하 골목길이 상당히 예쁘단말이다

 

해질녘 그늘진 네르하의 골목길의 느낌이 부드러워서 너무 좋았다.

좀 더 머무를순 없는걸까 ㅠㅠ

 

(기절, 정말 한 번의 예외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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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도 너무 많이잤는지 이번에는 그라나다에 들어서기 조금 전에 눈이 떠졌다.

밴은 제법 산간지방에 난 고속도로를 열심히 달려가고있었는데,

구글맵을 보니 오른편에는 그 유명한 시에라 네바다 산맥이었다.

 

지금 딱 등산가기 좋을 시즌인데... 시간만 많았으면 이틀 꼬박 한 번 올라보고싶은 곳이다.

그라나다는 또 색다른 도시

 

모쪼록 그라나다에 잘 들어왔다 :D

가이드 선생님과는 작별인사를 하고 동행분과 마트에 가서

자기전에 마실 맥주와 안주로는 감자칩과 올리브를 샀다.

 

숙소로 잡은 에어비앤비는 알함브라 궁전이 있는 언덕배기 밑자락에 있었는데

어찌나 넓은지 각자 방을 하나씩 잡고 잠을 자도 남는 공간이 너무 거대했다.

피곤하긴 해도 방에 퍼져있을수는 없지, 먹으러 갈 시간이다.

 

그치만 그라나다의 일은 그라나다 포스팅에게 맡기자구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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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샌딩투어가 어떻냐구?

음... 경우에 따라 다를것같다.

 

추천 : 유럽여행이 익숙지 않다 / 내가 여행경로 짜고 하는게 귀찮다 / 그렇지만 작은 마을도 보고싶다

비추천 : 투어가 싫다 / 다른 곳을 포기할지언정 한 곳을 좀 여유있고 편하게 둘러보는게 좋다 / 운전이 즐겁다

 

그런고로 나는 다음에 다시 이 동네를 찾는다면 샌딩투어는 이용하지 않을거다 :D

나는 역시 내가 하는 운전이 너무 즐겁고, 

대체로 여유가 넘치는 이곳 유럽에서 바삐 돌아다니는 사람이 되고싶지는 않다.

 

그럼에도 내게 스페인 남부 시골마을의 매력을 알게해준 샌딩투어에게 감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