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다섯 번째 산책] 파펜호펜 안 데어 임, 나 말고 맥주를 책임지렴

열네 번째까지는 괜찮았는데

열다섯 번째가 되니 

넘버링에 너무 많은 글자가 소모되나 싶다.

 

고민이 살짝 들지만

일단은 강행해보기로 :D

 

오늘의 산책지는 

Pfaffenhofen an der Ilm

임(읾) 강가의 파펜호펜 이라는 마을이다.

대표사진 뽑기도 어려울정도로 투박한 곳

 

마을 이름에 f 가 네 개나 들어가는

이 신기한 마을에 찾아간 이유는

다름아닌 집 구하기의 일환이었다.

 

감사하게도 이곳 집주인께서

나에게 상당한 관심을 보여주셔서

파펜호펜이라는 생소한 마을까지 닿게된 것.

 

물론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파펜호펜이라는 곳을 처음들어보지 않는 산책자다.

 

일단 설명을 위해 기차부터 타보기로 하자.

뮌헨-잉골슈타트-뉘른베르크로 이어지는

황금노선상에 위치한 이 마을은

덕분에 지도에서 느끼기보다는 금방 도착한다.

 

중앙역에서 30분마다 번갈아가면서 오는

RE1, RE16를 잡아타면

길어야 40분이면 파펜호펜 역에 도달한다.

그러니 딱 그 만큼만 주절대볼까 한다 :D

 

내가 파펜호펜이라는 강한 지명을 처음 접한건

오스트리아 왕위계승전쟁사 속에서다.

(Österreichischer Erbfolgekrieg, 1740~1748)

Carl Röchling < Angriff der preussischen Infanterie, Hohenfriedeberg 4. Juni 1748 >

 

 

독일사에 관심이 많다 보니

내게도 프로이센이 지닌

강인한 이미지의 원천을 찾아 헤집고다니던 날들이 있었다.

 

그리고 이 전쟁이 바로

그동안 변방국 이미지에 머물렀던 프로이센이 

유럽의 새로운 군사강국임을 만천하에 선포한 계기였다.

 

당시 거의 존재하지 않던

상비군을 운용하면서

보병대를 살벌하게 훈련시켰던 그들이다.

 

순서가 좀 뒤집히긴 했는데

 

오스트리아 왕위계승전쟁은

남자 후손을 남기지 못하고 죽은

합스부르크 오스트리아의 카를6세의 딸

'마리아 테레지아' 의 즉위와 함께 시작된

유럽 각국의 나도껴줘식 전쟁이었다.

(너도나도 다껴서 사실상 예비 세계대전)

젊게나온거로 사진 써드렸습니다 여왕님

 

여기서 파펜호펜은

주연은 아니지만 핵심 조연격인

바이에른 공국이 출연하는 마지막 씬이다.

 

일단, 먼저 테레지아 누님께서는

본인은 합스부르크의 공식 직함을 모두 갖고

(오스트리아 대공, 헝가리와 보헤미아의 왕 등)

조금 불안한 부분은 

남편을 신성로마제국 황제를 시킴으로써

보충해볼까 했다.

 

귀여운 축에 속했던 바이에른,

당시 선제후 카를 7세는

프랑스를 등에 엎고 신성로마제국 황제직에 입후보했다.

(바이에른 역사는 대체로 친프랑스계였는데

2차대전 주모자는 또 여기에서 나와버렸다)

 

실제로 당선도 되고 해서

황제놀이를 좀 하고 다닌 그였지만,

 

프로이센이 이 8년간의 전쟁에서

압도적인 무력을 과시하면서

지금의 폴란드 남서부 전체에 해당하는

슐레지엔을 확보한것과 달리

(들어봤나욤 '프리드리히 대제')

빨간 부분, 즉 현재의 폴란드 남서부 실롱스크 지역의 독일식 명칭이 슐레지엔

 

바이에른-프랑스는 결국 

뮌헨도 함락당한 끝에

1745년 마지막 전투를 끝으로 

퓌센에서 강화조약을 맺음으로써

이 전쟁에서 조기 퇴근한다.

(아 프랑스는 아직 퇴근까지는 못했는데, 지금의 벨기에 땅에서 오스트리아-영국-네덜란드 연합군과 아직 싸우고있었다)

 

마지막 대패의 무대가 

저날 다녀온 파펜호펜이었는데,

실제로 시가전이 있었다고 하니

파펜호펜 시내가 전투의 현장이었던것.

2024.09.05 - [마시다] - [여섯 번째 마시다] Schneider's Helles

 

나와 파펜호펜의 또다른 접점은

그간 맥주일기에서 수차례 등장한 

'할러타우'에 있다.

 

세계 홉 생산량의 1/4를 담당하는

할러타우의 중심도시가 파펜호펜이라

그렇게 쉽게 잊을 수는 없는 곳이다.

 

오죽하면 이름속에 hofen이 있을까싶기도 하다.

물론 철자는 다른데 홉은 Hopfen이다 :D 

뉘른베르크 방면 선로의 대피선에 설치된 승강장

 

기차를 내렸다.

대충 예상했지만 휑한 역이다.

 

그래도 이 철도는 망조가 낀 이곳 마을에

다시 활력을 불어넣어준 고마운 존재다.

 

다만, 역은 시내에서 조금 이격되어있다.

그래도 기차 도착시간에 맞춰 

버스가 기다리고 있으니 큰 문제는 없긴 하다.

 

버스 노선들은 별도 회사가 아니라 

시에서 운영하고 있었다.

작은 마을의 상징같은거다.

Stadtbus(시영버스)를 운영하는 파펜호펜

 

한 10분여를 달려 

구시가지 한복한에 내렸다.

뒤로는 마을 성당이, 

앞으로는 저 멀리 시청사가 보였다.

파펜호펜 세례자 요한 성당

 

일단 새 마을에 왔으니

일반적인 내 루틴을 수행하려고

성당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할머님들께서 기도모임같은걸 하고있어서

정작 나는 기도 한 번 못해보고 나왔다.

 

으음... 집보러 온거 치고 

시작이 그렇게 예쁘지만은 않아서 

심기가 조금 불편해져버렸다.

마음에 들었던 시립도서관 건물

 

적어도 집을 보기 전까지는

좋은 점들을 계속 찾아내야한다.

동네가 마음에 안들면

집이 아무리 괜찮아도 정이 안붙는다.

 

바로 옆을 보니 시립도서관 건물이

너무 예뻤다.

혹은 그렇게 생각하려고 애썼던것도 같다.

보러간 집이 위치한 골목길

 

집을 보러 어떤 동네에 갈때는

항상 한 시간 정도 일찍 도착해서

주변을 한 바퀴 휘이 둘러보는 편이라

오늘도 아주 일찍 도착한 산책자.

 

집이 위치한 거리에도 가봤다.

깔끔한 골목이다!

마을 중심에서 엎어지면 코닿을 거리에 있는 것도 장점이었다.

파펜호펜 마을 광장

 

이백 걸음도 안걸어서

중앙광장에 다시 도달했다.

저 끝에 보이는건 파펜호펜 시청사이다.

종탑에 꽂아놓은 깃발 장식이 독특하다

 

종탑에 깃발을 꽂아놓은 방식이 독특하다.

깃발은 물론 이곳의 문장색과

바이에른의 주 깃발일 걸려있다.

마을 분수에는 성모상이 올려져있다

아이들이 뛰어노는게 평화로운 마을이다

 

여기도 분수도 있고

아이들이 자유롭게 뛰어놀 공간도 있으니

분명 있어야할 거는 다 있는것같다.

 

그런데 왜이렇게 심심해보이지...

나는 조용하고 평화로운 삶을 즐긴다.

대도시의 북적거림을 싫어하는 축이다.

 

근데 또 여기는 너무 흥미로운게 없어보인다.

심지어 뮌헨과의 심리적 거리도 

알게모르게 상당하니(RE밖에 안다니면 그렇다)

여기서 살아가는 모습을 상상하면

매우 건조한 느낌을 받게된다.

Ilm 강가로 가는 길

 

걸을만한 곳은 있는지 확인해보기로 했다.

나에게 상당히 큰 가산점 요인 :D

 

임 강은 아주 조그만 실개천이었다.

유량이야 여기가 훨씬 많긴 하지만

송파구에 있는 성내천 정도 너비를 가졌다.

작고 귀여운 임

 

그래도 개울가를 따라서 

산책로가 예쁘게 나있었는데

무려 길을 따라 그늘이 드리워져있었다!

산책로는 정말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산책길을 따라 외곽으로 나갈수록

눈에 들어오는 집들도 더 예뻐졌다.

신축집이 눈에 들어오는건 어쩔수없나 ㅠㅠ

수차가 나오면서 넓은 공원과 합류했다

 

그렇게 오래지 않아 

물길 끝에 수차가 돌아가고있고 

그 한켠으로 넓은 공원이 나오기에

거기에서 발걸음을 돌리기로 했다.

 

이제 집을 보러 갈 시간도 얼추 되어간다.

 

이래저래 한 바퀴를 돌아보고 나니

여기 마을이 작아도 너무 작다는 생각이 든다.

너무 휴먼스케일의 마을이라 그런지

든든한 느낌이 없고

아무래도 답답한 무언가가 있달까...

---

아쉽게도라고 해야할지 

혹은 다행이라고 해야할지

집도 썩 마음에 차지 않았다.

 

구축인거는 사실 큰 문제가 아닌데

관리가 그렇게 잘 되었다는 느낌을 못받았다.

 

북향 집이었는데

발코니에 곰팡이와 이끼가 낀 것을 보고

아 여기는 앵간하면 피하자 싶어버렸다.

파펜호펜 구시가 모형물

 

오늘도 허탕이구나 하는 속상함에도

버스가 오길 기다리는 동안

마을 광장에 한 번 다시 가봤다.

 

구시가지 축소 모형이 있었다.

이렇게 놓고 보니 정말 작은 마을인게

눈에 확 들어온다.

 

자칫하면 독일 할머니들에게 

감시당하면서 살 수도 있겠지 싶다 ㅋㅋㅋ

독일은 노인들이 무서워...

마을의 모든 버스가 드나드는 길

 

전광판에 버스가 오가는게 다 뜨는데

시스템이 조금 신기하다.

버스가 아니라 밴 형태인 것도 있었고,

구글맵에서는 건너편에서 타라고 하는데

가만 보면 버스들이 한 방향으로만 다닌다.

 

후... 쉬운 마을이 아니네

이들의 룰을 이해해야하는 곳이구나.

 

이 지점에서 완전하게 마음에서 접어버린

파펜호펜...

그냥저냥 괜찮은 나들이었다고 치기로 했다.

뮌헨에 돌아왔다

 

그리고 나서 뮌헨에 돌아오니

뮌헨이 새삼 아름다워보인다.

있을것도 다 있고

교통편도 편한데다가

 

즐길거리가 있는 와중에

평화롭기까지 한 이곳.

 

과연 나는 어디에서 집을 찾게 될까 :D

 

모쪼록 파펜호펜,

나는 괜찮으니 

앞으로도 맥주를 책임져주렴 :D

 

Das En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