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여섯 번째 산책] 기징 성당, 모처럼의 뮌헨 나들이

뮌헨은 나한테서 지금 차별받고있다.

 

이곳에 뿌리내리고 살기 시작한게

벌써 세 달도 제법 더 지나갔는데

허구헌날 다른 마을들로 쏘다니느라

정작 여기를 섬세하게 둘러본 기억이 별로 없다.

 

그도 그럴게

대도시의 삶보다는 

작은 마을의 평화를 선호하는 내 성격탓도 있고

 

더 근본적으로

자기가 사는 곳을 여행한다는게 

그렇게 자주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나보다도 서울 구석구석을

더 많이 누벼본 지방 출신 분들을

심심치않게 만나게 되고

 

다른 사람을 둘러볼 필요도 없이

나조차도 어지간한 독일사람들보다 더

매니악하게 독일 전역을 돌아다녀봤음을

스스로가 아주 잘 알고있다.

 

다 잡은 물고기라고 생각하는걸까도 생각해봤는데

그런 느낌은 아닌것같고

 

아무래도 우리의 무의식이

생활공간과 여행의 대상을 분리해내는것 같다.

하늘에 닿고자 하는 인간의 마음을 고딕 첨탑처럼 잘 보여주는게 또 있을까

 

모처럼 아주 의식적으로 

뮌헨 안에서 산책을 조금 해보기로 했다 :D

 

또 여차하면 멀리 떠나버리고 싶을까봐

일부러 숙소에서 오전을 최대한 빈둥거렸다.

멀리 갈 시간 자체를 죽여버려야해...

(해가 워낙 길다보니 사실 큰 의미는 없는 행위)

 

목적지는 기징 성십자성당으로 정해졌다.

(Heilig-Kreuz-Kirche Giesing)

 

왜냐?

 

앞에서부터 읽다보면 기억할 수도 있겠지만

기징어 맥주를 마시다가 

맥주 로고속의 저 성당에

언젠가 한 번 꼭 가보고싶어졌었다.

2024.08.31 - [마시다] - [네 번째 마시다] Giesinger - Festbier

기징어 로고 재탕!

 

그러니깐

오늘은 일종의 나와 했던 약속같은걸

지키러 가는 날인거다 :D

 

콜롬버스플라츠에 내릴거다

 

콜룸부스플라츠에서 지하철을 내렸다.

기징역이라는데가 있긴 한데

동네가 커서 내가 가려는 성당과는 한참 멀다.

 

그래도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기징은

여기 성당쪽에 가깝다.

 

기징이 지금이야 뮌헨시 안에 포함되어있지만

나이로만 따지자면 뮌헨보다 한 350년정도 선배다.

그 당시에는 언덕 위에 세워진 

이곳 성십자성당을 중심으로

마을이 퍼져나갔을거다.

내가 숱하게 지나다닌 연결선이 눈앞에...!

 

언덕배기 방향 출구를 찾아 올라가면 되는데

나는 출구가 보일때부터 이미 기분이 좋다.

 

뮌헨 중앙역과 동역 사이의 연결선이

코앞에 있기 때문이다 :D

언덕 위를 올라가면 선로가 내려다보인다했다.

철교 밑에서

구불구불 촵촵

 

그래서였다 ㅋㅋㅋㅋㅋ

평소의 나답지 않게

더 가파른 언덕길을 택해서 오른 이유 말이다.

타다~~~ 화물열차가 지나가는 모습을 포착했다

 

타 다~~~ (독일어판 짜쟌)

언덕 위에 올라서자마자

곧바로 그 선로가 눈에 들어왔다 :D

 

뮌헨 중앙역에서 출발하는

동쪽방향 열차들은

모조리 이 선로를 지나가기에

 

지난 여름에 지겹도록 자주 

나를 잘츠부르크로 실어나르던 RE5도

이 연결선을 지나가곤 했다.

(딱 한 번의 짜릿한 예외 : 열한 번째 듣다)

2024.09.17 - [듣다] - [열한 번째 듣다] Wiener Philharmoniker & Gustavo Dudamel

 

입꼬리가 귀에 걸릴정도로

행복에겨운 미소와 함께

기차가 지나가는걸 잠깐만 지켜봤는데,

지나간 두 대 모두 동쪽으로 가는 화물차였다.

RE5를 만나면 반가웠겠지만 :D

언덕 윗동네의 모습

 

성십자성당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기징 언덕 위의 동네는 밑에서 상상한거보다 넓었다.

정말 생각보다 많이 넓다

이 넓은 땅이 옛날엔 거의 공터였나보다(1897 사진)

사는 모습이야 어딘들 다 비슷하겠지만

각자의 동네마다 품고사는 독특한 특징들이 있는데

이 부근은 언덕 위의 대지인것같았다.

이제 성십자성당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넓다고 해봐야 그래도 조그만 동네에 있는

뾰족한 고딕 성당인지라

머지않아 종탑부가 모습을 드러냈다.

역시나 깔끔한 내부장식을 한 기징 성당

 

성당 문을 조심스레 열고 들어갔다.

손자와 함께 쉬고있는 할아버지 한 분 말고는

나뿐이었다.

 

관광객이 드나드는 성당은 확실히 아니긴 하다.

제아무리 맥주가 좋다한들

기징성당까지 올 사람이 얼마나 있을지 싶다 :D

남측 회랑

 

아쉽게도 각종 장식과 종교적 요소들이 있는

제단부 가까이는 빗장이 쳐져있고

들어오면 알람이 울린다고 안내판이 있었다.

멀리서 분위기만 즐기는것도 나쁘진 않다.

같은 벽면에 붙은 2차대전 전사자 명단

 

벽면 한쪽에는 2차대전 전사자 명단이

어김없이 붙어있었다.

전쟁은 기징의 아들들도 잔뜩 데리고 떠났나보다.

 

이 성당은 전쟁들보다는 살짝 오래되었다.

1860년대에 기징 인구 증가에 대응하기 위해

기존의 작은 성당 대신 새로 올린 고딕 건축물이다.

규모있게 짓는데 고딕만한게 없긴 하지...

 

모쪼록 2차대전도 얼추 버텨낸 성당인 셈이다.

폭격을 맞긴 맞았는데 

핵심 구조물들은 그대로 서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귀한 사진이다(나는 찍을 수 없는)

 

홍보물에 기징성당 외관 사진이 있기에

하나 찍어뒀는데 잘했지 싶다.

(드론에서 찍은 사진을 어떻게이겨)

 

이 홍보물에 따르면

'독일 문화재 보호재단'이라는 단체에서 개최하는

9월 둘째주 문화재 개방행사(연 1회)의 일환으로

기징 성십자성당도 성당 투어를 진행한다고 한다.

 

올해의 주제는 'Wahrzeichen: 도시의 상징물' 이라는데

여기 성당은 확실히 기징의 아이덴티티긴 하다.

설명해주는 내용이 궁금하긴 하지만

독어실력 이슈로 인해 더이상의 관심은 꺼본다 ㅠ

성당 외관(시점이 매우 휴먼스케일이다)

 

북쪽에서 들어왔으니 나갈때는 남쪽으로 나가본다.

벽돌을 구워 쌓아올린 고딕 성당은

항상 따뜻하고 어딘지 정겨운 느낌을 준다.

 

다만, 항상 내 마음의 고향 쾰른의 상징

거뭇거뭇한 쾰른 대성당을 생각나게 한다.

조만간 한 번 가봐야는데...

크리스마스 마켓 할때나 가볼까 싶다.

 

사진 보내주면 좋아할 사람들 몇몇이 생각난다.

성당 앞 교차로

 

성당 앞 기단 아랫부분에는

큰 교차로가 있고 그 맞은편으로 

기징어 양조장에서 운영하는 비어가르텐이 있다.

 

당시에는 맥주에 정신이 팔려서

전혀 알아채지 못했는데

이 앞의 도로가 Silberhornstraße였다.

 

내가 공연보러 Isarphilharmonie에 갈때

X30 버스로 갈아타는 아주 친숙한 곳이다.

(나도모르게 기징을 수시로 방문중이었음)

현재시각 오후 16:55, 아직 장사할 마음은 없어보인다

 

비어가르텐이 어떻게 생겼나 궁금해서 찾아가봤다.

큰길가가 아니라 안쪽 골목에 면해있는 

기징어 비어가르텐은

17시에 영업 시작이라는데(워라밸 대박)

 

16:55에 찍은 저 사진에서는

장사를 하겠다는 마음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역시 오픈시간 맞춰서 음식점가는건

아주 위험한 생각이라는걸 다시 확인하게 된다.

 

다행이 나는 오늘은 맥주를 마시고 갈 생각은

전혀 없었다 :D

조금 더 내려가보기로 했다.

 

기징어 사장님이 좋아한다는 축구팀

60'er 의 홈경기장이 근처에 있다고 했다.

이 동네도 또 바로 옆으로 낭떠러지가 있다

 

또 다시 오른편으로 낭떠러지를 끼고

걷게됐다.

기징이라는 동네가 정말 이런가보다.

다리 하나 건너의 건물이 축구장이다

 

축구장 가는 길이 참 심플하다.

그냥 어느순간 다리가 하나 나오더니

바로 그 너머에 경기장 입구가 있었다.

아쉽게 들여다보이는 스팟은 없었는데

다음에 한 번 경기를 봐보는것도 좋겠다.

(찾아보면 누구 하나는 축구 좋아하겠지)

 

다리 밑으로는 도로들이 또다시 층지어 교차하고 있다

 

다리 밑으로는 도로들이 또다시 층지어 교차하고 있다.

보이는 두 도로 모두 교량이다 :D

(아랫말과 윗말의 고도차가 제법 난다)

 

오른편에 차가 제법 다니는 길은

2R 이라고 뮌헨을 네모 모양으로 둘러싼 순환로다.

 

그리고 왼편의 길은 다시 한 번 

내가 줄창 지나다니고있는 도로인데 :D

내 취미생활을 돕는 고마운 친구,

급행버스 X30번이 여기를 오간다.

 

요즘도 이 다리밑을 지날때는

기징 맥주가 생각난다 ㅋㅋㅋㅋㅋㅋ

경기장 벽면에 붙은 아재들 스티커

 

쇠창살로 잠긴 경기장 안쪽 벽에는

수십년동안 팬들이 만들어 붙였을 

스티커들이 붙어있었다.

 

씹다만 풍선껌, 그런 느낌이었다 ㅋㅋ

조금 걱정되는 광경

 

경기장 반대편에는 

(내게는) 매우 놀랍게도 사람사는 동네가 있었다.

 

아니 축구경기장 옆에 사람이 살아지나?

하기야 옥토버페스트가 열리는

테레지엔비제도 민가 사이에 있는데 뭐...

 

여하튼 나는 그렇게 살고싶지는 않다.

소음과 많은 인파에 조금 취약한 불쌍한 사람이다.

(내가 즐겨가는 목적지만 봐도 티가 딱 나는편)

 

지하철을 타기 위해 아랫마을로 내려왔다.

이 개울가 높이가 기징의 진짜 밑바닥이다

 

 

아랫마을에는 개울이 하나 흐른다.

Auer Mühlbach라는 이름의 이 하천은

Harlach(할라흐)라는 동네에서 

이자르에서 살짝 갈라져나왔다가 

바이에른 주의회가 있는 '막시밀리아네움'을 살짝 지나 다시 합류하는 수로다.

오른쪽 하단부가 하류, 동북향이다

 

그냥 수로라고 하면 좀 밋밋한데

최소 14세기, 어쩌면 10세기 이전부터 

존재하던 수로라고 하면 느낌이 좀 다를지 모르겠다.

 

우리나라도 그랬지만

수력발전을 시작하기 한참 전부터

인류는 물을 뭔가를 가루내는데 써왔다.

 

이자르도 유량과 유속이 훌륭하기 때문에

예로부터 강을 따라 물레방아가 참 많았다고 한다.

 

문제는 치수라는게 너무 어려운 문제다 보니

이자르라는 변화무쌍한 야생의 강에서는

제분소를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어려웠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14세기에 이미 뮌헨 남쪽에 보를 설치해서 

특정 지류로 유입되는 물의 양을 통제하고

나머지는 다 서쪽으로 보내버렸다는 기록이 있다.

 

그 지류가 바로 Auer Mühlbach

이름부터가 솔찬히 정직하다.

Mühlbach는 그 자체로 제분소용 개울이라는 뜻이고

Auer는 아마도 슾지(Au)에서 시작한다는걸 나타냈을거다.

 

아유... 이 지류 얘기좀 하다가

내 얘기가 저 너머로 흘러버렸다 또...

공연장가는 교량 밑이다

 

모쪼록 지금은 물레방아는 없지만

기징 힙스터들의 낙서장으로 활약하고 있는 

이곳 아우어뮐바흐에는

TSV 와 기징을 그린 그래피티로 가득하다.

(1860 뮌헨 팀의 공식명칭은 Turn- und Sportverein München von 1860 이다)

그렇게 싫지만은 않다...

그래 니들 최고다!

유달리 트램이 자주 등장한다

 

유달리 트램을 소재로한 그래피티가 많던데

25번트램과 기징에 무슨 사연이라도 있었을까

(혹시 아는분이 계시면 공유를 부탁드립니다)

작은 수력발전소도 있다

 

Candidplatz에 거의 다다랐을때

현대판 물레방아

수력발전소도 하나 발견했다.

 

물의 힘으로 가득할 이 건물의 목적과는 달리

풍겨내는 분위기가 묘하게 고즈넉했다.

Candidplatz 역 승강장 진입로

 

그리고 그런 뮐바흐의 감성과는 또 달리

Candidplatz 역사는 또 모던함이 지배하고있었다.

 

기징은 참 흥미로운 동네다...

---

그대로 쭉 숙소로 돌아가려다가

한 정거장을 채 못넘어가고 다시 내려버렸다.

전부터 한 번 들러보고싶은 성당이 하나 있었는데

갑자기 기억속에서 불씨가 되살아나버렸기 때문.

여름의 이자르강은 헐벗은 사람들로 가득하다

 

강 서편에 있는 성 막시밀리안 성당(St. Maximilian)인데

기왕 날씨도 좋은 마당에 산책도 좀 겸하려고

강 건너에서 내리지 않고 미리 내렸다.

 

오늘도 이자르에는 헐벗은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서 내 마음대로 사진 프레임 짜기가 너무 어렵다.

후... 그럴 의도는 하나도 없지만 도촬하는 느낌 ㅠ

상류방향은 조금 한적하긴 하다

 

위 사진의 오래되어보이는 돌다리는 

이름이 비텔스바흐 다리(Wittelsbacherbrücke) 다.

별거 아녀보이게 서있는 이 동상은 사실 중요한 사람 기마상이다

 

다리에 바이에른 왕가의 이름이 붙은 이유는

그 한가운데에 오토 1세라는 사람의

기마상이 있기 때문이다.

 

오토1세는 당시 아주 조오금 잘나가는 그저그런

귀족가문중 하나에 불과하던(궁정백)

비텔스바흐 가문 품에 

바이에른 공국을 안겨다준 1대 선조 할아버지다.

 

외교에 능한 바이에른 관리였던 오토 1세는

당시의 신성로마제국 황제이자 그 유명한

프리드리히 바르바로사 황제로부터

바이에른을 하사받았다.

 

그무렵 원래 바이에른을 점유하던 가문은

벨프라는 가문이었고 가주는 또 역시 유명한

하인리히 사자공이라는 사람인데

바르바로사의 정적이었다.

 

전쟁 > 몰수 > 증여의 형태로 이어진것.

오토1세의 시선으로 바라본 뮌헨이다. 뿌듯할까?

 

지금보니 오토1세 기마상이 바라보는 방향이

뮌헨 구시가지인것같다.

자기 후손들이 이뤄놓은걸 보면 뿌듯할까?

(주거정책하나 제대로 못펴는데 좀 혼내주면 좋겠다)

 

위 사진 왼편으로 보이는 쌍둥이 종탑이

성 막시밀리안 성당이다.

이자르의 서편은 다시 한 번 한적하다

 

이자르를 따라 나있는 산책로를 따라

살살 걸어올라간다.

 

강 동쪽 유역의 수변공원과 달리

여기는 아주 한적한게 조금 더 마음에 든다.

너무 가소롭고 너무 귀엽다

 

너무 귀여워서 

심장에 다소 해로운 자전거 꼬마도 만났다.

성당 내부

 

오 드디어 궁금하던 

성 막시밀리안 성당에 들어왔다.

듣던대로 분위기가 독특하다.

 

건축 양식도 잘 못보던 형태인데

제단장식이며 의자의 모양이며

곳곳에 진열된 미술품들 하며 

무엇하나 평범한 아우라속에 있는게 없다.

이게 진짜 명품이라했다

 

너무 궁금한건 사실

이 성당의 파이프오르간이었다.

그렇게 명품 소리를 자랑한다 하던데

언젠가는 한 번 주일미사를

여기로 와볼까 벼르고 있다마는

 

내가 마음붙여버린

시내 한복판의 성 미카엘 성당 오르간이

또 너무 내스타일이라(반주자분 최고)

쉽게 다른곳으로 가지지가 않는다.

여하튼 성당이 정말 독특하다

 

소소한 서브미션도 해치우고 나서는

이제 정말 다시 숙소로 돌아갈 시간이다.

걸었더니 적당한 허기도 들어앉은 참이다.

이 글씨체를 보면 마음이 편해진다

 

보고있으면 너무 독일스러워서

웃음마저 나오는 뮌헨 지하철역의

타이포그래피를 마지막으로 오늘의 일기를 마무리해본다.

---

그러려했는데

이걸 빼놓을 수가 없다.

오늘의 산책중에 발견한 글귀인데

요근래 읽은 모든 텍스트 통틀어 

가장 내 심금을 울리는 글이었다.

집을 내어놓는 자에게 1000유로를 더 드리리다!

 

30대 중반의 한 부부가 집을 찾고있습니다.

안정적인 수입이 있고 박사학위도 있습니다.

반려동물 없고, 저희 둘 다 비흡연자입니다.

신뢰할만하고 성격좋은 세입자라고 자신합니다.

 

저희에게 집을 내어주시는 분께

1,000유로를 추가로 사례하겠습니다.

 

...

 

아...

 

한 문장 한 문장 눈물없이는 읽을 수 없는

뮌헨의 현실이다.

 

젠장

 

Das En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