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네 번째 산책] 다시 또 한 번, 트라운슈타인

사실은 이번 글은 란츠후트에서 사와서 마신
비트만 맥주 리뷰를 하려고 했다마는
문제가 좀 있어서 연이어 산책일기를 적어본다.
 
문제라 함은 앞선 글에서 언급한 바 있는
인터넷 이슈에서 시작된다.
 
결국 나도 현대인이긴 해서
인터넷에 기어코 연결되고자 하는 필사적인 몸부림으로
대학 도서관을 임시방편으로 삼고있다.

TUM 로고(고마운 학교다)

 
뮌헨공대(TUM) 도서관은 고맙게도 
출입할때 학생증을 확인하지 않는다.

애용중인 TUM 도서관 3층 열람실

 
그리고 대학교 인근에서는
바이에른 주정부에서 제공하는 와이파이가 잡히기 때문에
인터넷 기사가 올때까지 내 임시거처가 되어있다.
 
책도 보고 글도 쓰고
아마존으로 쇼핑도 하고 이것저것 다하는중...
 
오늘도 저녁미사 보기 전까지
한 서너시간정도 머무를 계획이다.
(집가서 저녁먹으면 11시겠지만)
 
아, 정작 중요한 얘기를 빼놓았는데
대학교 정책인지는 몰라도
학내 와이파이로 bier와 관련된 사이트가 열리지가 않는다.
(휴대폰도 마찬가지)
 
대단한 이야기를 쓸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간단한 서칭조차 불가한 사유로
산책일기가 먼저 찾아오게 된것.
 
글이 순식간에 써내려질지
아니면 생각이 길어질지 모르겠다.
이번 산책 일기의 목적지는 지난번에 내 마음 한 조각을 남겨두고 온
새로운 애착의 장소, 트라운슈타인이다.
(아홉 번째 산책의 주인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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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발짝 떨어져서 봤을때 가장 아름다운 트라운슈타인, 인생같다

 
그러고 보니 원래 트라운슈타인을 가려던게 또 아니었다.
집에서 쉬려고 한 날이었는데
오후 한낮에 갑자기 외출이 땡겼다.
 
머릿속 리스트에서 원포인트로 다녀올만한 곳을 열심히 추려냈다.
오랜만에 레겐스부르크 발할라를 가볼까 했었는데
기차를 놓쳤다(DB탓 아님, 늦장부리다가...)
 
벙쪄버린 채로 승강장을 서성이다가 
생각이 닿은 곳에 트라운슈타인이 있었다.
마침 RE5도 10분 뒤 출발이라 운명인듯 싶었다.
 
기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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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와르르 내리고 타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Prien am Chiemsee 역인가보다.
여름이 가기 전에 물놀이를 즐기려는 사람들일거다.
 
때맞춰 잘 깬것같다.
여기부터는 짧은 역간격으로 네 정거장만 더 가면 된다.
(이제 RE5 정차역을 순서대로 다 읊는다)

란츠후트 역보다 훨씬 깔끔한 작은 마을 트라운슈타인역

 
트라운슈타인에 내렸을때는
다섯 시 이십분을 향해가고 있었다.
네시 차를 탔으니 연착없이 잘 도착했구만!
(기특하다)
 
너무 늦은게 아닌가 싶겠지마는
여덟 시는 넘어야 해가 지는 유럽의 여름인지라
아직도 시간이 넘쳐 흐르기도 했거니와
해가 지고 나면 오히려 시원해서 좋을터라 고마울 일이다.
 
이번에는 조금 더 여유부려서
마을 구경까지 해보기로 했다.
 
여기도 역에서 시내까지는 조금 들어가야 하는데,
란츠후트처럼 버스타고 가야하는 정도는 아니다.

시내로 들어가는 중간의 시립공원

공원 한켠에는 작은 성당도 있다

 
'지난번 언덕배기에서 바라보던 트라운슈타인은 이런 곳이었구나'
하는 마음으로 마을 중심을 향해 걸음을 내디딘다.
사실 정말 보고싶은건
마을 한가운데에 있을 성당의 종탑이었다.
 
멀리서 바라본 풍경속에서
옹기종기 모여있는 건물들 사이로
딱 하나 뾰죽 솟아 하늘을 간지럽히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웠기 때문에
 
오늘은 꼭 가까이 가서 확인해보고 싶은 욕심이 생긴 때문이다.

지난 포스팅의 사진을 다시 데려와본다. 이런 모습이었지

 
공원을 가로질러 모퉁이를 돌자마자 
그렇게 보고싶던 성당의 종탑이 눈에 들어왔다.

시야에 종탑이 들어온 첫 순간

 
가까이 가도 그렇게까지 커지지는 않는게
역시 기대한대로 아담한 마을의 아담한 성당인가보다.

여기도 독일식 치장

 
중심에 진입하기 직전에 위에 사진처럼
나름 아름다운 독일식 치장을 한 골목배기를 발견했는데
이 날은 아주 잠깐 고민하다가 지나쳐버렸다.
 
마을 성당까지 가는데 단 한 발짝도 낭비하고싶지 않았다.

성 오스발트 성당 내부

 
드디어 그토록 찾아 헤매던 
트라운슈타인 성 오스발트 성당에 들어왔다.
 
독일다운 흰 벽에 상아빛깔이 잘 어우러진
우아한 바로크 성당이었다.
기쁜 마음을 담아 짧게 기도했다.
 
성당을 나오는데 어딘지 낯익은 교황의 흉상을 봤다.
성직자 흉상, 초상화같은게 워낙 유럽에 흔한지라
(다 유력 가문 출신이니 그렇다)
그냥 어디 아는 독일사람 좀 닮았나보다 하고 지나쳤는데
나중에 보니 몇년 전에 돌아가신 교황 베네딕토 16세였다.
 
'요세프 라칭거' 라는 바이에른 소년으로 태어났다는데
사제서품을 받고난 후 첫 미사를 집전한 곳이 
이곳 트라운슈타인의 성당이었다고 한다.

성당 앞 마을 광장

 
성당 앞에는 역시 마을 광장이 있다.
분수, 노천카페, 맥주집, 아이스크림 가게
있을건 다 있는 작은 마을이다.
 
한쪽엔 약국도 있다(보수중).
이곳의 역사는 다 지켜봤을법한 비주얼.

언제부터 여기 서있었을까

 
아, 이곳 맥주집들을 빼놓을 수 없다.
트라운슈타인이 작은 마을일지언정
훌륭한 양조장을 두 군데나 가지고있다.
 
그 중에서 마을 중앙광장에 떡하니 자리잡고 있는 곳은
Hofbräuhaus Traunstein
'호프브로이하우스 트라운슈타인' 이다.
 

당연히 지금은 민간 소유이다

 
무려 왕관박힌 문장을 로고에 사용중이다.
이름에서부터 눈치를 채야 맞지만
바이에른 공작가에서 세운 양조장이다.
 
뮌헨의 호프브로이하우스가 1589년 빌헬름5세 공작이 만들었다면
여기 양조장은 아들내미 막시밀리안 1세거다(1612년).

멀찌감치서 사진만 남기고 훌훌 떠나본다

 
한 잔 하고가면 좋겠지만
나홀로 나들이객 특유의 소심함에 더해
그정도까지의 여유는 없었던 시간 이슈로
멀찌감치서 사진만 남기고 떠나가본다.
 
바로 내 최애스팟으로 직행할까 싶다가
혹시 이 언덕 반대편 모습은 어떨지 싶어서 
잠깐 남쪽으로 걸음을 옮겨본다.
(이곳도 야트마한 둔덕에 세워진 마을이다)

바로 찾아온 내리막, 구름 밑에 살짝 알펜이 보인다

 
역시나 바로 내리막이 나오고
저 멀리에는 알프스로 병풍이 쳐져있다.
 
그러고보니 오늘은 기차에서 기절함을 표현하느라
트라운슈타인이 어떤 곳인지 소개를 빼먹었는데
여기도 나름 특색있는 곳이다.
 
본디 아기자기한 작은 마을이었던 트라운슈타인.
특별한 점이라면 마을 뒷산(큼)이 비텔스바흐 사유림이라는 점 정도였다.
그랬는데...
1613년 이후로 마을의 입지가 확 달라진다.
 
사건의 발단은 남동쪽 알프스 계곡마을 
Bad Reichenhall(바트 라이셴할) 에서였다.
이곳은 잘츠부르크와 30분 떨어진 곳인데
그 동네가 다 그러하듯 제염업이 주 산업이었다.

독일 살아본 사람은 한 번 즈음은 본 그곳 소금

1613년, 이곳에서 새로운 염수구가 발견되었는데
유량도 엄청 풍부한데다가 소금 함량도 아주 우수했다.
문제는 이미 바트 라이셴할의 염전들이 
이미 포화상태였다는것.
 
이때 바이에른의 관료들이 아주 기발한 해결책을 내어놓는데
새로운 장소로 염수를 보내버려서
그곳에서 제염을 진행한다는 발상이었다.
(소금은 그만큼 돈이 되는 광물이었다)
 
후보지를 물색하다가 결정된 곳이 트라운슈타인.
주된 사유는 바로 뒷산 덕분이었다.
 
엥? 제염업에 왜 산이 필요한거지?
 
유럽 제염업에는 산이 필요하다.
한국이야 일조량이 워낙 좋으니 천일염이 가능하지,
여기는 한여름을 빼면 일조량이 불규칙하거나 없다.
 
알프스의 제염이란 (내가 아는 한)
장작을 지펴 물을 날려버리는 작업이다.
 
그렇다면 말이 된다.
장작을 자기 사유림에서 무제한으로 가져다 쓸 수 있으니
트라운슈타인으로 정할만도...
 
바트 라이셴할과 트라운슈타인 사이의 거리는 약 33km
그냥 옆동네로 흘려보내는 수준이 아니다.
게다가 알프스를 통과해야 하고
해발고도가 트라운슈타인이 150m가량 더 높아서
흘려 보내는게 아니라 퍼올린다고 해야 맞다.

파이프라인 배치도

 
그렇게 해서 세계 최초의 파이프라인이 깔렸다.
(이건 란츠후트 마틴성당 종탑처럼 앞에 '벽돌로 만든' 이라거나 그런 제한수식어 안붙고 진짜 세계 최초다)
 
가운데를 도려내 만든 나무통 8,342개로 만들어진
이 송'염수'관 사이로 염수가 끊임없이 흘러갔고
중간중간 물을 퍼올리기 위해 
7개 거점에 펌프 시설물을 두어 관리했다.
 
여담으로 요즘 기름도둑들이
송유관에 구멍뚫어서 절취하듯이
당시에도 이 파이프라인 약탈이 빈번해서
나중에는 결국 사형으로 협박했다고...
(나무통이면 또 얼마나 쉬웠겠냐고)
 
제염소는 1912년에 문을 닫았는데
이 파이프라인은 1958년까지 다른 마을로 열심히 염수를 나르다가 퇴역했다.

당시 사용되던 펌프 동력원

 
이정도면 비텔스바흐 공작가에서
양조장을 만들 정도의 마을은 되지 않을까?
(물론 파이프라인보다 양조장이 먼저긴 하다)
 
굿.
이즈음 하고 다시 걸어보기로 한다.

잘 내려가다가 샛길이 보여서 올라탔다

인공수로도 있다

 
마을 경계를 따라 한 바퀴 크게 돌았더니
중앙광장에서 봤던 동쪽탑 뒷면에 눈에 들어왔다.
 
최종 목적지인 내 최애스팟 성당앞 언덕은
계속 지나쳐서 가야하지만 
동문으로 들어가고있는 산책자.

제법 옛스러운 느낌이 나는 동문

 
그 이유란 역시...
맥주라는 방앗간 앞에서는 참새가 되어버리고 마는
나라는 놈 때문이다.

나름 훌륭한 밀맥주였다

 
이 양조장은 쓸 거리가 그렇게 많은 곳은 아니긴 한데
그래도 차별당하는 설움을 아는 
유럽의 동양인으로서
별도의 '마시다' 포스팅을 할애하기로 한다.
 
그러고보니 아직까지 이번 체류중에
이렇다할 인종차별을 못겪어봤다.
어쩌면 내가 동양인이 거의 없는 곳을 다니다보니
놀림보다는 주로 호의를 샀던것 같기도 하다.

알딸딸한 기분으로 새출발하며 기념샷

 
맥주는 좋은 환기의 재료가 된다.
자 그럼 다시 새출발이다.

어라, 해가 언제 나무뒤에 걸리게되었담

 
뒤를 돌아보니 해가 나무 뒤에 걸려있었다.
'뭐야, 언제 벌써 그래되었니' 라고 생각했었다.
(양심이란게 있었던걸까 ㅋㅋㅋ)

저 멀리 보이는 나만의 언덕

 
이 나이 먹고도
맥주 한 잔 하고나면
총총 촐랑거리면서 걷게된다.
 
그러다보니 저 멀리 나만의 언덕이 나타났다.
(물론 나만의 거는 아니지만 한국인은 나뿐일것)

트라운 강을 건너고

또 작은 마을을 지나

 
트라운 강을 건너고
또 작은 마을을 지나
마지막 언덕배기를 올라간다.

맨 위 흑백사진의 원본이다

 
마을 이름을 알게되었다.
Ettendorf(에텐도르프)
나만 알고싶어서 숨겨둘까 했는데
피차 올만한 사람 별로 없을듯 하여 공개하기로 했다.

에텐도르프 성당이 새로운 나만의 언덕이다

 
혹시라도 가게되거든
그리고 나처럼 그 곳이 마음에 들어오거든
댓글로 알려주면 너무 반가울것같다.

변함없이 푸르른 에텐도르프

 
드디어 도착했을때
내 심장이 두근거렸던지 
아니면 평화 속에서 고요했던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지난번엔 그늘이었던 벤치

 
점점 더 서쪽 지평선으로 누워가는 햇살이
벤치를 정면으로 내리쬐고 있어서
오늘은 성당 앞 나무그늘로 가기로 했다.

오늘의 낮이 끝나가려 한다

 
여기는 이곳 주민들도 짧게 쉬어가는 곳이다.
자전거를 타다가, 개를 산책시키다가, 친구와 걷다가 쉬어가는 그런 곳이다.

언덕 저편으로 있는 마을이 에텐도르프

 
해를 바라보는 동쪽 마을은 아직 밝기만 한데
트라운슈타인쪽은 이제 어둑해지기 시작했다.

정말 아름답지 않나

황홀한 내 취미생활

맥주를 마신 대가로 
오늘은 아주 긴 시간은 보내지 않기로 했다.
30분여만 앉아서 멍하니 주변을 바라보다가
다음 기차시간에 맞춰 출발한다.
(알람도 맞춰놨다 ㅋㅋ 멍때리다가 놓칠까봐)

민달팽이 싫어하면 죄송하다

 
해질녘이라 그런지
민달팽이들이 엄청 많이 외출나왔다.
 
자연친화적이라고 좋아할 법도 하건만
여기 사는 한국분들에겐 악몽같은 존재다.
정원에 가꾸는 깻잎과 고추의 어린잎을 
싸그리 갉아먹는 대악마, 박멸 1순위다.
(나랑은 상관없어서 살려줬습니다)

이제는 해가 넘어버렸다

 
돌아갈때는 지난번과 같은 길을 지난다.
최단거리인데다가 혼자 걷는 숲길이 매력있다.

이정표에 적힌 Paris

 
지난번엔 못봤는데
숲길 입구에 적힌 이정표에 '파리'가 적혀있었다.
그 방향이 맞긴 하다 파리가.
 
근데 자존심이 있으면 프랑스 수도는 쓰지 말아야지
(아... 정복하자는 얘긴가? 전격전을 준비할때인가 읍읍)
그러고보면 바이에른이 왕국된게 
프랑스 덕분이긴 하니 어떤 측면에서는 납득.

숲속 오솔길, 휘파람이 절로나온다

 
해가 지고 바람이 좀 서늘해졌다.
바쁜 걸음에도 땀이 덜 나서
감사할 따름이다.

돌아가는 발걸음은 아쉽다

 
역에 도착했을때는 가로등이 켜져있었다.
일몰시간이 지났다는 의미겠지만
아직도 하늘은 푸른게 신기했다.
 
여덟시 사십사분
기차가 때맞춰 왔다.
 
그리고 역시
 
기절.